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서 화장하면 추하다? 언론이 만든 ‘여성혐오’
지하철서 화장하면 추하다? 언론이 만든 ‘여성혐오’
아빠가 육아에 요리까지, TV속 사라진 ‘엄마의 고민’… ‘김치녀’ ‘김여사’ ‘된장녀’ 언론이 만든 왜곡된 여성상

MBC “아빠! 어디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유명 남자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한국인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됐을까. 

그동안 출산과 육아 문제에 무심했던 남성을 ‘돌봄노동’에 참여케 한 이 같은 시도가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예능화’에는 성공했지만, 오히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속 여성 이미지만 고착화하는 효과만 가져왔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8일 ‘혐오문화의 확산 : 공감과 부끄러움의 문화정치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 토론회에서 “육아 관련 프로그램이 큰 대중적 인지도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요리, 반려동물, 집안 인테리어 등 남성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더 집중했기 때문”이라며 “그에 반해 여성은 (허구의) 사적 공간에 대한 믿음과 낭만적 사랑에 몰입하는 전형적 모습으로 재현되거나 아예 여성 출연자의 출연 빈도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문제는 TV에서 보여주는 남편·아빠의 가정적인 모습, 아이와 소통하는 과정을 깨달아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지만, 여성의 돌봄노동이나 가사노동이 배제돼야만 남성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완성된다는 점”이라며 “아내·엄마의 모습은 남편의 희생으로 ‘휴가’ 시간을 보내거나 아이의 변화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방식으로 등장하고, 육아와 가사노동은 남편의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라기보다는 ‘여행’과 ‘놀이문화센터’의 체험으로 채워지면서 ‘낭만화’되기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 지난 2012년 12월21일 방송된 TV조선 '뉴스쇼 판' 리포트 갈무리
 

지난해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5 일, 가정 양립지표’에 따르면 2009년 기준 한국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45분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는 OECD 국가 남성들의 평균 가사노동 시간(139분)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남성이 하루 한 시간도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국가는 인도(52분)와 한국뿐이었다. 반면 한국의 맞벌이 여성만 해도 가사노동 시간이 3시간14분으로 남성보다 5배 가까이 많았다. 

이 연구원은 “프로그램 속 남성성은 탈권위적인 남성, 여성적 감수성을 표출하는 남성 등에 집중되고 가부장의 위기를 남성의 새로운 영역 개척과 이미지로 구성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며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모습은 제한적으로 묘사되고, 등장한다고 해도 대부분 여성·엄마·가정·회사 등의 다양한 역할수행을 하는 여성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은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또 “200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상에서는 주차를 잘하지 못하는 중년여성을 일컫는 ‘김여사’, 생각 없이 고가의 제품을 소비하는 ‘된장녀’, 한국인 남성보다 외국인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을 의미하는 ‘김치녀’까지, 여성의 일거수일투족, 일상생활의 미시적인 영역 모두 감시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언론 역시 ‘여성혐오’ 문화를 적극적으로 생산했던 주체라고 꼬집었다. 

이 연구원은 지난해 ‘간장 두 종지’ 칼럼으로 물의를 빚은 한현우 조선일보 주말뉴스부장의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 칼럼을 예로 들며 “사적인 공간에서 해야 하는 화장을 지하철에서 하는 젊은 20대 여성은 ‘추하다’는 비아냥의 글이었다”며 “전후 맥락 없이 개인의 사적인 감상을 통해 젊은 여성을 공공장소에서 ‘생각 없이 행동하는 여성’으로 대상화하고 비난했다”고 비판했다. 

   
 
사진=MBC 진짜사나이 누리집 갈무리
 

지난해 남성 잡지 ‘맥심’도 여성을 납치해 차 트렁크 안에 가두는 장면을 표지 사진으로 연출했다가 대중들의 뭇매를 맞고 공식 사과 후 발행된 잡지의 전량 폐기와 판매 수익의 환원을 약속했다. 

이 연구원은 “당초 맥심 측은 여성의 인권, 여성의 권리 등에 대한 고민 없이, 대중적 잡지의 표지사진이 갖는 상징적 의미와 사회적 파장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표현의 자유’라는 틀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며 “과민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젊은 여성들의 개념 없는 투정으로 인식하다 이후 해외 본사와 여타 관련 해외 잡지사의 비판이 쏟아지자 이뤄진 ‘비자발적’인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군대 체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여성들(여자 연예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사회의 여성혐오가 상정하고 있는 여성상에 부합한다”며 “이 여성상은 △성적으로 방종한 자 △무능하고 한심한 자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자 △공동체 의식이 부재한 자라는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MBC ‘진짜 사나이-여군특집’에 출연하는 출연자들은 대체로 무능하거나 이기적이고 공동체 의식이 부재한 인물들로 비춰진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남성이 남성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가족으로부터 받았던 소외, 상실감을 위로해 주거나 군대생활의 경험을 공유하고, 남성 간에 부부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며 “여성을 배제함으로써 남성성이 완성되는 프로그램의 구성은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여성혐오’의 일상화와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