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방송 사수 170일 투쟁, 언론노동운동 역사를 바꿨다
공정방송 사수 170일 투쟁, 언론노동운동 역사를 바꿨다
언론자유 사수, 최장기 파업의 교훈… 연대의 가치, 사회적 약자에 관심 "달라진 방송 만들 것"

MBC 파업이 17일자로 잠정 중단됐다. 이번 파업은 170일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최장기 파업이라는 수식어를 남겼다. 과거 1992년 53일 파업과 2010년 39일 파업과 비교해도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평이 쏟아지고 있다.

최장기 파업 원동력은?

우선, 170일 동안 버틸 수 있었던 파업의 원동력이 역설적으로 현 정권의 언론 탄압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 심지어 창작의 자유마저도 침해당하고 있다는 목소리는 극에 달했다. MBC 파업도 공정 보도와 제작 자율을 회복하기 위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크게 볼 때 언론의 자유를 빼앗길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단순히 노사 간 협상을 통한 공정보도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언론 자유'라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라고 보는 것이 이번 MBC 파업의 본질이다. 최장기 파업을 지속한 것도 언론 자유라는 우리 사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언론인으로서 자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반대편으로 MBC 경영진도 김재철 사장 체제를 지키기 위해 도덕성 문제를 비롯한 숱한 의혹 제기해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았다. 정권 말기 김 사장 체제가 무너지는 순간 이명박 정권의 언론 탄압 정책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번 MBC 파업을 두고 이명박 정부와 언론인들 싸움의 축소판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입사 20년이 넘은 한 조합원은 "등나무 벤치에서 수십년 경력의 선배 조합원이 피켓을 묵묵히 들고 서 있었던 것은 후배들이 안쓰러워 하는 게 아니었다"면서 "언론인으로서 지켜야할 가치에 대해 공유를 하고 반드시 지켜야할 가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영방송 사장 도덕성

이번 파업의 화두로 올릴 수 있는 단어로는 도덕성을 들 수 있다. 김재철 사장은 도덕성이 문제가 되면서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민 여론이 악화됐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던 MBC 한 인사는 "법인카드 문제로만 보면 후임 사장이든 내부 구성원이든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기준선 자체를 높였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법인카드 유용 의혹, 무용가 J씨 관계를 통한 배임 혐의 등은 여전히 수사 당국의 몫으로 남아있지만 최소한 공영방송 사장의 자격 조건에서 도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MBC 노조도 "우리는 도덕성이 마비된 사장이 회사에 얼마나 큰 타격과 손해를 입힐 수 있는지를 지난 2년여 눈으로 확인했고 온 몸으로 실감했다"면서 "오는 8월 MBC 사장 선임과 후보자 검증 과정에는 다른 어느 공직자보다도 엄격한 도덕성의 기준이 적용돼야 하며 인사 청문회에 준하는 도덕성 검증의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일례로 이번 김 사장의 법인카드의 사용 논란을 통해 MBC 감사 기능을 강화하고 백서를 통해 공개하는 제도 개선의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폭발적인 국민서명운동…대중과의 소통 중요성 알려

이번 MBC 파업에서 대중운동을 통해 시민과의 소통 지점을 넓힌 것도 큰 성과로 꼽힌다. 장기간 파업을 벌이고 있는데 피드백이 없으면 고립감을 느끼고 전망이 보이지 않으면 파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 파업 초반까지 시민들이 MBC 파업을 관망하는 정도였다면 중반 이후 서서히 MBC 파업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무한도전 외주화 제작설 혹은 폐지설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MBC 파업을 알리는 큰 계기가 됐다. 이에 더해 다양한 소통 채널을 갖춘 것도 MBC 파업을 알리는 유용한 수단이 됐다.

MBC 노조 특보, MBC 노조 공식 트윗, <제대로뉴스데스크>,  <파워업PD수첩>은 중요 국면마다 노조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홍보회사 미디컴 소셜커뮤니케이션팀 양정 연구원은 "MBC 노조가 효과적으로 트윗을 운영하면서 트윗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현상이 뚜렷하다"며 노조의 '트윗질'을 평가하기도 했다. 지상파 방송과 보수 언론들이 철저히 MBC 파업을 외면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도 다양한 소통 채널을 효과적으로 운영했을 때 지지 여론을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도 보여줬다.

