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병신년을 병신년이라 못 부르고…
병신년을 병신년이라 못 부르고…
[기자수첩] 장애인·여성 비하 논란 이면 '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위선 또는 기만

육십갑자로 따져 병신년(丙申年)이 된지도 나흘이 지났다. 병신년이라는 말이 비속어로 들려 방송에서는 ‘붉은 원숭이의 해’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이에 안도현 시인은 1월1일 자신의 트위터에 “병신년인데 병신년이라는 표현 못 하고 주저주저하고 조심하고 눈치 보면서 억지로 붉은 원숭이해라고 강조해서 말하는 방송 앵커들, 불쌍하다. 병신들”이라고 쓰기도 했다.

안도현 시인은 방송사가 병신년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 눈치를 보는 것이라 해석하는 듯 하지만, ‘병신’과 ‘년’이라는 말이 각각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기에 병신년을 사용하지말자는 지적은 그 차원을 넘어선다. 이 때문에 SNS에는 ‘병신년 소재 농담 NO 캠페인’까지 벌어진다.

   
▲ SNS에는 '#병신년_소재_농담_NO_캠페인'이라는 해시태그로 병신년을 소재로한 농담을 하지말자는 운동이 전파되고 있다. 사진=트위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지난해 12월31일 “병신년은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다”라며 “악의 없는 비유라도 상처받는 일들이 있다면 버리고, 피할 수 있으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게 길이다”라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박성식 대변인은 4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언어를 사용한 주체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문제는 생길 수 있고, 당사자는 위축감이 들 수 있다”며 “‘병신’이라는 말을 쓰다 보면 비하의 의도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업신여기는 태도를 내면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논평의 배경을 설명했다. 

부정적인 이미지의 단어 대신 중립적이거나 긍정적 의미를 담은 말을 쓰자는 주장을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이라고 하며, 이는 이미 오래된 논쟁이다. ‘검둥이’라는 말이 ‘흑인’으로, ‘흑인’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으로 변화한 것이 대표적 예다.

물론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의미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오히려 위선”이란 주장도 나온다. 사회적 약자의 실제적 처우를 개선해야지, ‘정치적’으로 이름만 바꿔 부르는 것은 사회적 운동이 될 수 없으며. 나아가 ‘기만’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이와 관련해 인문비평공동체 ‘IRIS’블로그에 ‘정치적 올바름을 넘어서기’라는 글을 올린 고준우씨는 “중요한 것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만들어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며 “장애인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의 원인을 실제로 극복하고, 일상에서 장애인을 더 자주 만나게 될 때 ‘병신’이라는 말의 쓰임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정치적 올바름’이 실제로 존재하는 장애인 차별을 철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사회성을 지닌다.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는 것과 ‘병신’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폭력성을 같은 선상에 두고 판단할 수는 없다.

때문에 고씨도 ‘병신년’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거리를 둔다. 고씨는 “물론 일상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이 아닌 다른 이유로 얼마든지 ‘병신’이라는 말은 금해져야 한다”며 “‘병신’이라는 말을 함부로 지껄여댈 정도로 남에 대한 존중이나 기본적인 예절이 부족한, 도덕적 감수성이 낮은 인간이라면 실질적인 장애인 차별철폐운동에 대한 연대도 하기 힘든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이미 당사자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 인권 단체들은 ‘병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정훈 활동가는 “정치적 올바름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게 먼저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만큼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는지 궁금하다”라며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는 것과, 실제로 장애인의 차별을 철폐하는 운동은 충분히 양립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병신년’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과 실제로 장애인의 처우가 나아지기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대척점에 있지 않다. ‘병신년을 병신년이라 부르지 무엇이라 하느냐’는 주장도 당사자들의 고통에 비하면 공허해 보인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병신년이라는 말을 쓰지도 않고, 실제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원인도 없앨 방안을 실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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