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KT의 인력 퇴출 프로그램’에 의한 해고가 부당하고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청주지방법원 민사 1부(판사 이영욱)에 대해 소송 대리인 우수정 변호사는 “대기업의 퇴출 프로그램 불법성을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이자 노동자의 정신적 상처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한 중요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우수정 변호사는 14일 미디어오늘과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 대기업에 암암리에 반인권적인 퇴출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이를 “소리 없는 살인”이라고 비판했다. 우 변호사는 “퇴출 프로그램으로 압박을 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스로 사표를 쓰고 나오고, 가족이나 지인에게도 부당성을 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끝까지 저항하는 사람이 드물 뿐더러 저항하면 사전에 징계 사유를 만들어놓고 해고를 하기 때문에 공론화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법원이 이 같은 해고를 ‘불법’이라고 한 데 대해 우수정 변호사는 “법원이 해고를 무효라고 한 것을 넘어 불법으로 판결한 것은 KT가 사전에 해고 사유를 만들어 놓고 고의적으로 퇴출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 변호사는 “퇴출프로그램의 불법성을 법원이 최초로 인정한 판결”이라고 전했다.

우수정 변호사이 전한 KT 등 기업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행 과정’은 범죄에 가깝다. 관리자가 관리대상 노동자에게 음주를 시키고, 음주운전을 유도해 이를 징계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이 우수정 변호사의 주장이다. 이번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한아무개씨의 경우, 이 같은 ‘함정’에 빠진 경우다.

   
KT의 기업이미지. KT 누리집에서 내려받음.
 

우수정 변호사는 “이 사건의 수사기록을 보면 범죄적 사실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KT는 ‘퇴출 대상’에게 차별적인 생산성 기준을 적용했다. KT는 개통팀에 50대 여성을 한 명 배치했다. 이 업무는 전신주에 올라가야 하는 등 상대적으로 노동강도가 센 일반전화 개통업무에 한씨에게 주로 배치했다. “KT가 인사평가에서 전신주에 올라가는 일반전화 업무에는 0.5점, 설치가 쉬운 인터넷전용선 설치에는 2.0점을 줬다”면서 “업무의 80%를 일반전화 개통으로 받은 한씨에 대한 점수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고 우수정 변호사는 전했다.

이 프로그램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우수정 변호사의 주장이다. 우 변호사는 “시험점수가 낮다고 하는데 ‘퇴출 대상’이 일을 나간 시간에 나머지 인원들은 책을 펴놓고 시험을 봤고, 한씨는 혼자 시험을 보게 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연히 점수는 형편없었고, KT는 이걸 가지고 징계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인사평가와 업무 관련 성적은 징계로 이어졌고 결국 한씨는 파면 조치를 받았다. 이를 두고 우수정 변호사는 KT의 이를 두고 “애초 징계사유 없는 사람을 미리 선정해 사유를 만든 뒤 징계를 하는 방식”이라며 “범죄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판결이 기업의 불법·범죄적 구조조정에 대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수정 변호사의 바람이다. 그는 “이 판결 내용에 대해 언론은 ‘KT가 나쁘다’는 정도로 보도하는데 실제적인 구조조정이 불법·범죄적 행위로 점철돼 있고 이것이 근절되어야 한다는 것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 언론에서 KT의 부도덕성에 집중한다. 따지고 들어가면 이 문제는 KT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단행하는 구조조정의 근본적인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대기업에게 ‘구조조정을 자제하라’고 했다. 그런데 박 당선자가 구조조정의 밑바닥에 범죄적 행위에 대해 아는지 모르겠다. 아마 모를 것이다.”

우수정 변호사는 기업들이 정리해고를 할 때 뒤따르는 ‘부도덕성’ 비판을 피하기 위해 이 같은 프로그램을 실행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고에는 징계해고, 정리해고 두 가지가 있다”면서 “KT의 경우, 천문학적 이익이 있는 기업이고 노동자를 정리해고할 수 있는 기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먼저 희망퇴직을 받아 자발적인 퇴직을 유도한 뒤 저항이 심해지면 사직을 권고하거나 퇴출 프로그램을 가동시킨다”고 말했다. “보통 ‘못 쫓아내면 네가 나가야 해’라는 식이기 때문에 중간관리자들이 살기 남기 위해 범죄적 행태를 통해 대상자들을 내쫓는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9월 17일, 이석채 KT 대표이사는 한국경영인협회(회장 고병우)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을 수상했다.
 

