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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2주기, 드러나는 비밀의 마지막 퍼즐 조각은?
천안함 2주기, 드러나는 비밀의 마지막 퍼즐 조각은?
최초 좌초 보고, 제3부표 등 의문 여전… ‘1번’ 어뢰 증거능력 검증이 핵심 쟁점

지난 26일로 천안함 침몰 사건 2주기가 지났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점차 언론의 관심도 2주기를 전후로한 추모 분위기에만 맞춰졌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가 검찰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2년 째 재판을 받고 있는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민군합조단 민간위원)와 변호인단은 오는 4월 총선이 끝난 뒤부터 본격적인 사건 쟁점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변호인단은 이 재판이 단순한 명예훼손 사건이 아닌 천안함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가능한 한 모든 분야의 실체 확인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증인신문에서는 사건초기 보고과정(최초 좌초 및 새떼 판단 후 사격 등)과 어수선한 군의 대응실태에 대해 과거 감사원 감사결과나 국정감사 때 보다는 보다 분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4월 23일 이뤄질 8차 증인신문 공판기일부터는 실종자가족들에게 설명했던 ‘최초 좌초’가 적힌 작전상황도 검증 등이 이뤄진다.

▷좌초는 있었나 “사건당일 보고는 좌초 뿐”=이번 천안함 재판의 증인신문이 시작되면서 주목됐던 것은 승조원 구조에 나섰던 해경 관계자와 해군 작전처 간부가 한 목소리로 최초의 천안함 사고 원인을 좌초로 보고받았다고 증언한 점이다. 유종철 해경 501함 부함장은 지난해 8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당시 재판장 유상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 출석해 2010년 3월 26일 밤 9시34분 상황실 부실장으로부터 ‘해군 772함이 백령도 남서방에 사고가 났으니 빨리 인명을 구조하라’는 연락을 받고, 1분 뒤인 35분에 출동했다며 전문으로 좌초라는 전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유 부함장은 구조하러 가는 중에도 ‘좌초’라고 연락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해경에 구조를 요청한 해군도 사건 당일 사고상황을 좌초라고 보고했다. 당시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으로 천안함 구조·탐색 작전을 지휘했던 심승섭 해군 교육사령부 군사기초교육단장(현직·준장)은 9월 19일 증인으로 출석해 천안함 사고직후인 21시35분경 2함대사령부로부터 상황실 계통으로 “원인 파악중인 상태였다. 상황실 계통으로 좌초인 것 같다는 얘기가 있었다. 파공이라는 얘기도 있었다”고 보고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해작사에서는 합참에 보고할 때 (최초상황이) 21시15분경이었으며 ‘좌초’ 보고가 (2함대로부터) 21시35분경 접수돼 (원인을) 파악중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심 전 처장은 사고 당일엔 2함대사에서 좌초 외에 어뢰 피격 가능성에 대한 보고는 전혀 없었다고도 했다.

▷함수 17시간 동안 왜 방치했나=천안함 침몰직후 17시간 가량 떠있던 함수를 보고도 해군이 좌표확인 및 부표설치를 하지 않은 사실도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 김진황 해군 해난구조대장은 11월 14일 법정에 나와 “사고 다음날 아침 8시50분께 헬기로 백령도에 도착하자마자 해병대 대대장과 함께 사고 현장부근인 용트림바위 앞 전망대로 갔더니 멀리서 ‘함수코’가 물위로 조금 나와 있는 부분이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전진기지를 만들고, 55대 전대장에게 보고했지만 정작 함수의 좌표확인과 부이설치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함수는 3월26일 오후 1시37분 완전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심승섭 전 해작사 작전처장은 가라앉기 전까지 함수의 위치를 파악한 상태였고, 이 이동좌표는 탐색구조단에 통보된다고 밝혀 증언이 엇갈렸다. 사령부는 통보했다는데, 받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제3의 부표, 진실은=고 한주호 준위가 사망한 곳이 함수가 아닌 제3의 지점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이른바 ‘제3의 부표’도 이번 재판의 쟁점이었다. 해군은 해당지역에 ‘참조부이’를 설치했을 뿐 실제 그 안에서 작업한 일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제3의 부표’ 의혹을 제기했던 KBS의 취재진은 UDT 동지회원들이 당시 제3부표 위치에서 작업했고, 한 준위한테도 들었다는 말을 했다며 여전히 의문을 제기했다.

