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마음이 아팠던 게 거짓인터뷰다, 허언증이다 하는 말들이었어요. 이번 1심에서 그게 아닌 게 밝혀졌기 때문에 마음의 짐은 벗었어요.” 홍가혜(28)씨가 지난 9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홍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구조작업 등에 대해 소위 ‘거짓인터뷰’로 해경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8개월 가량 재판을 받아왔다. 홍씨는 해당 사건으로 101일간 수감생활도 했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2단독 장정환 판사는 홍씨의 인터뷰가 다소 과장되거나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항이 포함돼 있다 해도 해당 인터뷰 내용은 사실이거나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해경의 명예훼손과 관련해서도 “구조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주된 목적에서 글을 게시하고 텔레비전 인터뷰를 한 것이므로” 명예훼손 근거는 없다고 판시했다.  

“언론 보도되는 모습과 실제 모습은 다르다”, “지원해준다고 했었던 장비며 인력이며 배며 다 지원이 안 되고 있다”, “구조대원이라는 사람이 한다는 말이 여기는 희망도 기적도 없다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 모든 게 다 엉망입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4월 18일 오전 종합편성채널 MBN의 인터뷰에서 홍씨가 한 발언이다. 이 11분 37초의 인터뷰는 홍씨의 인생을 ‘망쳤다.’

   
 
 

홍씨의 발언은 세월호 구조작업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계기가 됐지만 홍씨 개인에게 닥친 ‘후폭풍’은 컸다. 홍씨가 과거 야구선수와 교제했단 점 등이 부각되며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논란의 중심에는 <스포츠월드> 김용호 기자가 있었다. 김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예전에 티아라 화영 사촌언니라고 거짓말하던 홍가혜” “허언증 정도가 아니다” 라고 썼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김 기자의 발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누리꾼들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어떤 비난을 들었나”라고 기자가 묻자 홍씨는 대답을 못 했다. 그리고는 증거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왔다. “제가 어떻게 고소를 안 할 수가 있겠어요?” 일간베스트 사이트에는 “홍어가혜 XXXXX 칼로 찢고” “홍가혜 X발 애미 XXX년 새끼도 문제다” “XX받이 년” 등의 심한 욕설이 난무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홍씨가 성행위를 하는 듯한 합성사진도 있었다. 

홍씨는 기자, 언론사, 누리꾼에 대한 각각 소송을 준비 중이다. 홍씨는 특히 언론사에 대해 “제 사진 쓰면서 물어보고 쓴 언론사가 하나도 없어요. 저 일반인이에요. 저한테 사실 확인도 안 하고 기사를 다 베껴 썼고요”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언론사의 이 같은 보도행태는 홍씨의 무죄 이후에도 반복되고 있다. 지난 12일 홍씨를 만나 MBN과의 인터뷰가 이뤄지게 된 경위, 무죄 판결 이후 심경 등을 들었다. 아래는 홍씨와의 1문 1답이다.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심경이 어떤가.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하는데 이게 축하받을 일인가 싶었다. 그 동안 너무 고생을 했다. 무죄 판결을 날 걸, 이렇게 고생을 시키다니 하는 생각이 화도 났다. (홍씨는 해당 사건으로 101일간 수감생활을 했다.) 그 동안 제일 마음이 아팠던 게 ‘거짓인터뷰다, 허언증이다’ 하는 말들이었다. 이번 1심에서 그게 아닌 게 밝혀졌기 때문에 마음의 짐은 벗었다.”

   
 
 