 

법원 “KT 인력퇴출프로그램 해고는 부당”
‘20년 114 서비스→ 전신주 업무’ 노동자에 위자료 지급 판결… 줄 소송 이어지나?

법원이 퇴출 프로그램을 활용해 노동자를 해고한 KT에 대해 그 해고가 부당하며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도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대기업의 인력 퇴출 프로그램에 부당성을 지적하며 제동을 건 판결이 이례적인 만큼 관련 소송이 이어질지 주목된다.

지난 8일 청주지방법원 민사 1부(판사 이영욱)는 KT 해고자 한아무개씨가 KT와 이석채 사장을 대상으로 제기한 부당해고 및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한씨에 대한 해고가 KT 서부지역본부와 충주지사가 작성한 ‘인적 자원 관리계획’, ‘부진인력 퇴출 및 관리방안’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하면서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한씨는 지난 1981년 체신청 기능직 공무원으로 임용됐다가 1983년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직원으로 근무해왔다. 그는 2001년까지 약 20년 동안 114 전화번호 안내를 하다 2006년 고객기술서비스팀 현장개통업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2008년 10월 31일 KT는 고객클레임 유발, 직무태만 등으로 그를 파면했다.

해고 당시 한아무개씨가 소속된 고객기술서비스팀에서 현장개통업무를 담당하는 여성은 한씨 혼자였다. 한씨는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고 지노위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KT는 이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지만 중노위는 이를 기각했다. 현재 한씨는 같은 팀에 근무하고 있다. 현장개통업무는 담당하고 있지 않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씨의 해고가 KT의 퇴출 프로그램 시나리오의 방식에 따라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KT의 ‘부진인력 퇴출 및 관리방안’에 따르면, KT 충북지역본부 충주지사는 2007년께 114 잔류자, 민주동지회 관련자, 업무부진자 등 11명을 퇴출 및 관리대상 중 핵심관리대상으로 지정하면서 5명을 퇴출목표로 정했다. 추진방향에는 ‘일반직원과의 격리로 소외감 유발(온정주의 절대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퇴출 및 관리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에 따르면, 인력 퇴출은 ‘실적 및 근무태도에 대한 세부사항 수집→ 단독업무 부여→ (업무 부진시) 업무지시서 발부→ 업무촉구서 발부→ 서면 주의→ 업무지시서 재발부→ 인사상 경고조치→ 징계→(과정 반복 뒤) 파면’으로 이루어진다. 2005년 4월 1일 당시 인력관리실 인사팀 차장이 작성한 명단에는 전국 기준 부진인력은 1002명이고 한씨도 이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재판부는 이 같은 문건을 거론하면서 해고가 부당하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전직명령으로부터 이 사건 파면처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은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는 이사권 및 징계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해 징계해고 등을 할 만한 사유가 전혀 없는데도 오로지 근로자를 사업장에서 몰아내려는 의도에 고의로 어떤 명목상의 해고사유 등을 내세워 징계라는 수단을 동원해 해고 등의 불이익 처분을 한 경우”에 비유하면서 “사용자에게 부당해고 등에 대한 고의·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불법행위가 성립돼 그에 따라 입게 된 근로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도 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KT에 천만 원의 위자료를 한씨에게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한편 KT는 본사 차원에서 이 프로그램을 수립한 적이 없고, 지역본부·지사의 이 같은 프로그램이 경영능률 향상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한 인사관리권’이라고 주장했다. KT는 한씨의 파면 사유로 △고객클레임 62건 유발 및 실적 저조 △근무지 이탈 △조직 질서 문란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KT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KT가 클레임의 구체적 내용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아 인과관계가 없으며 정당한 징계사유로 인정하기 어렵고, 차별적인 업무 부여로 한씨의 직무수행능력이 낮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한씨가 전치 3주의 부상을 사전에 알렸지만 거절당한 뒤 5시간 정도 외출을 했고 △KT가 한씨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는지 여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한씨에 대한 노무관리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관리한 점을 들어 “파면처분은 징계의 재량권을 남용한 부당해고”라고 판시했다.

KT는 즉시 상고할 계획을 밝혔다. KT 홍보실 관계자는 “1심에서 승소했는데 2심에서 판결이 다르게 나왔다”면서 “상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원고 주장대로 퇴출프로그램을 운영한 바가 없다”면서 “상급법원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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