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현대적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등 연구진은 최근 발행한 조사보고서 <북한 언론 현황과 기능에 관한 연구>(한국언론진흥재단 출판)에서 올해 초 김정은 체제 공식 출범 이후의 북한 언론 행태와 변화를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뒤 그의 아들 김정은은 2012년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공식적인 최고지도자로 추대됐다. 이후 김정은 체제에서 대외선전이 강화되고 언론은 현대적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이 연구진 분석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의 후계자 지명 이후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의 인터넷판을 만들어 해외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당 기관지를 가감 없이 해외로 내보내며 내부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북한 핵심 매체의 대외개방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분석했다.

언론을 대하는 김정은의 태도는 아버지 김정일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김정은은 지난번 광명성 3호 인공위성 발사를 앞두고 외신기자를 초청해 관련 시설을 공개하고 공개연설에서 아버지 시대를 간접 비판하는가하면, 위성발사 실패 이후에는 언론을 통해 “지구관측위성의 궤도진입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연구진은 “과거 김정일의 언론 노출이 현지지도나 해외방문 이후 몇 개월 뒤 영화를 제작해 동정을 소개하는 형식이었다면 김정은은 대중 앞에 서서 김정일이 하지 않았던 공개연설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북한 언론은 지난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 기념행사에서 김정은이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외모와 어투로 공개연설을 하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뉴스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연구진에 따르면 지난 5월 9일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주요매체는 김정은 제1비서가 평양의 만경대 유희장을 방문해 김정은이 보도블록에 난 잡풀을 직접 뽑으며 “손이 있으면서 왜 잡풀을 뽑지 못하느냐”고 관리자들을 질타하는 장면을 전했다.

북한 언론은 또 군부대와 산업현장, 학교, 행사장 등을 방문하는 김정은이 군인, 주민, 학생 등과 팔을 끼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전하고 있다.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의 근엄한 기념사진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또 김일성·김정일과 달리 공식석상에 부인 리설주를 동반,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부인 리설주 공개는 가정을 가진 안정감 있는 지도자상을 부각한 것”이라 분석했다.

이를 두고 연구팀은 “낡은 사상관점, 형식주의 등을 질타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직설적으로 전달되고 있다”며 “관료주의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인민들의 환심과 지지를 확보해 인민친화적인 대중지도자상을 연출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정식 SBS 북한전문기자(북한학 박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조선중앙TV를 예로 들면 김정은 등장 이후 속보성 보도가 등장했고 최근엔 스튜디오도 뜯어고쳤다”고 전했다. 안정식 기자는 “과거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하면 보통 하루 지나서 보도를 하고 2~3개월 뒤 영화가 나왔지만 올해 들어서는 현지지도가 당일에 보도되고 기록 영화도 사안에 따라 바로 다음날 나오는 식”이라고 전했다. 뉴스의 경우 젊은 아나운서로 앵커가 교체되고 아나운서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뉴스를 진행하는 방식도 도입됐다.

이 같은 변화는 김정은이 미디어에 노출돼 자라온 젊은 세대로 미디어를 적극 이용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연구진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혁명가계라는 점으로는 통치 정당성을 확보 어려운 현실에서 미디어를 이용한 이미지 조작과 상징조작이 정치공학적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정식 기자는 “(김정은이) 외국 TV를 많이 보고 자라왔으니 조선중앙TV가 답답해보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정식 기자는 “김정은 체제 들어 보도는 신속하게 보여주고 방송을 통해 어떻게 현재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나갈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지난여름 수해보도에선 한국의 수해복구 뉴스처럼 피해지역을 상세히 전해며 복구 작업에 나서는 모습과 복구 과정 등을 밝혔다. 안 기자는 “사건사고나 북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보도가 안 되고 있지만 국가적으로 불리한 보도는 아예 안했던 과거에 미뤄보면 수해보도는 큰 변화”라고 전했다.

한편 영국 BBC는 “김정은 제1비서가 자애로운 지도자로 변신했다”며 김정일 사후 6개월 간 북한 언론보도가 크게 4단계의 변화를 거쳤다고 전했다. 1단계에선 김정일 사망 직후 김정은을 2인자로 언급하고, 2단계에선 최고지도자라는 용어를 썼으며, 3단계에선 대중 활동을 대거 노출시키며 지배력을 강화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4단계에서는 현대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강조했다. BBC는 “김정은의 통치는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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