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파들이 중도를 표방한다. 보수진영은 진보 인사를 끌어들이고, 진보는 보수진영을 끌어들인다. 최근에는 경쟁적이다. 이런 선거 전략으로 중도파를 흡수할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진행자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최근 ‘영입 전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정치권의 통합 행보에 대해 넌지시 비판했다. 손 교수는 15일 서울 도곡동 EBS 본사에서 열린 다큐프라임 ‘킹 메이커’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손석희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각 대선 캠프의 인물 영입을 비판하는 것이라 주목된다. 지난달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새누리당 전략통으로 불리는 윤여준 교수를 영입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평가되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영입하며 ‘우클릭’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민정당 시절 경제민주화 조항(119조 2항)에 참여한 김종인 전 의원을 일찌감치 영입했다.

다큐프라임 제작진은 프로그램에서 보수‧중도‧진보를 자처하는 성인 1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실험했다. 진행은 손석희 교수가 맡았다. 제작진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20가지 질문에 중도파는 평균 3점 대에 위치했다. 1에 가까울수록 보수적이다.

실험 결과, 중도는 2(보수)와 4(진보)의 중간에 위치해있지만 이는 정책에 따라 다르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제작진은 중도파가 정책에 따라 1에서 5까지 다양하게 분포했다면서 정치권과 언론이 주목하는 중도파의 실체를 반박했다.

손석희 교수 또한 중도 이미지를 위한 영입 경쟁이 중도층 공략에 성공할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는 “(중도를 표방하는 것이) 옳은 전략인지 아닌지 이번 대선에 쟁점을 던져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작진인 이주희 PD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올린 루즈벨트, 레이건 같은 경우 다른 당원까지 자신에게 투표하게 만들었다”면서 “중간으로 가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고 말했다.

손석희 교수과 제작진은 루즈벨트와 레이건의 성공 전략으로 ‘정책투표 전략’을 꼽았다. 이들은 각각 1930년대 뉴딜 정책과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루즈벨트는 대공황 이후 재정 지출 확대와 금융 억압으로 대표되는 케인즈주의적 방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는 대선을 이 정책에 대한 찬반투표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레이건도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전망을 유권자에게 제시했다. 과거에 대한 평가, 즉 회고적 투표보다 ‘전망적 투표’로 유권자를 유도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 손 교수와 제작진의 시각이다.

손석희 교수는 언론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 및 대선 캠프의 네거티브 캠페인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손 교수는 손 교수는 대표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이 이루어진 선거로 꼽히는 1988년 미국 대선과 1996년 러시아 대선을 예로 들며 “네거티브로 당선됐다 하더라도 이후 그 나라 정치는 퇴보됐다고 본다”면서 “정책 검증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그 정책을 시행하는지 안 하는지조차 인식하지 않는 상황조차 생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책 검증 대신 네거티브로 진행되는 선거 상황을 두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이라며 미디어의 잘못을 지적했다.

손 교수는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네거티브는 옳지 않고, 선거전에도 효력이 없다고 믿고 있다”면서 “미국 선거 광고의 70% 이상은 네거티브고, 한국에서도 네거티브 선거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사례를 묻자 그는 “말하지 않아도 너무 많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손 교수는 한국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네거티브 캠페인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는 “유권자가 네트워크화돼 있고, 그 안에서 정보가 자유롭게 오가고 있는데 정치인이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미디어를 이용해 그것으로 대중을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디어오늘은 손석희 교수에게 MBC의 안철수 후보 논문 표절 의혹 제기, 새누리당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 의혹 제기 등에 대한 의견을 물었으나 “(의견을 밝히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정수장학회의 부산‧경남지역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한편 EBS는 오는 29일부터 31일까지 오후 9시 50분에 ‘킹 메이커’를 방영한다. 킹 메이커는 지난해 말 기획해 1년 여 동안 제작했다. 1부는 네거티브 전쟁, 2부는 ‘중도파는 중간에 있지 않다’, 3부는 ‘당신들의 선거운동은 석기시대의 것이다’이다.

연출자인 이주희 PD는 “정말 선거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나라는 문제에서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면서 “네거티브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입장을 취해야 중도파를 잡을 수 있는가, 인터넷과 SNS를 선거에 활용하는 목적은 무엇인가를 취재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