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연대와 지지가 큰 힘이 됐다.”

이종탁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이 지난 30일 한 말이다. 이날 희망연대노조, 씨앤앰, 협력업체는 해고자의 고용보장이 골자인 잠정합의안을 발표했다. ‘뜨거운 연대’. 이보다 씨앤앰 투쟁현장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 있을까.

폭염이 한창이던 7월에서 한파가 몰아치는 12월까지. 씨앤앰 해고노동자들이 177일 동안 노숙농성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연대’였다.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가입을 통해 뭉쳤다. 동료 정규직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일’이라며 나섰다.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소비자들과 시민사회단체, 종교계와 정치권까지 나섰다. 그 결과 노동자 해고는 협력업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원청은 책임 없다던 씨앤앰이 입장을 바꿔 해고자들의 전원 고용을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 12월 11일 오후 프레스센터앞 전광판 위에서 30일째 고공농성중에 근육 곳곳에 염증을 앓고 있는 강성덕 씨가 의료진으로부터 주사를 맞고 있다. 오른쪽에서 서서 지켜보는 이가 임정균 씨. 사진=이치열 기자.
 

노조로 연대한 장그래들, 거리에 서다

지난 7월 18일. 뙤약볕에 수 백명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파이낸스센터 앞 거리를 가득 메웠다. 씨앤앰의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파이낸스센터에는 씨앤앰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입주해 있다.

사건의 발단은 케이블기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2013년으로부터 시작한다.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이하 케비지부)는 설립 후 원청 및 협력업체와 ‘포괄협약’에 합의했다. 간접고용 노동자인 케이블기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원청과 협력업체는 협약을 무시한 채 임금삭감 등을 단행했다. 이에 케비지부 조합원들은 지난 6월 10일 경고파업에 돌입했고 나흘 뒤 현장투쟁으로 전환했다.

보복이 시작됐다. 원청 씨앤앰이 협력업체 교체 과정에서 조합원 전원의 고용승계를 거부한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7월 1일부로 노동자들이 대량해고됐다. 노조가 노숙농성을 시작하자 협력업체가 맞불을 놨다. 18개 협력업체가 직장폐쇄를 단행하며 노조를 압박한 것이다. 600여명의 노동자가 길거리에 몰렸다. 노동자들은 무기한 노숙농성을 결의했다.

씨앤앰은 협력업체의 결정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그러나 씨앤앰 태도는 이중적이었다. 노동조합을 파괴해 씨앤앰 매각가를 높여 ‘먹튀’를 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김영수 케비지부장은 당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씨앤앰을 매각할 시기를 놓친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파괴해 어떻게든 매각가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씨앤앰의 노조파괴 의혹과 먹튀 의혹을 증폭시키는 자료들이 나오기도 했다.<관련기사: 씨앤앰, 대체인력에만 15억원 투입…‘먹튀’ 의심 증폭>

   
▲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7월 18일 서울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원청업체 씨앤앰의 대주주 ‘MBK파트너스’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각계각층, 해고노동자들에게 손 내밀다

각지에서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다. 우선 케이블방송 지역 가입자들이 나섰다. 지난 8월 11일 지역 케이블 가입자들이 본사를 직접 항의 방문하여 직장폐쇄와 대량해고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고 있는 행태를 두고 볼 수 없어서 가입자와 지역주민이 나섰다”며 “가입자 해지 운동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들도 불법간접고용 구조개선과 비정규직노동자생존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아래 공대위)를 꾸리고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8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해결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정치권도 사태해결을 위해 개입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소속 우원식 의원과 은수미 의원은 9월 3일 씨앤앰 본사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두 의원은 원청 씨앤앰이 직장폐쇄, 파업 대체인력 투입 및 해고자 복귀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할 것을 주문했다.

그 결과 변화가 시작됐다. 협력업체의 직장폐쇄가 풀린 것이다. 그러나 해고자 109명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 케이블방송통신 공대위와 마포서대문‧노원‧강동송파 지역의 케이블 가입자 단체는 8월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씨앤앰 본사 앞에서 비정규노동자 대량해고‧직장폐쇄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김도연 기자.
 

고공농성 돌입...무엇보다 든든했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

계절이 바뀌었지만 씨앤앰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씨앤앰과 MBK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법이 없었다. 11월 12일 두 노동자가 찬바람을 뚫고 20m 높이의 서울신문 전광판에 올랐다.

