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엄마가 4·16엄마에게,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지난 11일 진도 팽목항에 걸린 현수막의 문구다. 고통은 그 깊이로만 공감할 수 있다. 감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위로였다. 

세월호 사고가 참사로 변한지 1년이 흘렀다. 지난해 9월 11일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공간 ‘이웃’을 연 정혜신 박사와 진은영 시인이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이야기를 담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를 펴냈다. 2008년부터 고문피해자를 돕기 위한 상담을 시작해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만들어 한국 사회의 아픔에 직면했던 정 박사의 통찰과 문학과 정치의 접점을 찾아낸 진은영 시인의 대화로 구성됐다. 

‘이웃’에서는 ‘심리 치료는 이러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서 정말 이웃처럼 희생자를 대하는 공간이다. 정 박사는 “우리는 애도가 중요하고 애도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막상은 서로 애도를 가로막는다”며 “아이 이야기를 꺼리거나 우는 모습을 서로 보여주지 않는 것을 배려라고 생각하는데 서로가 서로를 배려한다면 아무도 애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아픔에 대해 쉬쉬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애도에 대한 편견인 셈이다. 캐시 캐루스(트라우마 전문가)도 “트라우마란 소화되지 못한 기억의 파편들”이라며 “이것이 사건을 겪은 이의 정신 속에 흡수되고 언어화돼야만 치유가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유가족이라 하더라도 24시간 슬퍼할 수 없고 희생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면서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피해자 가족은 세월호와 함께 희생된 가족을 제대로 떠나보내 못했지만 세월호 문제가 지겹다는 사람들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진은영 시인은 “세월호 피로감을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마음이 여리고 예민해서 작은 일에도 아주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왜 바뀔 것 같지도 않은데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느냐고 하는데 생각을 바꿔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세월호 얘기를 지겹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정혜신·진은영 지음/ 창비 펴냄
 

정 박사는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자세를 자전거를 배우는 법에 비유했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때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쓰러지지 않는다. 살다가 너무 슬플 때는 슬픈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넘어지지 않는다. 슬퍼야 할 때 슬프지 않으려 하면 반드시 넘어지게 돼 있다. 마음껏 슬퍼해야 한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고 더 빨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슬플 때 슬픔을 향해야 하는 것은 희생자 가족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해 6월부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인터뷰를 진행해 온 유해정 작가는 “(유족에게는) 고통만 있지 않다. 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에게 발견되는 삶의 의지나 조금씩 변해가는 세상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그동안 극한에 있던 가족들이 자신의 아이를 넘어 다른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보며 고통을 견뎌왔고 그것을 지켜보며 사랑을 보게 됐다. 피해자들과 함께했던 작가·시민들도 위로를 받는 것이다. 

정혜신 박사는 ‘상처 입은 치유가’(wounded healer)를 언급했다. 상처를 입은 적이 있고 그 상처를 치유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치유자가 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곧 최고의 치유자라는 것이다. 5·18 희생자 가족들의 한마디가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것과 같다.  

치유가 전문지식을 통해서만 되지 않는다. 정혜신 박사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김근태 선생에 대한 예를 들었다. “(김근태가) 고문을 받고 옥고를 치른 일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다. 그래서 의사에게 고문을 당할 때 어떠했는지 얘기했더니 의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런 일이 어떻게 있느냐고 반문하더라. 사회적인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면 개인으로서도 제대로 다가가지 못 한다”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가 필요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는 정신질환 중 유일하게 내면의 갈등 때문에 생기는 병이 아니라 외부 충격에 의한 질병이다. 따라서 거대한 분노의 진원지를 명백하게 밝히지 못한 채 개인 내면만 치유할 수 없다. 개인 심리치료를 오래 받는 가족들은 많지 않다.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 건설이 돼야 희생자들이 심리적 외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연약한 피해자로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치유는 아주 소박한 것이다. 사람 마음을 어떤 순간 살짝 만지는 것, 별 것 아닌데 사람이 휘청하는 것, 그냥 울컥하는 순간. 그것이 치유의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치유자가 될 수 있다.”(정혜신)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치유해내면 이들은 다시 우리 사회를 위한 ‘상처 받은 치유가’가 된다. 한국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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