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들이 포털 사업자에 트래픽(통신 사용량)에 따라 망 이용 대가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유선통신 이용 대가를 포털 등 콘텐츠 제공업체에 부과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어서, 요금 부과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가 업계 간 논의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통신 사업자들끼리 일방적으로 요금을 결정해 부과하기로 해 업계 갈등이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3일자 매일경제 1면 기사<통신3사, 포털에 망 이용료 물린다>에서 “업계에 따르면 국내 유선통신사와 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주요 인터넷 포털 업체를 상대로 별도 요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사업자 간 정산원칙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는 네이버, 다음, SK커뮤니케이션즈, 구글 등 국내 주요 포털 사업자와 일부 동영상 사이트 등 30~40개 업체가 과금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이동통신 사업자끼리 통신망 이용 대가를 서로 주고받는 ‘상호 접속료’ 개념을 유선 인터넷 업체들에도 적용 △데이터 통신량에 따라 가바이트(GB)당 75~100원 부과 △유튜브를 운용하는 구글, 플랫폼 사업을 하는 애플 등 외국 사업자들은 한국법인에 '이익금 반환 소송'을 통해 부과 △‘순수 공익 목적의 트래픽’은 과금 대상에서 제외 가능 등이 포함됐다.

통신 3사가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은 스마트 TV 시장의 성장세를 보고 ‘선제 조치’를 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올해 초 KT가 삼성전자의 스마트TV의 ‘트래픽이 과다하다’, ‘깔아 놓은 망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스마트 TV 망을 끊은 것처럼, 향후에도 스마트 TV의 트래픽을 감안할 때 미리 이용 대가를 받겠다는 것이다. 지난 달 포털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다음TV’를 출시하는 등 스마트TV 시장에 진출한 것도 통신 3사가 발 빠르게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3사가 포털에 망 이용 대가를 요구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망 중립성’ 논란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미국 등지에서는 통신사가 일부 서비스를 차단하자 소비자 편익 차원에서 ‘모든 통신사업자는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망 중립성 원칙에 대한 논의가 수년 전부터 진행돼 왔다. 국내에서는 스마트폰 가입자가 증가함에 따라 트래픽이 증가하는 것을 두고 통신사들이 먼저 망 중립성 논쟁을 일으켰고, 작년에는 문자 메시지 서비스를 두고 카카오톡 차단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이 논쟁이 이번에는 통신사와 포털 간에 불 붙게 된 것이다.

하지만 통신사가 포털 등 콘텐츠 사업자에 망 이용 대가를 부가하는 게 가능한지부터, 이용 대가 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업계를 비롯한 사회적 합의는 전무한 상황이다. 또 포털쪽이 인터넷 데이터센터(IDC)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는데 이중으로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고, 오히려 개방적인 인터넷 문화를 옥죄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또 방통위가 망중립성 원칙을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이용 대가를 규정해 부과하는 것도 논란이 일 수 있다. 방통위는 ‘필요한 경우 합리적 트래픽 관리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구체적인 범위와 조건, 절차 등은 향후 별도로 정하기로 했다. 현재 정책자문위원회는 학계 및 연구기관, 업계, 소비자 분야 전문가 등 26명으로 구성돼 지난 2월부터 논의를 진행 중이며, 업계 간 합의점은 찾지 못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올해 1분기 실적이 전년 동월에 비해 20~40%씩 감소하는 등 수익 압박을 받고 있는 통신3사들이 일방적으로 이용 대가 부과를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유선통신망을 이용하고 있는 포털, 방송사, 가전업계 등의 반발도 커질 것으로 전망돼, 규제 감독 기관인 방통위가 업계 갈등을 어떻게 중재할지 주목된다.

시민단체쪽에서는 망 이용 대가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며, 방통위가 규제 의지를 갖고 망 중립성 갈등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망 중립성 이용자 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김보라미 변호사는 “국내에서 해외 사이트를 접속한다고 할 때, 접속 과정에서 여러 네트워크를 거쳐서 종착지까지 가게 된다”며 “그런데 그 과정에 있는 수많은 네트워크 사업자에게 접속료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국내 규제기관은 이 사안을 사업자들끼리 협상해 합의하라고 하는데 경쟁을 제한하는 담합이 이뤄지고 있고 소비자 후생이 제한 받고 있다면, 규제 기관은 칼을 들어야 하지 않나”며 지적했다. 망 중립성 이용자 포럼은 3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mVoIP(모바일 인터넷 전화) 등 망 중립성 관련 토론회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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