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씨가 지난 8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 언론계를 비롯해 한국사회가 때 아닌 현대사 재조명에 나서고 있다. 유신체제나 정수장학회 문제를 잘 몰랐던 시민들도 조금만 언론에 관심을 가지면 사실관계를 쉽게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한겨레·경향 등 진보언론을 비롯한 언론 대부분은 한국현대사를 재조명하며 박정희시대에 대한 재평가, 나아가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박 후보로 인해 등장한 ‘과거사 인식’ 논란은 크게 △장준하 의문사 △정수장학회 장물 논란 △인혁당 사건 △유신 독재 △부마 항쟁 △박정희 친일 등이다. 주로 박 후보의 발언을 통해 역사인식을 확인하고 이를 분석하면 박 후보 측의 해명이 나오는 식이다.
 

박 후보의 역사인식 문제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 역시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조중동은 애써 논란을 무시하거나 박 후보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정수장학회 논란과 관련해 최필립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박 후보에게 장학회 사회 환원을 촉구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과거는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뉴스타파는 1989년 당시 ‘박경재의 시사토론’에 출연한 박근혜 인터뷰를 공개하며 “박근혜의 역사는 거꾸로 흐른다”고 보도했다. 한겨레21이 지난 15일 발행한 표지기사 제목은 ‘너희가 유신을 아느냐’였다.

시사IN은 265호에서 박근혜 후보와 비슷한 길을 걸은 페루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를 조명했다. 게이코는 퍼스트레이디로 정계에 입문한 뒤 아버지의 지지자를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키웠다. 시사IN은 “게이코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아버지를 독재자로 규정하며 과오를 인정했고 패했다”고 전했다.

영화계도 유신독재를 재조명하고 있다. 조만간 ‘유신의 추억’이란 영화가 개봉하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던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의 고문을 다룬 영화 ‘남영동’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대선 시기를 맞아 등장한 이 같은 ‘현대사 복습’은 명암이 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젊은 세대에겐 과거에 대해 잘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긍정적 측면을 짚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30대 시민 대부분은 ‘유신’이란 단어도 잘 모르고 있었다. 한 시민은 유신체제를 두고 “김유신 장군 시대”라고 답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연이은 보도로 유신과 독재정권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승수 교수는 “정상적 상황이라면 대선쟁점은 지난 5년 간의 정부를 평가하고 미래를 위한 정책제안이 돼야 하지만 여권 후보가 과거와 현재를 단절하지 못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다면 더 이상 박정희 시대는 과거가 아니기 때문에 언론은 필연적으로 지금 박정희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며 “이는 사회적인 손해”라고 우려했다.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인 박 후보의 역사인식은 언론에게 최대의 화두일 수밖에 없다. 고재열 시사IN 정치팀장은 “과거사에 대한 인식은 앞으로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펼쳐질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좋은 판단의 근거가 된다”며 “만약 과거사에 대한 박 후보 인식이 국민 다수와 다르다면 국민 입장에선 미래를 같이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박 후보와 국민간 역사인식이 벌어질수록 관련 기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한 역사학자는 “최근 언론보도가 과거를 극복하는 문제로 나아가지 않고 단순히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략적 차원으로만 진행된다면 이는 분명한 한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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