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서체 소개할 땐 언제고… 종북세력 개입설?
북한 서체 소개할 땐 언제고… 종북세력 개입설?
조선일보 2011년 북한 서체 열풍 보도 “인터넷 다운로드”… 경찰 공안몰이 수사 조짐

새누리당과 보수 성향 언론들이 대통령 선거 재검표 청원 집회 현장에서 사용된 플래카드에 씌여진 북한 서체를 두고 외부세력이 개입됐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서체는 보수 성향 매체 스스로 과거에 우리나라 공영방송 자막에도 쓰일 정도로 북한 서체가 바람을 타고 있다고 보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수개표 촉구 촛불집회 현장에서 '전자개표기 무효! 수개표 실시하라!'라고 쓰여진 플래카드의 글씨가 북한 서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누리꾼들은 집회 현장에서 나온 서체는 북한에서 개발한 글자체인 '광명체'와 흡사하다면서 "외부 세력이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경찰 수사를 요구했다.

이에 발맞춰 조선일보 등 보수성향 신문들도 일제히 북한 서체 사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면서 누리꾼들의 의견을 인용해 '종북(從北) 세력 아니고서야 대체 누가 북한 한글폰트를 쓰겠는가'라며 종북세력과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내놨다. 조선일보는 "문제의 플래카드를 누가 제작·배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의혹설에 무게를 두고 보도하기도 했다.

13일 인터넷상 논란이 되고 보수 성향 신문들의 보도가 잇따르자 급기야 14일 새누리당도 북한 서체를 사용하게 된 경위에 대해 관계 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14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지난 12일 대선 수개표 요구 집회에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만들었다는 '광명납작체' 현수막이 등장해 충격"이라며 "나라의 근간을 흔들려는 종북세력이 재검표를 주장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관계 당국은 즉각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최고위원은 집회 현장 당시 나온 플래카드 서체 사진과 북한에서 나온 유인물 사진까지 들고 나와 "이 현수막이 북에서 사용하고 있는 각종 홍보물에 (사용된) 폰트와 똑같다"며 "광명납작체 폰트는 일반 네티즌들이 흔하게 사용하거나 다운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정 단체나 세력이 대량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집회 현장 플래카드에서 쓰여진 북한 서체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하지만 북한 서체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확인해준 기사가 바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지난 2011년 7월 9일자 <복고 바람 타고… 북한 서체, TV자막까지 등장>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북한식 서체가 우리나라 공영방송까지 사용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KBS 1TV <7080세대 복고풍 버라이어티 '낭만을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서 사용된 자막 서체에 대해 "1970~8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글씨체로 사용된 이 폰트는 당시 국내에서 개발된 폰트가 아닌 북한에서 개발된 '옥류체(玉流體)'"라고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그러면서 "옥류체는 김일성이 일제강점기 백두산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 승리한 것을 기념해 만든 청봉체(淸峰體)를 컴퓨터 폰트화한 서체"라며 "'로동신문' 등 북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이 폰트는 2000년대 중반 남북 폰트디자인 교류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이어 "북한 폰트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복고풍 분위기를 자아내고 싶을 때는 어려움 없이 북한 글씨체를 쓸 수 있게 된 셈"이라며 "가장 폭넓게 쓰이는 옥류체를 비롯해 가로획이 가늘고 세로획이 굵은 광명체(光明體), 정사각형 획에 굵은 글씨체인 천리마체 등 국내에 소개된 폰트 수만도 200여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또한 "북한 폰트는 인터넷 P2P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며 서체학자 박병천 경인교대 명예교수의 말을 인용해 "방송자막은 물론 포스터·현수막 등에서도 심심찮게 북한 폰트를 찾아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 지난 2011년 7월 9일자 조선일보 보도
 

한글미디어디자인연구소 노수용 소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북한에서 폰트를 팔거나 판매권 등 라이센징은 없지만 북한에 다녀온 관련업체 쪽에서 서체가 들어와 일찍부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 소장에 따르면 북한 폰트는 남북폰트교류연구회라는 단체에서 북한과 함께 3년 동안 공동개발한 폰트 이외에는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들어온 폰트는 없다. 하지만 인터넷상 쉽게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 폰트사용을 종북세력 개입과 연관시킨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이 노 소장의 주장이다.

지난해 10월 9일 세종문화회관, 한국폰트협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공동개최하고 문화부가 후원한 한글날 기념행사에서도 우리나라의 서체와 북한서체를 소개하면서 광명납작체와 옥류체 등이 소개 전시됐다.

보수 언론과 새누리당의 수사 촉구에 이어 경찰이 해당 서체에 대해 노수용 소장에게 문의하는 등 실제 수사로도 확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노 소장은 지난 13일 밤 경찰이 유선을 통해 집회 현장에서 나온 북한 서체를 문의하면서 종북세력과의 연관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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