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파업이 101일째로 최장기 파업에 돌입했고, KBS 파업 역시 64일째로 접어든 가운데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야가 사장 선임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개정안에 합의하는 방향으로 파업을 접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파업 대오는 파업을 촉발시켰던 낙하산 사장의 퇴진 없이는 파업을 접을 수 없다는 의지가 강해지는 분위기다.

9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한국PD연합회 주최로 열린 '공영방송의 위기 어떻게 풀 것인가?'(김재윤 민주통합당 의원 후원)라는 토론회는 언론사 연대 파업의 정당성과 낙하산 사장 퇴진 없이는 현장에 복귀해도 큰 의미가 없다는 구성원들의 의지를 재차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이번 토론회는 최장기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사측에 맞서 파업 주체들이 직접 파업 사태를 해결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파업 전략 변화가 예상됐지만 오히려 낙하산 사장 퇴임 구호를 버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표출된 셈이다.  

파업 접는다고? 끝까지 간다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MBC 최승호 PD는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온다는데 비가 올 때까지 하니까 그런 것이다. 어떻게 이 싸움을 접겠나"라며 일각에서 우려하는 파업 중단이 '기우'임을 강조했다.

최 PD는 "문제는 싸움이 끝나고 난 후 "라며 사장 선임 제도 개선과 제작 독립성을 보완하는 제도 개선을 방안으로 내놓았다. 최 PD는 "일개 정파가 사장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정파 간 타협을 하지 않으면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하지 못할 정도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면서 사장 자격 요건 강화, 청문회 제도 도입 등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MBC의 경우 과거 시스템상 '국장 책임제' 하에서는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본부장 책임제'로 전환되면서 제작의 자율성을 일상적으로 침해받고 있다며 "노사간 단체협약상 국장 책임제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현재 한국일보 편집국장이 경영상 부진을 이유로 사실상 경질되는 사태를 두고도 편집국장 선임 시 구성원들 3분의 2가 투표해서 과반수가 찬성하면 임명이 통과되고 취임 이후 1년 이내 편집국장을 경질시킬 경우 구성원 3분의 2가 반대하면 경질을 철회하는 등 견제 장치를 둬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시민 접촉면 넓히는 파업 이슈 개발해야

이번 언론사 연대 파업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이명박 정부의 파열음을 낼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해야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기자 출신인 최용익 MBC 전 논설위원은 "2008년 적게는 수만명, 많게는 백만명의 촛불 시민들이 모두 어디로 갔나?"라며 "일종의 전 사회적 체념상태이며 포기 상태로 사회적 분위기가 지배하고 잇는데, 언론사 연대 파업은 이 사회의 새로운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또다른 6월 항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 논설위원은 MBC PD수첩이 권력의 최정점을 견제할 수 있는 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던 것은 “부당한 압력이 왔을 때 단결력이 강해지는 특유의 제작 문화 때문이었다”면서도 "이렇게 PD수첩이 쉽게 무너질 것으로 생각 못했다. 인사 이동으로 몇번, 몇사람 지방 보내고 그러면서 사전검열하고 직접, 간접적 압력이 들어오니 여지없이 무너지더라"라며 뼈아픈 지적도 이어갔다.

최 전 논설위원은 특히 "시민들 집단 전체가 각성된 인자가 모인 집단이 아니어서 일상에 파묻히면 언론사 파업을 한다고 해도 뭔가 이상하다 정도이지 절실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면서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깊은 이슈를 개발해서 접촉면을 넓히고 시민들과 같이 하기 위한 파업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각에서 정치권의 제도 개선 합의로 파업을 풀자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최 전 논설위원은 "정치권에 큰 기대를 하지 말자"고 정면 반박했다. 최 전 논설위원은 "새누리당은 원래 기대할 게 없고, 민주통합당은 계파 싸움이 치열하고 통합진보당도 완전히 지리멸렬 상태"라며 "여러분들이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정치권이 부담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제도 개선 방안 좋기는 한데…

권혁만 KBS PD는 이번 파업이 과거 파업과 달리 자발적 참여로 진행됐다는 점, 언론의 기본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팟캐스트 등을 통한 뉴스를 별도 제작하고 있다는 점, 낙하산 사장 퇴진이라는 동일한 목표의 연대 파업이라는 점, 최장기 파업임에도 지도부 교체나 내부 파열음이 없다는 점 등을 제시하며 이번 파업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김승수 언론정보학회장은 각 방송사 이사회의 권한이 막강하면서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면서 '이사회 삼심제'를 제안했다. 김 학회장은 "노조 파업 문제와 같이 사회적 문제가 벌어졌을 때 세 번의 토론과 합의를 거쳐서 (방안이)도출되지 않으면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사의 관리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이사회가 이번 파업에 대해 '노사간 문제'라며 손을 놓고 있는데 강제적으로 파업 문제를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는 방안이다.

양문석 방송통신위원회 위원도 방통위가 이번 파업 사태를 중재할 의무가 있는데도 직무 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 위원은 MBC 김재철 사장의 법인 카드 사용 의혹과 관련해 "MBC 방송문화진흥회와 MBC 감사가 사장에게 영수증을 요구했지만 자료를 주지 않았다. 이 자체가 어떻게 노사의 문제냐, 업무 절차의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방기의 문제"라며 김재철 사장이 방문진과 감사를 무시했는데 (방통위가)철저히 소명시키고 그 과정에서 방문진과 감사가 잘못했으면 기본적인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양 위원은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MBC 파업 사태는 김재철 사장 해임부터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며 "지배구조 개선, 직선제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제도가 없어서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임을 전제로 하고 (파업을)풀어야 한다. 해임되지 않는 이상, 협상도, 입법도 의미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에 대해 토론회 한 참가자는 "방송사의 최대 권한을 가지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3대 2라는 여야 구조 탓만 하지 말고 머리 깎고 피 터지게 싸워야 한다"며 양문석 위원을 질타하기도 했다.

김재윤 의원은 언론사 파업 문제를 개원 협상의 최우선 조건을 내걸겠다면서 "언론장악과 언론탄압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청문회도 열도록 하겠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고서는 원을 구성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3시간 동안 진행됐고 방송사 조합원 300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낙하산 사장 체제에서 벌어진 MBC와 KBS의 불공정 보도 사례, 불방 지시 사례, 기사 누락 사례 등이 발표될 때는 조합원들의 한숨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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