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취재 아이템 찢으며 “취재 그만두라는데 왜 갖고 와”
취재 아이템 찢으며 “취재 그만두라는데 왜 갖고 와”
[인터뷰] PD수첩 해고 작가 정재홍 “22년 역사 PD수첩, ‘제로세팅’ 당하고 있다”

정재홍 PD수첩팀 작가는 170일 동안 PD수첩이 결방되는 동안 차기 아이템을 기획하면서 방송이 재개될 때만을 기다려왔다. 대선 후보자들의 경제민주화 구호의 현실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따져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일터를 빼앗겼다. 무려 17년 동안 일해 온 일터에서 쫓겨난 것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더욱 그를 분노케한 것은 아직까지도 정식으로 해고 통보를 받지 못했고 해고 사유도 뚜렷치 않다는 것이다. 하물며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노동자들도 계약서대로 해고 절차를 밟는다. 그는 올해 초 MBC와 전속계약으로 오는 12월까지 PD수첩팀에서 일하기로 돼 있었다. 정 작가는 "작가 교체가 전혀 불가능하다고 얘기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과정과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방송작가를 하루 만에 교체한다면 누가 방송작가를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더구나 시사교양국 소속 많은 작가들 중 하필이면 교체 대상자가 PD수첩팀 소속 작가들이고 왜 전원 교체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이번 PD수첩 전원 해고 사태 배경에는 PD수첩 죽이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정 작가의 생각이다.

정 작가는 예능작가로 출발해서 <이야기 속으로> <성공시대> 등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맡다가 2000년 2월 처음으로 PD수첩팀에 합류해 17년 동안 MBC에서 ‘작가’로 살아왔다. 단 하루도 공백 기간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MBC에서 시사교양작가로 뿌리를 내려 프리랜서라는 한계를 벗어나 방송작가의 직업화를 만들어보겠다는 희망도 품었다. 전문성을 갖추면 프리랜서가 아니라 직업 작가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PD수첩에 합류한 이후에는 권력층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자기 관리도 철저히 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일조차 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가족으로부터 눈치를 받으면서도 대출도 하지 않았다.

<검사의 스폰서> 아이템을 기획한 정 작가는 "검찰이라는 독립된 기관에서 검사들이 스폰을 받았다고 인정한 적도 없고, 더구나 성상납을 받았다고 인정하지 않았다"며 "그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은 그만큼 탐사보도프로그램 작가로서 사명감 없이는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는 사명감에 위협을 받는 일이 자주 빚어졌다.

검사의 스폰서를 포함해 <한 해군 장교의 양심선언-나는 고발한다>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등이 화제가 되면서 시청자로부터 탐사보도프로그램의 힘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좀처럼 탐사보도프로그램에서 나오지 않는 10%대의 높은 시청률도 기록했다.

그런데 지난 2010년 3월 엄기영 전임 사장이 방송문화진흥회의 압력을 받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물러나고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 이후 PD수첩 안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미FTA 문제, 4대강이나 노동자 관련 프로그램, 한진중공업 문제, 대북경협 문제 등 대통령과 정부와 관련된 문제 혹은 현 권력이 불편해할만한 아이템들이 줄줄이 '킬'을 당했다.

선정 과정에서 숱한 문제가 제기됐던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에 관한 아이템 폐기 과정을 보면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윗선'에서 얼마나 PD수첩 제작에 깊이 간섭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정 작가는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직으로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위원장직을 수락할 때 광분하는 분위기였지만 선정 과정으로 볼 때 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제가 심각한다고 판단해 아이템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철진 당시 PD수첩 팀장은 '왜 PD수첩은 한 나라가 잘되는 일에 찬물을 끼얹을려고 하느냐'며 아이템을 ‘킬’ 했다. 하지만 취재를 보강해 7대 경관의 선정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파악하고 선정 주체인 재단이 실체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 재차 아이템을 제출했지만 배연규 현 PD수첩 팀장은 정 작가가 보는 앞에서 기획안을 찢어버리고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왜 하지 마라는데 가지고 오느냐'고 험한 소리를 했다.

결국 정 작가와 PD들이 취재한 대부분의 문제점들은 지난 1월 KBS 추적 60분 <7대 경관의 진실을 파헤치다> 편으로 방영돼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뿐이 아니다. 4대강 공사로 전국에 걸쳐 18명의 노동자들이 사고로 죽어나가자 '이명박 정부의 속도전이 부른 참사'라는 주제로 아이템을 제출했지만 당시 김철진 팀장은 '많이 죽은 것도 아닌데 왜 아이템이 되느냐'며 아이템을 폐기했다. 이에 PD들과 정 작가는 단일 공사건 현장에서 사망한 통계를 분석해 18명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내 아이템을 다시 제출했지만 '노동자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며 또다시 아이템 제출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정 작가는 "취재를 해보니 한 사고는 포크레인 팔을 두배로 늘리는 불법 개조로 무리하게 강 가운데를 파려고 하다가 무게 중심을 잃고 뒤집어진 것"이라며 "담당 PD인 임경식 PD가 노동자들이 잘못해서 죽은게 아니라 무리하게 공사를 빨리 진행하다가 죽은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채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저희도 철딱서니가 없어서 계속 안 될 줄 알면서 아이템을 낸 것이 아니라 탐사보도프로그램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고 국민들이 알아야 할 문제로 봤기 때문에 제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작가는 "누가 배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해고 사태는 PD수첩을 무력화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 벌어진 결정탄이다. PD들을 솎아내고 대랑징계 등 엄청난 탄압을 가하고 새로운 PD들이 낸 아이템을 철저히 통제했다"며 "22년 PD수첩의 성과를 완전히 허물어버리고 자기네들의 PD수첩을 만들기 위해 제로세팅을 한 것이다. 권력자들이 불편하지 않은 PD수첩의 엔터테인먼트화가 될 것으로 추측한다"고 전망했다.

정 작가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도움을 받아 해고 무효를 입증하는 법적 소송을 검토 중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시사교양작가들의 PD수첩 보이콧 서명운동에 이어 타 부문 방송작가들도 동참의 뜻을 밝히고 있어 MBC 대 방송작가와의 싸움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정 작가는 "간단히 끝나거나 흐지부지 끝날 사안이 아니다. 작가의 자존심과 구성작가의 직업을 부정하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이 싸움은 방송 작가 전체와 MBC 경영진과의 싸움을 확산될 것이다. 기자회견 한두번 하고 그만두는 싸움이 아니다. 초유의 싸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