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TV수신료가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되는 것을 분리징수로 해야 한다며 언론소비자주권행동(언소주)이 낸 TV수신료 분리고지거부처분 취소 소송의 첫 공판이 열렸다. 언소주 측은 통합징수가 시청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공영방송과 시청자의 상호책임성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반면 KBS와 한전 측은 이 소송의 목적은 사실상의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이라며 소송이 부적합하다고 맞섰다.

7일 오후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이승택 부장판사)의 심리로 1차 공판을 열었다. 원고는 최용익 언소주 공동대표 외 5인이며 피고는 KBS와 한국전력공사다. 현재 공영방송 TV수신료는 한국전력공사에 위탁해 전기요금 고지서와 합산 청구되기 때문에 KBS와 함께 한국전력공사도 피고에 포함됐다.

이날 공판에서 언소주 측 정관영 변호사는 “수신료나 수신료 인상 자체에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그 전제는 수신료 분리징수”라고 주장했다.

   
▲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이 지난 2월27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에서 수신료 분리고지 신청서 접수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언소주 측의 주장은 KBS와 한전 측이 “이 소송이 오로지 KBS를 공격하고 특정 단체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소송을 냈고 수신료 자체를 거부하려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론이다. 언소주 측은 “수신료 분리징수는 공영방송과 시청자간의 건강한 상호책임성의 관계를 형성토록하기 위한 행동”이라며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전기료와 수신료를 통합해 납부할지, 분리해 납부할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는 “생활필수 공공재인 전기요금과 공영방송 TV수신료를 통합하여 징수하는 것은 공영방송과 시청자의 관계를 억압적인 관계로 만든다”고 말했다. 이는 KBS가 TV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통합청구하며 납부방법, 계좌, 시기 등에 대한 납부자의 재산권 행사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했다는 뜻이다. 저소득층의 경우 수신료 2500원을 따로 납부할 수 있음에도 전기요금 미납 시 가산금이 발생하고, 반대로 전기요금 자동이체 시 수신료 금액 이하의 잔고부족으로 이체되지 않을 경우 전기요금에 가산금이 발생되는 경우가 있어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는 “해외사례를 보아도 터키 외에는 전기료와 공영방송 TV수신료를 통합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며 “전기료와 TV수신료를 통합징수하고 있는 터키의 경우에도 현재 이를 폐지할 계획이 있다”고 설명했다.

KBS와 한전 측 대리인 김오수 변호사는 언소주가 낸 소송의 부적법성을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 소송은 수신료 납부거부를 보다 용이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며 “수신료를 성실하게 납부할 생각이라면 분리고지 운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신료와 전기료의 통합징수의 합헌성과 적법성은 이미 사법부가 수차례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수신료가 특정 집단의 이해나 사상·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며 “BBC의 수신료도 납부의 강제성이 수반되는 시스템이다”고 말했다. BBC는 현재 연간 145.50파운드(약 24만 원)를 수신료로 받고 있으며 TV를 보유한 가구 모두가 납부 대상이다. 하지만 전기요금과 함께 수신료가 징수되지는 않는다.

또한 KBS와 한전 측은 언소주 측에서 수신료를 내지 않은 가정에 단전을 실행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 영화 ‘수신료 납부 거부 사건’의 한 장면.
 

이번 공판은 언소주가 지난해 7월 21일 TV수신료 분리고지 청구인을 모집해 KBS와 한전에 분리고지를 위한 민원신청의 연장선에서 이뤄졌다. 언소주의 민원신청에 대해 KBS는 분리고지를 거부했고 언소주는 분리고지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언소주는 KBS의 TV수신료 통합징수에 대해 시청자들이 원하는 경우에 한해서라도 전기료와 수신료를 분리해서 납부할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언소주의 주장에 대해 KBS는 수신료가 전체 재원의 40%에 불과해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기 어렵고 공익적 기능과 책무를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맞서왔다. 언소주 측은 이에 대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수신료나 수신료 인상의 제1조건은 수신료 분리 징수”라고 말했다.

이날 공판이 끝난 후 최용익 대표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공영방송이 관영방송이 됐을 때 시민이 할 수 있는 저항은 수신료 납부 거부밖에 없는데 한국은 강제적으로 수신료를 통합징수하고 있다. 전체주의적 사고가 바탕에 깔려있는 결과”라고 지적하며 “통합징수와 분리징수가 갖는 중요한 차이에 대해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다음 공판일은 10월 7일 오후 2시 20분으로 예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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