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의 잘못은 어떻게 따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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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말글바다] <123>‘척짓다’와 ‘등지다’

본디를 생각하지 않는 얼치기 전문가들이 우리 말글의 모양을 망가뜨리는 사례 중 하나다. 우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척짓다 (隻--) [척찓따] 서로 원한을 품고 미워할 일을 만들다.> <척지다 (隻--) [척찌다] 서로 원한을 품어 반목하게 되다.>

다음은 우리말을 바로 쓰자는 취지의 한 신문의 연재 칼럼이다. ‘척지다’를 설명했다.

“조선 시대에는 소송 사건의 피고를 척(隻)이라고 했다. ‘척지다’는 다른 사람을 고소해 피고로 만드는 일을 뜻했다. 이렇게 되면 상대와는 원망하는 사이가 된다. 원수처럼 된다. 그래서 ‘척지다’는 ‘서로 원한을 품어 반목하게 되다’라는 뜻을 갖게 됐다. …서로 사이가 나쁜 정도가 ‘등지다’보다 훨씬 강하다.”
국어사전의 ‘척짓다’와 ‘척지다’는 ‘미워할 일을 만들다’와 ‘반목하게 하다’의 차이가 있지만, 거의 같은 뜻이다. ‘눈을 뒤집는다’는 반목(反目)이 미워한다는 뜻이니 거기서 거기다.

신문 칼럼은 ‘척지다’를 풀고 ‘등지다’와의 관계를 새겼다. 그 풀이에 따르면 ‘척지다’가 일반적인 말이다.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이 쓰이는 말일 것이라는 얘기다. ‘척짓다’를 따로 풀이하지 않았으니 이런 짐작은 당연하다.

그런데 신문 칼럼에는 이상한 대목이 있다. ‘척지다’는 다른 사람을 고소해 피고로 만드는 일을 뜻했다고 했다. 만들 작(作)의 뜻이다. 즉 ‘척(隻)을 만드는’ 것이다. 만드는 것은 ‘짓는 것’이다. 글을 짓고 집을 짓고 할 때의 ‘짓다’다. ‘척짓다’를 ‘척지다’로 잘 못 쓴 것이다.

비슷한 의미의 ‘등지다’가 단서(端緖)다. 이 말과 착각한 것일 수 있다. 등지다는 말의 사전의 풀이는 ‘등 뒤에 두다’ ‘서로 사이가 나빠지다’는 뜻이다. 인체의 배[복(腹)] 뒷부분 등[배(背)]을 (서로) 지는[부(負)] 것이 ‘등지다’라는 말의 원래 뜻인 것이다.

그림을 보듯 생각해 보자. 등지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서있는 것이다. 짐을 진 것처럼 서로의 등을 지는 모양을 상상하면 ‘서로 사이가 나빠지다’라는 뜻이 짐작된다. 이 경우는 등짓기가 아니다. 등짐지기처럼 등지기다.

‘지다’에는 ‘만들다’는 뜻이 없다. ‘짓다’와 ‘지다’ 사이의 작은 모양의 차이에서 생긴 착오로 보인다. ‘척짓다’ 해야 할 말을 ‘척지다’로 일부가 쓰기 시작했고 이를 별 생각 없이 사전과 신문 칼럼의 필자가 따라 쓴 것으로 보는 것이다.

국립 국어사전도, 유명한 신문도 그렇게 얘기하니 ‘척지다’라는 말도 ‘척짓다’와 함께 쓰면 되지 않느냐고? 말도 글도 변하는 것이라고? 무지(無知)나 오류(誤謬)가 빚은 오염은 변화와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 척짓다’가 옳고, ‘척지다’는 그른 것이다. 그른 것을 고쳐야 한다.

언어에는 말밑 즉 어원(語源)이 있다. 말밑은 말글의 속뜻이 되어 언어생활을 든든하게 받쳐준다. 모든 이가 다 어원에 관한 소양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말글의 ‘전문가’들이 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언론(言論)을 편다는 것은 실로 난센스다.

설명이 안 되는, 논리가 서지 않는 글을 신문은 쓰면 안 된다. 사전도 근거(根據)를 설명할 수 없는 말을 실으면 안 된다. 스스로의 글이 논리와 근거를 가지는지를 맹렬하게 찾는 작업이 언론인이나 사전의 편찬자에게는 꼭 필요하다.

   
▲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원장
 
< 토/막/새/김 >
왜 조선시대에 척(隻)이 피고(被告)의 뜻이었을까? 隻의 어원은 새[추(隹)] (한 마리)를 손[우(又)]으로 잡은 그림이다. ‘새 한 마리’에서 ‘하나’ 또는 ‘한 짝의 하나’라는 뜻이 번져 나온 것으로 본다. 원고(原告)와 피고가 한 짝이 되어 진행되는 송사(訟事)에서 이를 일종의 법률용어로 쓴 것이다. ‘피고’라는 뜻으로 ‘척’이라는 말을 쓰자는, 일종의 약속에 따른 글자의 활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룻배 한 척’처럼 배[선(船)]를 세는 단위로도 쓰인다.
   
▲ 척(隻)자의 갑골문(오른쪽)과 개념도. 손[우(又)]으로 새[추(隹)]를 잡는다면 대개 ‘한 마리’일 것이다. 여기서 이 말이 ‘하나’라는 뜻을 갖게 됐고, 시간이 지나며 두 개가 한 짝을 이루는 물건의 한 짝의 의미로도 쓰이게 됐다. 사진=이락의 著 ‘한자정해’의 삽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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