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해설의 곳곳에서 강 교수의 설명에 대해 논쟁할 여지는 많지만, 신문 연재라는 성격을 감안해서 세세한 논란은 접어두고, 여기서는 그대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중요한 두 가지 문제만 지적하고자 한다. 이들 문제는 내가 강 교수에 대한 두 번의 반론 글에서 비판했던 <자본>의 곡해나 수정주의 문제라기보다는 <자본> 해석의 차이나 오독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자본> 해석을 둘러싸고는 맑스주의자들 간에도 서로 다른 견해들이 충돌한다.    

첫 번째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가치와 잉여가치의 실현문제다. 강 교수는 3회에 걸친 <자본> 제2권 해설(자본의 순환과 회전 그리고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에서 자본주의하 잉여가치의 실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이건 <자본>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잉여가치 실현과 공황에 관한 강 교수의 설명은 모두 잘못되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이미 (개별)자본의 순환에서 잉여가치 실현불가능성의 토대가 주어져있고, 이런 교환의 모순은 자본의 회전과 총자본의 유통에서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 교수가 설명하는 자본의 순환에서 실현의 모순은 이러하다. 자본은 화폐(100원)로 등장해서 상품(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구매하고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40원)를 생산해서 새로운 상품(140원)을 시장에서 판매한다. 그러면 처음 상품구매(즉 수요)는 100원인 반면, 상품판매(즉 공급)는 140원이 된다. 그래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잉여가치 40원은 판매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니다.

자본 A가 100원으로 다른 상품(생산수단)을 구매할 때 다른 자본 B는 이 생산수단을 자본 A에게 판매하는데, 그때 자본 B는 자신이 생산한 잉여가치도 함께 실현한다. 또 자본 A가 상품 140원을 판매할 때는, 또 다른 자본 C가 자본 순환의 첫 국면(구매)에 들어가면서 자본 A의 상품 140원을 구매하고, 그럼으로써 A의 잉여가치 40원도 실현된다. 이렇게 개별자본의 순환은 다른 개별자본의 순환과의 총체 속에서 파악해야 하는데, 맑스는 재생산표식에서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을 총괄하고, 여기서 사회적 총생산물이 가치적 측면에서도, 또 소재적 측면에서도 어떻게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가능한가를 보여주었다.

물론 재생산표식에 나타난 균형적인 교환조건은 자본주의하 무정부적 생산 때문에 일상적으로도 주기적으로도 불균형과 공황이 불가피하지만, 이런 불균형과 공황을 통해 재생산의 균형은 경향적으로 실현된다. <자본>의 세계는 이념적 평균이라는 추상수준에서 자본의 구조와 운동법칙을 평균적인 관계에서 서술한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강 교수가 그렇게 강조하는 사회적 평균의 개념을 상정하면, 재생산과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순적 서술이다. 시장가격의 변동 중심인 시장가치나 생산가격은 부문 내에서든 부문 간에서든 수급 균형을 전제한 개념이며, 따라서 부문간 이윤율의 균등화도 수급균형을 전제한 것이다. 만약 제2권에서 실현의 불가능성을 주장한다면, 사회적 평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그러면 제3권에서 부문간 이윤율의 균등화와 일반적 이윤율도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사실 잉여가치 실현문제와 관련된 강 교수의 이런 이해방식은 일찍이 이 문제를 제기한 혁명적 맑스주의자 룩셈부르크와 동일하다. 다만 로자의 문제제기와 이론적 오류가 이미 논쟁사를 통해 극복된 지금, 1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이런 방식으로 재생산 문제를 설명하는 강 교수의 학문적 태만은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두 번째 문제는 <자본>과 현대자본주의의 문제다. 강 교수는 <자본> 연재에서 다양한 비유와 사례를 들고 있는데, 상당 정도 <자본>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그 중요한 이유는 강 교수가 현대자본주의의 문제를 <자본>으로 직접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자본주의는 독점과 국가개입으로 특징지워지기 때문에, <자본>에 분석토대를 갖는다 하더라도 독점자본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매개 없이 현대자본주의를 분석할 수는 없다. 예컨대 강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사회적 평균을 만든다고 하면서 이건희를 예로 든다. 즉 삼성재벌도 중소기업과 똑 같이 평균이윤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는 강 교수가 삼성재벌이 독점가격과 독점이윤을 통해 중소기업의 평균이윤을 수탈한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고도로 발전된 단계에 들어서있고, 다름아닌 국가독점자본주의 자체가 다음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성숙했다는 표현이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보는 바처럼 이행의 조건은 성숙하다 못해 곪아터지는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강 교수는 해괴한 변증법을 가지고 자본주의의 성숙을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현대자본주의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완전한 몰이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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