“칼럼을 쓰니 유령 작곡가들이 잘려나갔다”
“칼럼을 쓰니 유령 작곡가들이 잘려나갔다”
[김도연의 만나다] 소설 ‘소수의견’ 손아람 작가가 말하는 로이엔터테인먼트 사태

소설가 손아람이 아니었다면, ‘유령작곡가’들이 송곳처럼 세상을 뚫고 나오는 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손아람은 지난해 7월 한겨레 칼럼을 통해 음악중개업체 로이엔터테인먼트(이하 로이)가 신인 작곡가들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한겨레 칼럼 :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

지난해 11월 청룡영화제에서 영화 ‘소수의견’으로 각본상을 받을 때도 손아람은 유령작곡가들을 빼놓지 않았다. “진짜 음악을 만드는 이 땅의 유령 작곡가들,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끝까지.” 유령작곡가들의 싸움은 2016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손아람 작가가 지난한 싸움에 몸소 나섰던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15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손 작가를 만났다. 

- 지난해 청룡영화제 수상소감이 인상 깊었다.
“시상식에 가기 전 로이 관련 기사로 언론중재위를 다녀와야 했다. 오후에는 로이엔터테인먼트 대응모임과 민변 변호사들의 모임이 있었다.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팠다. 작곡가들도 다운이 돼 있던 상태였다. 시기적으로 다들 확신이 없던 때였다. ‘계속 싸울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었고,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도와줄까 두려워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나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것인데 미안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면 힘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작곡가들도 TV 앞에서 영화제를 함께 봤다고 했다. 수상소감 이후 더욱 끈끈해진 것 같다.”

   
▲ 김성제 감독과 손아람 작가(오른쪽)는 지난해 11월 청룡영화제에서 영화 소수의견을 통해 각본상을 받았다. (사진=SBS화면 갈무리)
 

유령작곡가. 로이 소속으로 KBS, JTBC, tvN 등 방송사 드라마·예능 배경음악을 만들어온 작곡가들을 부르는 말이다. 이들은 “로이가 2076곡의 음원수익을 가로챘으며 부당한 노동을 강요했다”고 주장하며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저항의 목소리를 낸 작곡가들은 계약 해지를 당하며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다. 작곡가들은 지난해 예술인유니온, 손 작가와 함께 로이엔터테인먼트 대응모임을 결성, 로이를 상대로 미지급 저작권료를 지급하라는 협상을 벌여왔다. 이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로이 측은 지난해 12월22일 “소송을 통해 (저작권을) 찾아가라”며 협상 결렬을 통보했다. 

- 이 문제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조선명탐정2’ 뒤풀이 자리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다. 이 작품을 하고 100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하고 나서 100만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워낙 이 판에 있는 사람들이 푸념을 잘하니까 흘려들었다. 그런데 심각하더라. 수천 곡의 음악을 만들었는데, 작곡가가 아닌 회사 대표 이름으로 방송에 나갔다. 쉴 새 없이 회사로부터 작업 지시가 떨어졌다. 권리는 다 빼앗기고 있었다. 한 작곡가는 정신과를 다니기도 했다. 우울증에 공황 장애를 겪기도 하고. 음악인 가운데 아무리 ‘맛이 간’ 친구들이 많다고 해도 상황은 심각했다. 카페에 앉아 있을 때도 회사로부터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회사에 종속돼 있는 직장인들도 그러진 않을 텐데….”

- 손 작가가 이 일을 끄집어낼 때 작곡가들이 두려워하지 않았나. 
“작곡가들은 자신들이 목소리를 내봐야 잘릴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제보자를 알 수 없는 형태로 글쓰는 데 동의를 구했다. 그러고 나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한 달도 되지 않아 작곡가들이 잘렸다. 내가 책임져야 할 문제가 생긴 것이다. 글을 통해 논란이 일면 로이가 바뀔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바뀌지 않았지만 이제는 드러내놓고 싸워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작곡가들이 싸우겠다고 마음 먹자 여기저기서 돕겠다고 나섰다. 예술인소셜유니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다.”

