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31일부로 계약이 만료되니 근로계약의 해지 예고를 사전 고지합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2년째 경비 일을 하는 장아무개씨(67)가 11월 초 ‘계약해지예고통보서’를 받았다고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지금껏 ‘계약해지예고통보서’를 받은 적 없다”고 말했다. 근로계약은 1년 단위로, 매년 근로계약서를 갱신하는 방법으로 계약을 연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8년째 이 아파트에서 일하는 동료 경비노동자도 지금껏 ‘계약해지예고통보서’를 본 적 없다고 말했다.

“12월도 아니고 11월 초부터 이런 걸 받게 되니 하루하루 마음 졸이며 지낼 수밖에 없다.” 아파트 단지 60여명의 경비노동자 전원이 ‘계약해지예고통보서’를 받았다. 장씨는 자신과 동료들이 해고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을 직감했다며 “경비원 임금이 오르게 돼서 인원을 감축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현실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전에 ‘계약해지예고통보서’를 작성하지 않았던 작업장이 갑자기 통보서를 줬다면 인원감축에 들어가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해당 사업장 노동자 전원에게 ‘계약해지예고통보서’를 수령하게 한 것은 전원해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단, 나중에 누구를 해고하더라도 법적분쟁에서 논란이 되지 않게끔 미리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부터 경비노동자의 임금이 현행 최저임금 90%에서 100%로 올라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문제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관리비가 오르기 때문에 경비 인원을 감축해 대량해고 사태가 우려된다는 사실이다. 실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2012년부터 경비노동자 임금을 최저임금 100%로 적용하려 했으나 대량해고사태가 우려 돼 적용이 미뤄진 것이다.

   

▲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사진=노컷뉴스.

 

 

장씨의 노동환경은 열악하다. 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휴게시간에도 장씨는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장씨는 “휴게실이 없어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내려가서 쉰다”며 “쉬는 시간에도 순찰을 돌거나 주차단속을 해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요즘은 낙엽 치우는 일이 힘들다고 한다. “낙엽을 다 쓸고 나서 조금 있으면 또 낙엽이 떨어지는데 치우라고 재촉을 하면 군말 없이 낙엽을 쓸어야 한다.”

경비노동자들이 ‘계약해지예고통보서’를 받은 상황에서 노동환경개선을 요구하기 더욱 힘들어졌다. 장씨는 “휴게실 전구하나 갈아달라는 요구도 들어주지 않는다”며 “더군다나 지금처럼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선 아무 요구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더욱이 장씨가 일하는 아파트는 근무규율이 엄격하다. 장씨는 “옆 라인에서 일하는 동료 경비들과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 담배를 펴도 안 된다”며 “지금같은 상황에선 이런 규율이 더욱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장씨는 월급이 127만 원이라는 점을 들어 “많은 돈이 아니지만 이마저도 없으면 생계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장씨는 아들이 아직 직장 없이 번역 아르바이트일을 하며 지낸다고 전했다. “방값과 가스, 전기 등 고정적인 지출이 있고, 갚아야 할 빚도 있어서 무조건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장씨는 “사실 2년 전에도 나이가 많아 새 직장을 구하기 힘들었다”며 “여기서 나가게 되면 일을 구해야 하는데 경비일을 구하긴 힘들고, 나이가 많아 막노동할 힘이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대량해고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이번 주에도 노원구 하계동의 한 빌라에서 경비원 6명 중 3명의 해고가 결정된 사례가 제보됐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예상보다 대규모로 해고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수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입주자대표회의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회사와 계약을 체결한다”며 “사실상 용역회사에게 고용을 승계하도록 하는 실질적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이만수씨는 입주민의 폭언을 듣고 분신을 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8일 '경비노동자 결의대회 및 이만수열사 추모제'. 사진=금준경 기자.

 

 

인원감축을 하지 않는 아파트라고 해도 관리비 인상에 따라 경비노동자의 노동환경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 사무국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인원감축을 하지 않더라도 무급 휴게시간을 늘리는 등 근무형태를 조정해 인건비를 인상하지 않으려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응을 준비하고 있으나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한상호 팀장은 “을지로위원회 차원에서 60세 이상 고령자 고용지원금 증액을 통한 ‘경비노동자 대량해고 방지예산’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산지원 외에 대량해고를 막을 대책이 없냐는 지적에 대해 한 팀장은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노사민정 협의회’를 구성해 토론회, 간담회 등을 통해 대량해고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