-재판과정은 힘들지 않았나.
“피가 빠짝빠짝 말랐다. 특히 증인들이 사실대로만 이야기를 해주면 되는데 모른다, 기억 안 난다고 이야기를 할 때 제일 화가 났다. 재판 하면서 소리 지르고 울고 화내고 했다. 억울하니까 못 참겠더라. 재판장님이 저를 자제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저는 재판이 끝나고 재판장님이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니다’라는 말이 인생의 충고처럼 와 닿아서 고마웠다. 그런데 법정에 오지도 않은 언론은 그걸 판결문처럼 내보냈다. 판결문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스포츠월드> 김용호 기자도 증인으로 출석했나. 
“김용호 기자 때문에 인생이 바뀌어 버렸다. 김 기자는 법원에 와서도 위증을 하려고 했다. 그때 위증을 하게 마음껏 내버려뒀어야 했다. 우리는 반박할 자료가 있으니까. 그런데 화가 나서 (김 기자한테) 소리 지른 게 후회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증인으로 와서 오히려 저한테 좋게 작용을 했다. 그 사람이 했던 말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검찰이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은 거다.” (김 기자의 트위터 내용과는 달리 홍씨는 자신이 티아라 화영의 사촌언니가 아니라고 수차례 밝혔다. 또 아이돌 가수와 사진을 찍기 위해 기자를 사칭 했다는 것도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MBN 보도 직후, 홍가혜 트위터 캡쳐라며 “이러다 나 영화배우 데뷔하는 거 몰라” 라는 내용의 트위터 사진이 돌아다녔다.
“그렇게 했으면 제가 미친년이다. 그런 글을 트위터에 쓴 적 없다. 경찰 조사 단계에서 제가 쓴 게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한 누리꾼이 포토샵 같은 걸로 조작한 거다. 그것 때문에 국민 신문고에 ‘홍가혜를 엄벌해 처해달라’는 신고가 100건이 넘게 들어갔다고 하더라. 그 사람은  끝까지 잡을 거다. 그 트위터랑 김용호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마녀사냥 당할 일은 아니었다.”

-MBN보도가 논란이 되자 잠적했다는데?
“19일에 담당형사와 통화를 했다. 21일에 출석한다고 문자도 남겼다. 그런데 20일까지도 제가 잠적했다고 나오더니 체포영장을 발부한다고 하더라. 어? 이게 이상하게 돌아간다. 내가 분명히 간다고 했음에도 이렇게 한다는 건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일에 전남지방경찰청 앞에서 담당 형사한테 전화를 했다. 가서 난리를 쳤다. 자기들이 그렇게 말한 거 아니라고 기자들이 그렇게 쓴 거라고 하더라. 기자 탓을 했다.”

   
▲ 홍가혜씨가 지난 4월 18일 MBN과 인터뷰했을 때 화면.
 

-구속은 어떻겐 된 건가.
“조사를 6시간 가까이 받았다. 변호사 선임해서 오겠다고 했다. 갑자기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하면서 저를 수갑을 채웠다. 되게 당황했다. 저항을 했다. 전혀 체포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기에 당당하게 갔던 거고. 이틀 뒤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그리고 목포교도소에 수감됐다.”

-수감생활은 어땠나
“20일 정도 독방에 있었다. CCTV가 24시간 가동되는 곳에 TV시청 금지, 운동도 혼자. 독방에 있으면서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 그때 하혈을 굉장이 많이 했다. 교도소에서는 병원에 바로 안 보내주더라.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편평상피에 이상이 있다고 했고 자궁경부암이라고 했다. 공황장애와 대인기피, 적응장애도 왔다.”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홍씨는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한숨을 쉬었다.) 엄마와 할머니는 잘 했다고 했다. 누가 했어도 너처럼 됐을 거라고 했다. 아빠는 굉장히 보수적이다. 완전히 새누리당이시고. 아빠는 제발 반성하고 자숙해라 정신차려라 그랬다. 울컥하더라. 내가 세월호 배 안에 있었으면 아빠가 세월호 유가족이다. 언론통제에 분통을 터뜨리면서 누군가 이 상황을 알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때 누가 그 이야기를 해줬다면 그 사람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MBN 인터뷰를 후회하지는 않나.
“후회 안 한다면 거짓말이다. 10분 인터뷰로 내 인생 27년이 바뀌었는데 후회를 안 할 수가 있나. 내가 운동권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후회를 안 할 거 같다. 나는 감옥 가기 전에 자유인으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던 사람이다. 이 일로 무죄 받고 나서도 감옥 아닌 감옥에서 살고 있다. 내 행동을 잘못하면 가십이 되니까. 그런데 후회 안 한다면 거짓인데, 후회를 하면 안 된다. 내가 인터뷰를 안 했으면 유가족은 바보 됐을텐데.”