황현택 KBS 기자는 동지회원들과 녹취자료까지 법원에 제출했다. 제3의 부표란 함수와 함미 침몰지점 사이에 있는 지점(용트림바위 앞)에 놓인 부표로 UDT동지회원들은 인터뷰 당시 이 곳을 함수로 착각했다고 증언했다. 취재진은 이들이 지목한 위치가 함수침몰지점과는 전혀 다르다는 판단에 따라 이곳을 제3의 부표라고 판단해 의혹을 제기했었다.

황현택 기자는 진술서에서 “당시 제3의 부표에 함수나 함미가 아닌 ‘제3의 물체’가 침몰해있을 가능성까지 가정하고 있었다”며 “제3부표 보도를 오보라 시인한 바 없고,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다”고 밝혔다.

▷지진파에 해답이 있다=향후 재판에서는 천안함 사고 당시 수중폭발이 있었는지와 폭발을 일으켰다는 1번 어뢰의 검증이 ‘과학적인’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방부 합조단과 많은 언론들이 어뢰 폭발의 가장 유효한 데이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지진파이다. 합조단은 보고서에서 백령도 4개 지진관측소와 11개 음파탐지소에서 3월 26일 9시21분58초 규모 1.5의 지진파와 공중음파가 감지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학과 교수는 미국지진학회지에 ‘당시 지진파가 천안함의 폭발을 입증한다’는 취지의 연구논문을 기재하기도 했다. 지진파형이 인공지진에 가까웠고, 추정된 위치가 합조단 발표 폭발원점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근거였다.

그러나 지질자원연구원이 감지한 지진파 감지 시각보다 홍 교수가 도출한 시각이 3초 가량 앞당겨졌고, 그 위치역시 합조단 발표 폭발원점에서 1.5~2km 가량 남동쪽이었다.

폭발량도 모순투성이라는 지적이다. 합조단이 들고나온 ‘레일리 윌리’라는 공식과 TNT 250~360kg 규모의 폭발량은 일치하지 않았다. 실제 이 공식은 심해(수심 1000m 안팎) 석유탐사를 위해 수중 발파작업을 할 때 석유위치 감지를 위해 만든 일종의 경험적 ‘산식’이다. 그러므로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홍태경 교수는 26일 “이 공식은 맞을 수도 있지만 안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합조단의 최종보고서 발표회견 때도 기자들로부터 실제 계산량과 안맞다는 비판세례를 받기도 했다. 규모 1.5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실제 폭발량은 합조단 발표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밖에도 TNT 250kg 이상의 수중폭발이 천안함 선저 5~9m 아래에서 일어났는데도 다친 생존자가 없고, 사망자는 모두 익사였으며 파편의 흔적과 화약의 흔적이 없었다는 점은 폭발의 가능성을 여전히 부정하는 정황이다.

최근 내부 유증기 폭발로 사고가 발생한 두라3호의 경우 팔다리가 없는 시신이 여럿 등장했을 뿐 아니라 배의 파괴 상태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벌어져있었다. 또한 천안함의 절단 형태(삼각형) 역시 폭발후 생긴 충격파의 방향에 비춰볼 때 들어맞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편, 합조단이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기 5일전 건져올렸다는 어뢰추진체(1번 어뢰)의 폭발로 천안함이 침몰됐는지도 검증 대상이다. 정기영 안동대 교수 등은 선체와 어뢰에 있던 물질이 폭발후 생긴 흡착물질이라는 합조단 주장에 대해 성분 분석결과 알루미늄수산화염수화물(침전물)로 나타났다고 발표한 바 있다. 어뢰 추진체 구멍에 붙어있던 가리비와 멍게의 실체도 법정에서 뜨거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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