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주간지 샤를리엡도(Charlie Hebdo)가 최근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난민 아일란 쿠르디(3)군을 만평으로 다뤄 논란이 일고 있다. 샤를리 엡도는 올해 초 테러단체 ‘알카에다’라고 소속을 밝힌 청년 2명이 쏜 총에 맞아 경찰관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크게 알려졌다. 

문제가 된 만평을 두고 난민 아일란을 조롱한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인 반면, 난민문제를 방치한 유럽을 비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더 나아가 샤를리 엡도의 의도를 떠나 죽은 아이의 그림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과 ‘풍자 신문’의 운명이라는 반론도 맞서고 있다. 앞서 아일란 쿠르디는 지난 2일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던 배가 전복돼 익사된 채로 발견됐다. 

샤를리엡도는 지난 9일(현지시각) 1207호 주간지 주제를 ‘이주자’로 잡아 발행했다. 표지에는 ‘이민자를 환영합니다’(Bienvenue aux migrants!)라고 썼다. 총 16면으로 발행된 잡지에는 숨진 아일란 쿠르디가 등장하는 만평이 총 7개가 실려 있다. 

   
▲ 샤를리 엡도 1207호 표지. 사진= 샤를리 엡도
 

해당 호에는 만평 외에도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하는지 전문가를 인터뷰한 코너도 실렸다. 14면에 실린 기자 겸 작가 기암 파올로(Giampaolo musumeci)와 범죄학 연구가 안드레아 디 니콜라(Andrea Di Nicola)의 인터뷰에는 최근 난민을 사고파는 무역 상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들을 막기 위해선 한 나라가 아니라 유럽 전체가 협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제가 된 만평은 모두 마지막 장인 16면에 실렸다. 특히 마지막 장 ‘여러분께서 발견하지 못한 표지들’(Les couvertures auxquelles vous avez échappé)이라는 제목 아래 실린 첫 번째 만평과 여섯 번째 만평이 대표적으로 인터넷에 떠돌며 공분을 사고 있다. 두 그림은 모두 ‘Riss’라는 닉네임을 쓰는 만평가가 그렸다. 그는 지난 1월 테러 사건의 생존자로 현재 편집장 대행을 맡고 있다. 

첫 번째 만평은 ‘유럽인들이 크리스천인 이유’라고 쓰인 글자 아래 “크리스천은 물 위를 걷는다”라며 물 위를 걷고 있는 유럽인이, “무슬림 아이는 가라앉는다”라며 물에 빠진 아이의 그림이 있다.

   
▲ 샤를리엡도 1207호 16면에 실린 만평. 그림 위에는 '유럽이 크리스천인 이유'라고 써있다. 유럽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는 '크리스천은 물 위를 걷는다'고 써있고 물에 빠진 아이에게는 '무슬림 아이는 가라앉는다'고 써있다. 사진=샤를리 엡도
 

여섯 번째 만평은 아이가 죽은 그림 위에 “거의 다 왔다”는 글이 있고 오른 편에 맥도날드 광고가 “어린이 메뉴 2개가 하나 가격에”라고 말하고 있다.

   
▲ 샤를리 엡도 1207호 16면에 여섯번째로 실린 만평. 그림 왼쪽에는 '거의 다 왔는데'라고 써있고 오른쪽에는 '어린이 세트 하나 값에 2개'라는 맥도날드 광고가 있다. 사진=샤를리 엡도
 

두 만평이 나온 후 터키 신문 ‘데일리 사바’는 “샤를리 엡도가 익사한 시리아 아기 아일란 쿠르디를 조롱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피터 허버트 흑인 변호사회 회장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흑인 변호사회는 증오범죄와 박해의 조장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 보고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샤를리 엡도의 공식 페이스북엔 “천박하다”는 비난의 글까지 올라왔다. 

반면 이 만평이 난민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난민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유럽에 대한 비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작가 고종석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샤를리 엡도의 만평 어디에서 아일란 쿠르디에 대한 조롱이 읽힌단 말인가? 내게는 맥도날드 자본주의에 대한 조롱, 근본주의적 기독교에 대한 조롱밖에 안 읽힌다”며 “아일란을 소재로 삼은 것 자체를 비판할 수야 있겠지만, 그건 풍자 신문의 운명이다”고 말했다.

자유기고가 노정태씨도 자신의 트위터에 “이게 난민 조롱이라고? 오히려 진보 언론이 그렇게 좋아하는 ‘서구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읽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샤를리엡도는 어떤 의도에서 이 만평을 실었을까. 샤를리 엡도 작가 가운데 한명인 임마누엘 샤뉘(Emmanuel chaunu)가 자신이 그린 아일란 그림의 의도를 설명하는 것에서 샤를리 엡도의 의도를 유추해볼 수 있다. 

   
▲ 샤를리 엡도 작가 가운데 한명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만평.
 

샤를리엡도의 작가 임마누엘 샤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일란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 이 그림은 샤를리 엡도 이번호에 실리진 않았다. 만평은 아일란이 바다에 책가방을 메고 누워있는 사진이다. 그림 위에는 “C’est La Rentée”라고 쓰여 있다. 이 말은 프랑스에서 9월 학기가 다시 시작됐다는 뜻으로 쓰인다. 프랑스에서 샤를리엡도의 이번 호와 함께 이 그림이 구설수에 오르자 임마누엘 샤뉘는 프랑스판 ‘메트로’지에서 그림의 의도에 대해 “우리 아이들하고 같은 아이인데 이 아이에게는 학교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Des caricatures de Charlie Hebdo montrant Aylan Kurdi suscitent de vives réactions)

프랑스 공영방송의 텔레비전 리뷰 매체 ‘francetvinfo’는 사회학자 프레데릭 르마샹(Frédéric Lemarchand)을 인용해 “아일란의 사진이 너무 아이콘화 되고 성스러운 상태가 돼버려서 이 이미지를 우회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고 전했다. (관련기사:Menacé de mort pour son dessin sur Aylan, Chaunu réagit à la polémique)

이에 대해 프랑스에 거주하는 만화가 박경근씨는 풍자의 본질이 대상을 타자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씨는 “샤를리엡도는 풍자신문이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타자화를 기본으로 한다”며 “연민이나 동정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웃음이 나오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우리 아이 죽은 것처럼 슬픈데, 샤를리엡도에서 이런 유머러스한 그림이 나오니까 해석보다 분노가 먼저 나오는 것이다”며 “이 아이는 연민의 대상이지 웃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람들에게 아일란을 샤를리엡도처럼 타자화시키기가 어려운 대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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