   
▲ MBC 시사매거진2580은 지난해 10월 ‘드라마 OST의 비밀’편을 통해 작곡가의 창작권이 몰수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MBC
 

- 유령작곡가 문제가 관심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상파에서도 이 문제를 다뤘다.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음악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부자가 된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박탈감을 느꼈던 것 같다. 회사원들은 뼈가 빠지게 일하지만 부자가 되는 것은 자신이 아닌 회사다. 그런 지점에서 공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 협상 결렬 이후의 상황도 궁금하다. 
“현재는 저작권과 관련해 로이와 소송이 남은 상태다. 방송 음악 저작권과 관련한 판례는 전무해 최초에 가까운 분쟁이 아닌가 싶다. 작곡가들이 계약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이번 사태를 통해 문제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작곡가들은 단순히 이익을 찾겠다는 것을 넘어 부당한 것에 맞서는 징표를 음악계에 남기겠다는 사명감으로 싸우고 있다.”

대응모임은 지난해 12월16일 JTBC에 감사를 요구했다. 대응모임은 “로이가 2011년 개국 초부터 현재까지 JTBC 예능‧드라마 프로그램 25편 음악작업을 해왔다”며 JTBC가 작품을 로이에 몰아주고 있는 까닭을 밝히라고 했다. 

- JTBC에 감사 요구를 했다. JTBC가 나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 작곡가들은 ‘자기 위에 있는 팀장이 문제다. 팀장 위에 있는 이사는 착한 분’이라고 했다. 싸움이 시작되면서 실상을 깨닫게 되자 ‘회사 이사가 나쁜 사람이었다. 그래도 대표님은 기회를 준 은사’라고 했다. 드러나는 정보가 많아지자 ‘회사가 정말 나쁜 놈이다. 그래도 회사에 일을 주는 JTBC는….’ 꺼풀을 벗기면 벗길수록 진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은 하청 사슬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누군가 윗선에서 많은 몫을 챙기니까 삼투압처럼 작곡가들에게 부담이 된다. 원청 역할을 하고 있는 JTBC가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로이가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기업이었다면 최소한 몽고간장 회장 같은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하청업체로서는 일감만 있다면 두려움이 없는 거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구조적 문제를 짚어야 한다. 원청인 JTBC가 나서야 사태가 해결된다.”

JTBC 홍보팀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대응모임에서 주장하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JTBC와 로이는 단순한 계약 관계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현재 제작국에서 방송하고 있는 11개 프로그램 가운데 로이와 작업하고 있는 것은 ‘히든 싱어’뿐이라며 대응모임 주장을 일축했다. 향후 로이와 작업을 계속할지 여부는 로이와 작곡가간 소송 결과에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JTBC의 한 제작국장도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 “연출 권한에 속하는 문제이며 제작진의 호불호에 따라서 결정된다”며 “(대응모임의) 언론 플레이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손아람’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서울대 미학과’, ‘가수’가 딸려 나온다. 조금 더 검색 능력을 발휘하면, 그가 ‘멘사회원’이라는 사실도, 1세대 힙합 뮤지션으로서 활동했다는 사실도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안양고등학교 재학 시절 친구와 결성한 힙합 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진말페)는 2003년 해체됐다. 소설 첫 번째 작품 이름이기도 하다. 

   
손아람 작가.                                                             이치열 기자 truth710@
 

- 이력이 독특하다. 가수이자 소설가다.
“20대 초반 힙합을 했다. 우리 때 힙합은 완전 비주류였다. 곰팡이가 낀 지하실에서 공연했다. 이젠 주류가 됐다. 모든 분야가 바닥에서 천천히 올라와 바뀌는 것 같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음악까지 포용할 수 있는 문화적 다양성이 있었다. 완숙기에 이른 지금은 말초적인 표현만 눈에 띈다.”

- 가수와 소설가는 그리 공통점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스토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랩을 엄청나게 잘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랩은 음악, 리듬 위에서 이야기를 낭독하는 작업과도 같았다. 2003년 가수를 그만 둘 때 잘못된 계약으로 음반사와 법정 공방에 시달렸다. 로이와 비슷한 문제였다.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당시 친구 대다수는 취직, 고시, 공부 등을 선택했다. 한번 ‘예술의 맛’을 보고 나니까 다른 삶을 선택하기 어렵더라. 졸업하기 전에 뭔가를 만들어보자는 심산으로 소설을 썼다. 책이 기대했던 것보다 잘됐다. 한 권, 두 권 책을 내면 많은 독자가 생기지 않을까 했다. 착각이었다. 출판 시장이 사양화하고 있다는 걸 간과했다. 책을 내면 낼수록 판매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웃음)”

