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으면 빨갱이’ 언론의 프레임 ‘전쟁’ 알고도 당한다
‘말 많으면 빨갱이’ 언론의 프레임 ‘전쟁’ 알고도 당한다
[창간 20주년 기획] 권력에 결탁, 약자엔 고통과 침묵 강요…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뻔한 레퍼토리

시대는 바뀌었지만 언론의 프레임(분석틀)은 고정불변이다. 언론은 파업을 ‘불법·정치 파업’으로 매도했고 ‘교통 혼란’의 주범으로 내몰았다. 경제 발전을 위해 모든 시민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었다. 

정치 기사에서도 ‘뻔한 레퍼토리’가 등장한다. 보수정당의 불법 대선자금 의혹은 민주당의 불법 대선자금으로 물타기 해주는 식이다. 사건마다 등장인물은 달라지지만 언론의 프레임은 한가지였다. 

이런 프레임이 20여년 이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전히 그 분석틀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 프레임으로 매도당하고 물타기로 피해를 본 측에서는 여전히 역전할만한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이런 프레임을 유지·재생산하는 곳이 한국 언론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언론사라 그 영향력을 역전시키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레퍼토리 1. 
“불법·정치 파업 중단하고 대화하라.”

언론은 대부분의 파업을 ‘정치 파업’으로 본다. 법이 허용한 최소한의 근로조건에 대한 쟁의행위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혹여나 파업을 하게 되면 ‘노사 간의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지만 정작 대화로 끝난 파업에는 가혹한 비판이 뒤따랐다. 

   
▲ 조선일보 2008년 6월 26일자 기사. 
 

 

언론은 “불법 노조투쟁 안된다”(세계일보, 1995-05-18), “한은 파업 절대로 안된다”(서울신문, 1997-06-19), “파업 즉각 중단하라”(동아일보, 1998-05-28)며 무조건 파업 중단을 촉구했다. 

파업 원인 보다는 “노동운동에 정치적 요인을 끌어들여서는 안된다”(동아일보, 1995-08-01)거나 “정치고려 앞선 노동법 개정안”(중앙일보, 1996-12-09) 등 정치 파업으로 몰아갔다. 노조의 협상 범위를 ‘임금인상’에 가둬버리는 역할을 하며 정도를 벗어난 일탈로 규정했다. 

이와 함께 언론은 ‘노사 대화를 통한 합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대화와 타협으로 사건을 해결하면 “기업 마음대로 정리해고를 할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을 확인하게 됐다는 것이 바깥의 한결같은 현실인식이다”(중앙일보, 1998-08-24)고 비난한다. 

레퍼토리 2. 
“청소년들은 시키는대로 공부만 해라.”

언론에 청소년은 항상 미성숙한 어른이고 정치에서 배제 돼야할 존재다. 1995년 강원도 한 고등학생의 하이텔 토론으로 시작된 강제 ‘자율학습’ 반대를 청소년들은 스스로 두발자유화, 교복 폐지 등으로 의제화 시키며 목소리를 키웠다. 2000년대 들어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명문화되기에 이른다. 

조선일보는 “두발자율화의 한계”(2000-10-17) 사설에서 “중·고교 교육과정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 “성인이 누리는 자유의 일단을 유보”해야 하는 단속 대상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 조선일보 2010년 7월 2일자 기사. 청소년을 미성숙한 어른, 정치적 배제 대상으로 보고 있다.
 

조선일보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추진해 확산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문란한 외모와 복장은 자칫 비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학교를 운영하고 교육정책을 정하는 기본적인 책임은 학생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2009-12-23)며 청소년을 철저한 관리 대상으로 뒀다. 

학생인권조례로 보혁 대결 구도가 굳어지자 조선일보는 “학생인권조례로 ‘촛불 홍위병’ 키워보겠다는 건가”(2010-07-02) 사설에서 “초·중·고생들은 아직 판단력이 성숙하지 않은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이라며 미성숙해 정치에서 배제해야할 대상으로 두는 관점을 명확히 했다. 