해고노동자 강성덕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전광판에 오른 이유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동지들이 거리에 내몰린 상태를 옆에서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나. 해고자들의 생활은 점점 악화했다. 전기와 수도가 끊긴 사람도 있다. 우리 상황을 더 알리고자 올라왔다.”

   
▲ 씨앤앰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강성덕(35)씨와 임정균(38)씨가 지난달 12일부터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위에서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전광판 아래를 내려다 본 두 노동자는 희망을 보았다. 11월 18일 씨앤앰 정규직 노동자들이 전면파업을 결의하고 거리에 나섰기 때문이다. 씨앤앰 정규직 노동자들은 남의 일이 아닌 내 문제로 여겼다. 파업을 이끈 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 김진규 지부장은 “비정규직 생존권만 달린 싸움이 아니라 정규직 생존권도 달려 있는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씨앤앰이 매각되면서 나타나게 될 ‘구조조정’이 모든 노동자의 ‘생존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지부와 비정규직지부가 같은 동지라고, 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얼마나 있을까.” 전광판 위에서 임정균씨가 미디어오늘에 보낸 글 중 일부다. 농성 장기화로 지친 노동자들에게 정규직들의 파업대오는 최고의 ‘동력’이 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 속에 고공농성이 2주 넘게 이어졌다. 이후 씨앤앰 장영보 대표이사가 3자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는 등 사태는 조금씩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 11월 20일 오후 2시,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지부‧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조계종 노동위원회 소속 종교인과 노동자들이 해고자 109명 복직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3보 1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김도연 기자.
 

땅 밟은 노동자들, “끝이 아닌 시작이다”

12월, 사태를 연내에 해결하기 위해 각계각층이 전력을 쏟아 씨앤앰을 전방위 압박했다. 노동계에서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을 비롯한 6명의 노동계 인사가 삭발을 단행했다. 종교계에서 3대 종단이 번갈아가며 3보1배, 기도회, 두 차례 합동기도회를 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씨앤앰 사태를 제도권 정치 안으로 끌어들이겠다고 밝혔다. 상임위 차원에서 공론화를 시키고 씨앤앰 청문회까지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우원식 의원을 비롯한 을지로위원회 관계자들이 농성에 동참했다. 잠정합의안 발표 직전까지도 연대는 이어졌다. 30일 전국 234개 시민단체가 씨앤앰 노동자들과 연대하겠다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가운데)등 노동자 6인이 씨앤앰 해고노동자 복직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30일 오후 전원 고용을 약속한 희망연대노조와 씨앤앰, 협력업체로 구성된 3자 협의체의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해고노동자들의 전원고용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막판 뒤집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종탁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은 30일 “끝까지 대오를 유지한 조합원들과 고공농성 투쟁을 한 두 동지의 덕”이라고 밝혔다. 사태가 장기화됐음에도 씨앤앰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측이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씨앤앰 노동자들의 대오가 단단했던 원인이 ‘연대’라고 말했다. “씨앤앰 정규직 동지들, 언론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 종교계,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등 정치권까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교섭에 큰 보탬이 됐다”고 밝혔다.

만일 씨앤앰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지 않았다면 임금감축과 대량해고에 맞설 수 없었을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하지 않았다면,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그리고 정치권이 나서지 않았다면? 노동자들의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씨앤앰 복직농성은 끝났다. 하지만 앞으로도 강성덕씨를 비롯한 씨앤앰 노동자들은 다시 거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뜨거운 연대’를 통해 부당해고를 문제를 해결한 노동자들이 다른 현장에서도 ‘뜨거운 연대’를 선보일 계획이기 때문이다.

전광판에 올랐던 강성덕씨는 31일 지상에 내려오기 전 페이스북에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그는 앞으로의 연대계획을 이렇게 밝혔다. “이제 땅을 밟고 내려 왔지만 가까이는 저희 형제지부인 LGU+지부와 SK브로드밴드지부가 투쟁하고 있으며 아직도 45M, 70M 고공에는 세 명의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고 있다. (중략) 앞으로의 투쟁에도 열심히 연대를 해가며 항상 함께 하도록 하겠다.”
 

   
▲ 케이블하청업체 노동자 김인규(가명·40대)씨가 비가 오는 날에도 전주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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