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설립 12년만에 파업 예고…“인권위에 인권을”
인권위, 설립 12년만에 파업 예고…“인권위에 인권을”
스스로 발표한 인권 가이드라인마저 부정…인권위 “협상 여지 있다”

“고객의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 등으로 피해를 입은 직원을 일시적인 업무중지 등으로 보호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여성 감정노동자 인권가이드 실천을 위한 사업주 안내서’(2011)

설립 12년 만에 초유의 파업 사태를 예고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현병철 위원장)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는 인권위가 지금껏 다른 사업장에 적용했던 ‘인권’과는 거리가 멀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국가인권위분회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쟁의조정까지 갔던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이 결렬됨에 따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에 돌입하기로 지난달 31일 결정했다. 아직 구체적인 파업 시점은 밝히지 않았지만 인권위 비정규직 노조(정미현 분회장)를 중심으로 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인권위는 내년도 예산범위 내의 임금교섭과 “인사경영권은 사용자의 고유권한”이라는 이유로 노조 측의 협상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조합의 요구안 대부분은 그동안 인권위가 다른 기관·사용자에게 권고한 내용이어서 인권위 스스로 인권을 경시하는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국가인권위원회 공식홈페이지
 
정미현 인권위분회장은 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노조가 요구한 ‘업무중지권’의 경우 인권위가 여성 감정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가이드라인과 지난해 ‘여성감정노동자 인권 수첩’까지 만들어 배포했는데, 거기 나온 내용을 정작 내부 직원에게는 전혀 적용하지 않고 있다”며 “산업안전보건법상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노동자 스스로 업무를 중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인권위는 이를 단협 조항에 넣는 것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권위 상담센터에서 상담 업무를 하고 있는 직원들은 민원인들에게 심한 폭언이나 성희롱에 시달려 왔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 인권위 상담원은 “평생 살아오면서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욕설을 듣고 있다”면서 “여자의 성기를 빗대는 욕설을 비롯해 입에 담기도 힘든 모욕적인 살해 협박까지 감내해야 한다”고 술회했다.

이처럼 인권 침해가 빈번한 상황에서 노조는 직원들의 인격권과 휴식권을 보호하고자 ‘업무 중 내담자가 폭언 및 욕설 또는 성희롱 등 노동자의 인격권을 훼손하거나 안전을 침해하는 언동을 할 경우, 위원회는 조합원 또는 노동자가 통화종료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며 심신을 회복할 때까지 휴식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단협에 넣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해당 부서의 장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안을 제시하며 작업중지권 명문화를 거부하고 있다.

인권위는 또한 ‘업무준비시간’ 등 시간 외 근로시간과 관련해서도 예산이 없고, 다른 기관의 공무원들도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권위에서 제시한 단협안에는 ‘업무준비시간은 시간외 근로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기재돼 있지만 근로기준법 제50조에 따르면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진=국가인권위원회 공식홈페이지
 
이밖에도 인권위는 “상담, 홍보, 사무 업무에 종사하는 조합원은 예산이 없어 초과근무수당을 줄 수 없으니 무조건 대체휴가를 사용하고,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조합원은 대체인력이 없어 대체휴무를 줄 수 없으니 초과근무수당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도 비판을 받고 있다.

예산상의 이유로 노조가 초과근무수당을 양보한다 해도 한 직원이 한 달 평균 4~5일의 대체휴일을 쓰게 되면 쉬는 직원의 업무량이 그대로 전가되는데 이는 직원들의 초과근무시간을 되레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상담센터 직원들은 하루 20~30건의 민원인과 상담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하다 보면 업무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조는 업무조정 등 초과근무를 실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인권위는 이 역시 동의하지 않고 있다.

출산, 육아휴직 등에 대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존재한다. 인권위에서 인권경영을 강조하며 개발한 ‘인권경영 자가진단 도구’에는 ‘회사는 비정규직 근로자임을 이유로 사업장 내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지 않는다’는 지표를 권고하고 있지만, 인권위는 “공무원의 경우 출산, 육아휴직 시 대체근무자를 채용할 수 있으나, 무기계약직의 경우에는 예산이 없기 때문에 대체근무자를 채용하지 않는다”며 노조 단협안을 거부했다.

이 같은 인권위의 이율배반 행위에 대해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오죽하면 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이 사용자 측이 협상에 응하거나 절충하고자 하는 대화 태도가 전혀 없다면서 노조 측에 파업하라고 말할 정도였다”며 “청문회 때부터 자질 문제가 불거졌던 현병철 위원장과 손심길 사무총장은 20차례의 교섭기간 중 단 한 차례도 참여한 적이 없어 이런 분이 박근혜 정부에 연임됐다는 것은 현 정부의 인권의식 수준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위 인권경영 지표 3-3항에는 ‘회사는 노동자 대표가 단체협상을 요구할 때 실질적으로 의사결정권이 있는 회사대표와 협상하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장 의원은 노조 요구안들이 인권위의 이중적 논리로 거부되는지를 항목별로 검토한 ‘이율배반 시리즈’를 6일 열리는 인권위 국정감사에서 공론화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우리는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인 사항으로 보기 때문에 입장을 말하기 어렵고 사실관계도 확인해 드리기 곤란하다”면서도 “노조와의 협상 테이블엔 성실히 임할 것이고 노조 측 요구안에 대해서도 검토할 사항은 검토하고 신중히 볼 사항은 신중히 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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