- 소설가로서 인식된 작품은 아무래도 용산참사를 모티프로 한 ‘소수의견’이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북아현동 철거지구에 살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도 싸움은 그칠 줄 몰랐다. 무언가를 붙이고 뜯고, 어디선가 꽹과리 소리가 들리고. 창문을 열어놓고 그 풍경을 보면서 글을 썼다. 그러다 용산참사가 발생했다. 누군가 ‘옆 동네 같은 처지의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용산참사는 남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옆 동네’ 이야기였다. 국가와 국민 사이에서 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재판에서 절차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 소수의견 역시 재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영화화는 어떻게 가능했나. 
“소설 소수의견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성제 감독이 찾아왔다. 요즘은 웹툰, 소설 등을 영화화하는 경우가 많아, 판권 사러 오는 사람들이 무슨 담배 사러 오듯 한다는데, 김 감독은 하루 종일 내가 어떻게 사는지 물어보더라. 마치 면접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판권을 사러 온 것 같은데 ‘얼마예요’라고 묻질 않았다. 그러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이들과 함께 하면 괜찮겠다,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흥행 결과는 좋지 못했는데. 
“상업영화로서 못해도 100만은 나와야 한다고 하는데 40만 명에 그쳤다. 상업적으로는 망한 것이지. 영화 자체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소수의견보다 먼저 개봉될 줄 알았던 연평해전이 느닷없이 한 달 가까이 개봉일을 미뤘다. 이번 청룡상도 못 받을 줄 알았다. 건물에다 불법 현수막을 내걸면서까지 연평해전을 홍보하던 조선일보 아닌가. 청룡상은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상이다. 시상식 당일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영화계에서 가장 큰 상이고, 참석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결국 영화제에 갔다. 수상 발표를 하기 직전까지도 (영화) 사도가 받을 줄 알았다.”

- 청룡상 영화제 상금도 용산참사 추모위원회에 내놓았다. 대응모임도 그렇고 잘못된 것을 고발하고 나서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의식 혹은 사회적 의식을 갖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고민을 조금 하더니)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나왔지만 중학교 때는 경기도로 갔다. 그곳은 공장 지역이었다. 친구들 부모님 대부분이 공장 노동자이거나 농사를 지었다. 친구들은 순수했지만 일탈에 있어서는 상상을 초월했다. 싸움을 하면 흉기가 나왔으니까.(웃음) 서울에서 비슷한 또래와 어울리며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거다. 사무직 부모를 두고 중산층에서 자란 것이 누군가에게 특별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평범한 생활을 통해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게 크다. 사랑했던 사람들과도 사정이 달랐다.”

- 연인들과도 환경이 달랐다는 건가. 
“그동안 만났던 이성도 평범한 생활을 통해서는 만날 수 없는 범주에 놓인 이들이었다. 그들과 여러 면에서 사정이 달랐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고 힘든 상황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포기하지 않는 여자들과 사랑을 했다.(웃음) ‘왜 이렇게까지 어렵게 살아야 하는데’라고 화가 날 때도 있었다. 연민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에 대한 존경이 커졌다. 이성적 판단에 앞서 심정적으로 그들의 편에 서게 되는 이유다.”

   
손아람 작가.                            이치열 기자 truth710@
 

- 작가 장강명은 하루 8시간, 1년에 2200시간씩 소설을 쓴다고 하더라. 손 작가는 어떤지 궁금하다. 
“나도 앉아는 있다.(웃음)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 최대한 앉아 있는데 결과물이 나오는 건 아니다. 고민의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냥 앉아있어야 죄책감이 없다. 최소한 ‘나는 노력을, 책임을 다했다’라고 위안할 수 있잖나.(웃음)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고 잘 쓰는 게 아니라, 계속 쓰는 것 자체가 능력이다.”

-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은 없나. 
“위태위태하지만 나 혼자 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다. 물론, 소설만으로는 생활하긴 어렵다. 생계의 주가 되는 것은 소설이 아니라 (각본과 같은) 창작물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소설가로 인식하고 있다. 소설가 다수의 생활이 비슷할 거다.”

- 향후 작품 계획은 없나. 
“개인적으로 계획은 밝히고 싶지 않다. 향후 계획을 말하면 부담으로 돌아오더라. (계속 대답을 요구하자) 2016년에는 소설보다 방송 작가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방송사로부터 제안 받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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