특히 김재철 사장 퇴진 및 구속수사 촉구를 위한 국민서명운동에는 한 달 만에 무려 6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동참하면서 국민 여론이라는 무서운 힘을 보여줬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해 석 달 넘게 걸려 47만 명이 참가한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서명운동과 비교해도 폭발적인 수준이다.

조직화된 시민사회단체와 지지자들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수치다. 정치권이 MBC 파업 사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국민 여론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지치기도 할 만한 파업 종반 길거리 서명전을 통해 오히려 힘을 얻었다. 직접 시민들과 만나 이번 파업의 정당성을 얘기하고 지지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권력 더 이상 공영방송 장악 힘들다

이번 파업을 통해 공영방송의 중요성과 함께 권력이 더 이상 공영방송을 장악하기는 힘들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992년 53일 파업에 참가했던 성경환 TBS 대표는 "800명 가까운 구성원들이 6개월 동안 단 한푼의 월급도 받지 못하면서 생계를 포기하는 것을 각오하고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지킨 것을 정치권과 사회에 인식시킨 사실이 중요하다"면서 "방송은 신문과 달리 무차별적으로 시청자에게 다가온다. 보도 공정성이 무너질 때 어떤 폐해를 주는지 사회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환 대표는 또한 "지난 1992년 파업 때는 노조의 상대가 지금보다 도덕적이었다. 당시 최창봉 사장은 최소한 공정방송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공정방송 훼손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았다"면서 "170일 동안 파업이 이어진 것은 그만큼 김재철 사장이 공정방송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거나 무시했기 때문이다"라고 비난했다.

무엇보다 이번 MBC 파업의 최대 성과로 800여명 가까운 조합원들이 업무 복귀 이후에도 공정방송에 대한 화두를 손에 놓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한 조합원은 "길거리 서명을 하면서 시민과 만나고 친구들과 술한잔 하면서 파업의 정당성을 설명했는데 현직에 돌아가서 당시와 유리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면서 "자신들이 뱉어난 말들과 공정방송을 바로잡기 위한 희생을 생각하면서 언론 자유와 권력 비판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연스럽게 연대 가치를 느끼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은 "조합원도 자연스럽게 저희 문제를 돌아보면서 쌍용차, 한진중공업, 반값 등록금 등 사회적 이슈와 소외된 사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동병상련을 느꼈다. 업무 복귀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같은 주제가)방송에 반영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2라운드 준비할 때

MBC 경영진과 일체 협상 없이 업무 복귀를 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아무런 소득 없이 파업을 접은 것 아니냐는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상 김재철 사장 퇴진에 합의했다고 기정사실화했지만 확실한 보장을 받은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김 사장 퇴진을 포함해 MBC 경영진과 일체의 협상 없이 들어간 것 자체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KBS 파업 당시 해고를 당했던 최경영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사측과 아무런 합의 없이 뚜벅뚜벅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더 대단하다"면서 "KBS가 먼저 들어와서 뭔가 얻어 가서 싸움을 한 것 같지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들어간 것이 중요하다. 합의 없이 들어갈 정도의 용기라면 어떤 것도 각오하겠다는 큰 결의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했다.

최경영 간사는 "MBC 조합원들은 언론이 지향하는 공정 보도를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에 싸운 것"이라며 "공정보도라는 것은 어느 순간 손으로 움켜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어가고 지켜가고 회복되는 과정이 남아있다. 김재철 사장이 나간다고 해서 공정방송이 그 날짜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김재철 사장 퇴진과 별개로 공정방송을 위한 보도 투쟁에 '올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뉴스데스크를 중심으로 한 공정보도 회복,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심층 보도 등 "제대로된 뉴스를 보고 싶다"는 시민들의 열망을 실현시켜야 이번 파업의 성과가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 기자는 "MBC 조합원들이 아무런 합의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안에서도 내부 투쟁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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