레퍼토리 3. 
“교직원·공무원 정치참여 안 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도 정치에서 배제될 존재다. 이들이 집단적인 정치활동을 하면 ‘국가 기본질서가 무너지게 된다’는 게 언론의 기본 시각이다. 

언론은 공무원노조 출범 자체를 “파문”으로 규정했다. “공무원 중립 위반 엄벌해야”(한국일보, 2004-04-01), “민노총·민노당 ‘산하 공무원’ 위해 세금 못 낸다”(동아일보, 2006-02-09), “공무원노조라는 괴물로부터 국민 보호할 장치 만들어야”(조선일보, 2009-10-22) 등 정치 활동에 특히 두드러진 반감을 표출했다.  

국가인권위가 2005년 “참정권 증진을 위해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현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을 때에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중시하는 단체나 개인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동아일보, 2005-12-19)고 비판했다. 

레퍼토리 4. 
“경제가 어려운데 파업할 땐가.”

노조의 파업에는 가장 많은 이유가 붙는다. 파업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수백가지다. ‘경제위기론’도 그 중 하나다. 언론은 “‘진정 안 되면 경제 치명’ 전국 총파업 태풍 노·사·정 대응”(국민일보, 1996-12-27), “지금이 ‘임금인상 파업’ 할 때인가”(서울신문, 1998-07-09) 등 경제를 이유로 파업 중단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강행으로 대외 신인도 추락, 외국인 투자가들의 발길도 끊길 전망”(서울신문, 1998-05-28)라는 문장이 대표적이다. “고유가와 물류대란 등으로 국가와 지역경제가 위기인 이때 소모적 파업은 자제해야 한다”(헤럴드경제, 2008-06-20)는 식으로 되풀이 된다. 파업은 경제가 어려우니 중단해야하고 경제가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그만해야하는 것이 돼버려 ‘파업 적정기’를 찾기 어렵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 동아일보 1998년 5월 28일자 1면. 경제위기를 다룬 기사와 파업 관련 기사를 1면에 나란히 배치했다.
 

파업의 경제위기론은 또 모든 원인을 파업으로 한정시키는 효과도 갖는다. 조선일보는 “기아차, 글로벌 판매량 전년比 7% 줄어…파업 여파”(20014-11-04) 기사에서 기아차의 글로벌 판매량 감소 원인을 파업 한 가지로만 적시했다. 

현대중공업이 단 4시간 부분파업을 한 날도 “노사분규 때문에 회식이 한 건도 없었다”(문화일보, 2014-12-04)는 비판을 들어야 한다. 

레퍼토리 5. 
“노동시간 단축은 언제나 시기상조.”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노동계는 1인당 노동시간을 줄여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고 일자리를 나누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언론은 “노동시간 단축은 시기상조”라는 재계 입장만 되풀이 한다. 

주 5일제 도입 논의는 1998년 시작됐으나 재계와 언론의 반대로 2003년 국회를 통과했다. 언론은 “때가 좋지 않다. 지금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할 경제위기 상황”(조선일보, 1999-03-04)이랬다가 정부의 의지가 확고해지자 “경영기반이 취약한 중소기업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며 “노사정 3자의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거쳐 입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동아일보, 2001-08-01)고 촉구했다. 

언론은 대체휴일제 도입이나 국경일의 공휴일 부활 등 이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체휴일제 도입은 기업옥죄기법”(문화일보, 2013-05-01)으로 규정했으며 “공휴일이 부족하다면 연차휴가 소진율부터 높이는 게 순서”(문화일보, 2014-09-12)라며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했다. 

레퍼토리 6. 
“말 많으면 빨갱이.”

색깔론은 모든 반대 세력에 붙이기 가장 좋은 프레임이다. 사안에 대한 별도의 설명 없이 ‘종북’, ‘좌파’ 라는 ‘딱지’만 붙이면 된다. 활용도가 높고 효과도 빠르다. 

