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조선일보 기자(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의 칼럼이 언론계에서 화제였다. 지난 26일자 <‘돌아온 것은 공허함만 남았다’ 대통령의 국어실력>이란 제목의 칼럼은 박근혜 대통령의 25일 국무회의 발언에서 나온 비문을 일일이 잡았다. “돌아온 것은 정치적․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았다”는 대통령발언을 두고 “돌아온 것은 정치적․도덕적 공허함뿐이었다”가 바른 문장이라는 식이었다. 

박은주 기자는 박 대통령의 문장 특성으로 ‘다소 긴 복문과 비문’을 꼽았다. 박 기자는 “국무회의 발언에서 발견된 비문과 어색한 문장은 대통령이 감정 조절에 실패한 흔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품위는 다른 대통령이 갖지 못했던 박 대통령만의 미덕이었다”며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대통령 언어의 품격을 유지하는 일”이라 강조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비문과 부정확한 어법을 풍자하는 ‘박근혜 번역기’가 화제를 모은 가운데 조선일보 기자가 직접 대통령의 발언에 ‘빨간 펜’을 그어가며 작정하고 첨삭에 나선 셈이어서 ‘이제 조선일보 기자들도 인내심에 한계가 온 것’이란 생각이 우선 들었다. 그런데 박은주 기자의 칼럼을 두고 일부 누리꾼은 박 기자를 조선일보에서 퇴사시켜야 한다며 열을 올리고 있다. 

   
▲ TV조선 '시사토크 판'의 2011년 방송분.
 

하지만 박은주 기자는 조선일보 애독자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한 기자다. 박 기자는 2011년 12월 1일 TV조선 개국당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박은주 기자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 건넨 첫마디는 “박 전 대표를 보면 빛이 난다, 이런 말을 제가 많이 들었거든요. 형광등 100개쯤 지금 키신 거 같습니다”였다. 박 기자는 그 유명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 탄생에 일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누리꾼들이 이 발언을 기억하고 있다면 박은주 기자를 퇴사시키라고 주장할 순 없을 것 같다. 

인터뷰 당시 옆에 있던 최희준 TV조선 앵커는 “특별히 무슨 관리를 받으시는 것도 있나요?”라며 박 전 대표의 마음을 한껏 기쁘게 했다. 그러자 박근혜 전 대표는 “아이, 너무 그렇게 띄워주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죠”라며 흡족해했다. 돌이켜보면 이런 언론의 막무가내식 띄워주기로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정치지도자에게 ‘정치적·도덕적 공허함’은 필연이리라. 

한 때 박 대통령을 한껏 치켜세웠던 조선일보 기자의 ‘비문 첨삭’은 드라마틱하다. 4년 전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의 결말은 박은주 기자의 칼럼 제목으로 대신한다. “돌아온 것은 공허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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