   
 
 

-그 인터뷰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
“SNS를 봤는데 잠수 경험 있는 사람들 (진도로) 오라고 했다. 진도로 가는 길에 고 한세영 학생 아버지 카카오스토리를 봤다. ‘구조본부에서는 생존자가 많이 있는 걸 아는데 방송에서는 생존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덮으려 합니다. 도와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저도 공유를 했다. 그런데 누가 가짜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아버지 카카오스토리 댓글 중에 MBN작가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래서 제가 제보전화를 했다. (고 한세영 학생) 아버지가 아닌 거 같다. 제가 현장에 도착해서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사실 확인을 해서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이후에 MBN에서 인터뷰 요청이 온 건가.
“이후 작가가 전화가 와서 현장 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다. 현장이 우왕좌왕 정신이 없다고 말 해줬다. 그러다 인터뷰 요청이 왔다. 처음에는 나이 많은 남자 잠수사들한테 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다. (남자 잠수사들이) 뒷수습 골치 아파질 거 같아서 하기 싫다고 했다. 저는 그 뒷수습이 뭔지 몰랐던 거고. 그러니까 아예 거절할 생각은 안 하고 나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제가 무식했던 거다.” 

-왜 자신을 민간잠수사라고 소개했나.
“처음 통화에서 작가가 왜 내려가냐고 묻더라. 잠수를 하러 가는 자원봉사자라고 밝혔다. 작가가 ‘아 민간잠수사세요?’ 라고 물어서 ‘네’ 라고 그랬다. 신분 속인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민간인인데 잠수를 할 줄 알아서 민간잠수사라고 생각했다. 5년 정도 다이빙 경험이 있다. 2009년에 기초교육을 받았고 다이빙을 많이 했고 지금도 많이 한다.”

-보도 이후에 신상이 ‘털렸는데’ 기분이 어땠나.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들었다.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 죽으려고 했다. 9월부터 (증상이) 심각해졌다. 목을 맸었다. 다리 위에서 투신도 하려 했었다. 집 밖에도 나가지 못 할 정도가 됐다. 한번은 인도에 앉아 차가 지나다니는 걸 몇 시간이고 본 적이 있다. 뛰쳐 들어가서 받히고 싶은데. 내가 부딪히면 나를 받은 그 사람은 무슨 죄지. 그런 미친 생각에 몇 시간 동안 인도에 가만히 앉아있었던 적이 있다. 그만큼 제가 너무 괴로웠다.”

   
▲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에 올라온 홍가혜씨를 모욕하는 글.
 

-홍가혜를 모욕했던 일베 회원이 2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누리꾼들은 지금도 자기네들 돌 던졌던 건 생각도 못하고 나한테 연락이 와서 고소 취하해달라는 말을 한다. 진심으로 사과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마음의 치유가 안 됐다. 지금까지 17명 고소를 취하해줬는데 이제는 안 해줄거다.” (홍씨는 대구로 찾아와 사과를 한 고등학생 일베 회원, 경찰공무원 준비생 등 17명에 대해 고소를 취하했다.)

-언론사에 대한 법적 대응도 준비중인가.
“언론사, 악질 기자들. 법적 대응 할 거다. 언론은 무죄 판결 이후에도 사실이 아니라 고 밝혀진 루머들을 기사로 쓰고 있다. 제가 전화를 해서 따졌다. 그 편집장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끊어버리더라. 몇명이 선동을 하면 기레기들은 선동가들의 기사를 복사해서 뿌린다. 처음에 선동을 한 사람들은 분명히 목적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레기들은 이걸 멋모르고 복사해서 날라준다. 중요한 건 그렇게 해서 날랐든 뭐든 처벌받을 때는 다 같이 받는다는 거다.“ 

-해당 사건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을 거 같다.
“원래 성격이나 행동이 튄다. 어릴 때부터 관심을 많이 받고 자랐다. 이제 국민쌍년이 돼 버렸다. 유명세로 장사를 할 것도 아니고 그 트위터처럼 영화배우를 할 것도 아니다. 그런 꿈을 꿔본 적도 없다. 일단 웃음이 옅여졌고 민감해지고 까칠해졌다. 석방되고 나서는 친구들도 아예 안 만났다. 항소는 들어올 각오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저를 이렇게까지 고생시키고. (검찰이) 양심이 있으면 항소를 안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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