세계일보는 1999년 5월 7일과 11일 잇따라 시론과 사설을 내보내면서 “예정대로 서울대회가 성사된다면 한총련 등 좌파세력들이 이에 가담, 노학연대의 기회도 될 것”이라고 추측하며 정부에 남북 교류 일환으로 추진되던 남북노동자축구대회 개최를 반대했다. 

한국경제는 2005년 4월 ‘노조 지금이 변할 때다’ 기획에서 “좌파적 색채를 띠었던 노동운동가들”, “강경 좌파 세력” 등이 노동운동 주도했다며 색깔론으로 몰아세웠다. 

   
▲ 중앙일보 2012년 5월 14일자 기사. 언론의 '종북' 몰이가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일조했다.
 

조선일보는 “전국공무원노조가 일부 조합원을 상대로 실시한 교육내용에 북한의 주체사상이 포함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2004-11-12), “(MBC)PD의 좌파적 또는 체제 전복적 이념 성향, 대부분의 경영진과 간부들이 노조 핵심 출신들로 충원돼 있어 조직 상하 간에 보도의 진실성과 취재의 윤리성에 대한 내부 견제와 검증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2005-12-19)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색깔론을 펼쳤다. 

‘좌파’ 색깔론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이후 두 정권에 대한 실정을 비난할 때에도 등장했으며 이보다 더 나아간 ‘종북’ 색깔론은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발전하기도 했다. 

언론은 세월호 참사 국면도 색깔론으로 덮어씌우고 있다. 조선일보는 “서울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일부 좌파 세력들이 이번 참사를 박근혜 판 광우병 파동으로 몰고 가려는 기도”(김대중 칼럼, 2014-05-06), “진보·좌파 진영이 세월호 추모 분위기를 이용해 대표적 시민·사회단체를 규합하는 등 세 불리기에 나섰다”(문화일보, 2014-05-13) 등 세월호 참사 국면에 색깔론을 들이댔다. 

색깔론은 사건의 책임이나 잘잘못을 ‘좌파’로 지목된 집단에게 몰아버리는 동시에 정작 책임을 져야할 대상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식으로 활용됐다. 

레퍼토리 7. 
“불법시위는 외부세력이 문제.” 

시민의 합법적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부정한 것으로 몰아버리는 데에는 ‘불법시위’라는 딱지도 자주 사용된다. 폭력·과격 이미지를 덧씌운 파업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엄단’을 주장한다. 

언론의 사설 제목은 “불법노조 단호한 사법대응을”(서울신문, 1995-05-23), “불법 파업 단호하게 대처를”(한국일보, 2001-06-13), “현대차 노조의 불법파업, 대가 치르게 해야”(조선일보, 2007-06-29), “김진숙 불법 농성도 법대로 처리하라”(동아일보, 2011-10-10) 등 오십보백보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 조선일보 2013년 7월 22일자 기사. 외부의 '시위꾼'이 폭력을 주도한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외부세력’에 대한 기준은 어느 집단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언론은 파업 등은 개별 단위사업장에 한정해야 한다는 사고가 강하다. 노동자들의 ‘연대’는 “외부세력의 조직적 개입”이 되고 “전문적인 시위꾼과 상습 주동자”는 강력한 처벌 대상이 된다. 

정부와 정치권의 파업 해결 노력도 욕먹기 일쑤다. 조선일보는 “분규현장의 불법과 폭력은 물론 정부의 무원칙과 방향감각 상실, 그리고 여기에 정치권의 과잉개입과 정치적 해결방식까지 가세했다”(1998-08-24)고 비난했다. 

물론 파업에 적극 개입해야할 곳은 있다. 검찰과 경찰이다. 언론은 “한전 파업 땐 강경대응”(1995-01-06), “공공파업 확산 땐 노조간부 연행”(세계일보, 1997-01-15) 등 검찰의 강경한 대응 방침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법파업 손배 청구 엄정히 해야”(동아일보, 2003-07-02)라며 엄단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레퍼토리 8. 
“집회·시위 때문에 교통혼잡.” 

