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드레퓌스사건’ 검사들이 왜 박근혜 캠프에…
한국판 ‘드레퓌스사건’ 검사들이 왜 박근혜 캠프에…
1991년 한국사회 흔든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대법원 3년째 재심 판결 미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알려진 1991년 유서대필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씨가 22년째 누명을 벗지 못하고 있으며 당시 강 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검사들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진영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이 <뉴스타파>를 통해 공개됐다.

1991년 초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며 전국적인 노태우정권 퇴진 운동이 진행될 당시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은 5월 8일 서강대 본관 5층 옥상에서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분신한 뒤 투신자살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동료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동료였던 강기훈 전민련 총무부장을 기소했다. 검찰과 언론은 그를 두고 “동료의 생명을 혁명의 도구로 삼았다”며 비판했다.

검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두 장의 유서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필적감정을 의뢰했고 그 결과 유서 글씨가 강 씨의 것이라고 결론짓고 그를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그에게 3년형을 선고했다. 강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사건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상처라 힘들다. 가면 갈수록 (오히려) 기억이 진해졌다”며 고통스런 심경을 드러냈다.

한국사회를 흔들었던 유서대필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1991년 정국은 87년 6월 항쟁만큼의 강한 저항으로 정부가 위기 상황에 놓여있었다. 많은 학생들은 정권타도를 외치며 분신하던 시기였다”며 “당시 정부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했고, 돌파구는 유서대필사건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반정부 시위로 위기였던 정부가 민주화 세력에 타격을 주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소문이 이어졌다.

혐의를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는 유서와 강씨의 필체가 같다는 것이었다. 강기훈 씨는 “분신을 사주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하지만 언론이 그렇게 쓰고 방송이 나가자 없는 사실이 있는 사실이 됐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 노태우 정부는 사회주의 혁명조직 ‘사노맹’의 핵심간부 박노해를 구속하는 등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이후 16년 뒤인 2007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는 ‘유서대필’사건을 다시 세상에 끄집어냈다. 과거사위원회는 분신한 김씨의 낙서장을 확보해 국과수와 사설 필체감정원 일곱 군데에 감정을 의뢰했으며, 그 결과 김씨와 강씨의 필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과거사 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국가에 사과와 재심을 권고했다. 1991년과 2007년 두 번의 필체감정에 모두 참여했던 국과수 출신 감정 전문가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1991년이 아닌 2007년 감정 결과가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2008년 1월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서울 고법은 “필적 감정 결과 등을 볼 때 유죄 확정 판결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밝혀 사실상 과거의 판결이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재심에 대한 최종 판결을 해야 하는 대법원은 그러나 3년째 판결을 미루고 있다.

강 씨는 현재 간암으로 투병중이다. 강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송상교 변호사는 “(강씨의) 마지막 소원이 법정에서 단 한번이라도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 자신의 진실을 한 번쯤 호소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인데 그마저 (대법원 때문에) 갖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대법원이 유서대필사건을 재심해야 한다는 판결을 3년 째 미루고 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기록 검토 자체를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강기훈씨를 ‘역사의 희생자'로 만든 검사들은 현재 대부분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991년 당시 강씨를 수사한 서울지검 강력부 소속 검사는 모두 9명. 유서대필 사건 당시 국과수에 근무했던 문서감정관은 “이례적으로 검사들이 국과수에 직접 와 필적 감정을 의뢰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당시 9명의 검사 중 김기춘 검사는 현재 박근혜 후보의 측근인 ‘7인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강신욱 당시 강력부장은 대법관을 지내고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역임했다. 남기준 검사 역시 박근혜 캠프에서 클린검증 소위원장을 맡았고, 광상도 검사는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에 참여했다. 윤석만 검사는 올해 대전지역에서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했으며, 현재 박 후보를 지지하는 외곽 조직에 있다. 임철 검사는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강 씨를 수사한 검사의 상당수가 새누리당(한나라당)에 이력을 남기고 있는 점은 상징적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1991년 유서대필 사건은 한국 사회에 검찰공화국이 탄생하고 검찰이 힘을 갖게 된 중요한 사건”이라 밝힌 뒤 “사법부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판결을 미루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강기훈씨는 “검사들은 본인의 입신을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22년이 지난 지금도, 사건은 현재진행형이고 그는 누명을 벗지 못했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은 지난 8월 30일 <‘강기훈 사건’ 재심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내고 “대법원이 (3년째) 늑장을 부리는 것은 억울하게 옥고를 치른 강씨의 인권을 한 번 더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은 “대법원이 유서대필사건 재심 결정을 미루는 것은 법원 슷로 자기 판결을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뒤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조직 보호의 논리에 빠져 강씨의 억울함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인사들은 지난 8월 29일 ‘강기훈의 쾌유와 재심 개시 촉구를 위한 모임’을 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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