집회·시위에 대한 반감을 가장 쉽게 이끌어내는 방법은 교통 혼잡이다. “(민주노총건설준비위원회가) 집회를 마친 뒤 명동성당까지 거리행진을 하며 한때 종로3가 왕복 8차선을 모두 점거하는 바람에 종로·을지로 일대가 극심한 교통 혼잡을 빚었다”(세계일보, 1995-06-11), “전국노점상연합회 소속 회원 2000여명이 집회를 마친 뒤 구호를 외치며 퇴계로를 거쳐 명동성당까지 2km를 행진하는 바람에 오후 내내 도심교통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국민일보, 2000-06-17),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어 한때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가 완전히 통제되는 등 극심한 교통 혼잡을 빚었다”(동아일보, 2005-12-02) 등 교통 혼잡 타령이다. 

   
▲ 문화일보 2015년 4월 24일자 기사. 집회에 대한 불만을 교통 정체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집회를 막는 경찰의 차벽이 교통 정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집회가 열리는 서울지역의 교통 흐름이 전국의 독자에게 얼마나 큰 뉴스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검토는 없다. 이미 서울행정법원은 ‘교통 혼잡만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판결을 2007년에 내놨다. 

일부 언론에서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경찰버스가 횡단보도 신호등을 가려 시민들은 차량 신호등을 보고 왕복 8차로를 건너야 했다”(경향신문, 2014-02-26)고 보도하고 있다. 교통혼잡 원인을 경찰로 돌렸지만 이런 견해가 일반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레퍼토리 9. 
“여당도 나쁘지만 야당도 문제.” 

정치 기사에서는 “사실 A당뿐만 아니라 B당도 나쁘다”는 식의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A당의 부정부패가 드러나면 B당의 부정부패를 들춰서 싸잡아 욕하는 식이다. A당에 대한 의혹을 분산시키고 논점을 흐려 ‘물타기 수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003년 한나라당의 ‘차떼기’ 대선자금 의혹에 대해 조선일보는 “대선 부패, 또 하나의 늪/ 대선자금은 줄었지만…아무도 모르는 당선축하금”(2003-12-17), “한화 10억 노캠프서 먼저 요구”(2014-01-16) 등 기사를 내보냈다.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대선자금으로 150억원을 차떼기로 넘겨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사실로 드러나 천막당사로 옮겨가는 등 곡절을 겪었다. 

노무현 캠프가 차려진 새천년민주당에도 대선 자금이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다. 민주당에 제공된 대선자금은 새누리당의 절반에 못 미친다. 불법자금 규모가 큰 새누리당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는 검찰에 언론은 “정치권 편파 수사 논란”(중앙일보, 2005-05-21)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 조선일보 2015년 4월 17일자 기사. 여당에서 시작한 불법 대선자금 의혹을 야당에도 제기하고 있다. 검찰은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관행은 여전히 유효하다. 고승덕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의원 폭로로 시작된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해 “‘전대 돈봉투’ 야당은 수사의뢰조차 않나”(동아일보, 2012-01-09), “여도 야도 자유롭지 못한 돈 선거… 구조적 쇄신으로 끊어야”(동아일보, 2012-01-09) 등 기사를 쏟아냈다. 여당 전당대회 돈 선거 놀이에 야당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도 이런 흐름은 반복된다. 조선일보는 “여야인사 14명 ‘성완종 장부’ 나왔다”(2015-04-17), “검, 성완종 측근 자료 300여건 분석 중”(2015-04-18) 기사를 연달아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듣도 보도 못한 얘기”라는 검찰 보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논법의 특징은 A가 야당, B가 여당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A가 새누리당, B가 민주당(새천년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등)으로 고정돼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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