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이야기] 기자가 멋대로 작문, 안보 상업주의 시초
[오보이야기] 기자가 멋대로 작문, 안보 상업주의 시초
‘공산당이 싫어요’보도 (조선일보`68년`12월11일자)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대관령 못미쳐 이승복기념관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기념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모르긴 몰라도 무장공비의 잔학성과 한 용기있는 소년의 울부짖음이 오버랩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승복군의 “공산당이 싫어요”가 한 기자에 의해 작문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자못 궁금하다.

지난 68년 12월11일자 조선일보는 사회면 머리에 <공산당이 싫어요─어린항거 입찢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보도과정을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무장공비들이 이승복군의 집에 들이닥쳐 일가족 4명을 무참히 살해한 날은 12월 9일 밤이고 기자들이 현장에 달려온 시간은 10일 낮. 이미 승복군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고 유일한 생존자인 승복군의 형 학관씨(당시 이름은 승원)는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서 병원으로 실려갔다.

현장에 갔던 기자들은 이미 참사주변이 정리돼 있었고 군인들이 주민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사건개요외에는 달리 취재할만한 내용도 대상인물도 없었다 한다. 기자들중 어느 누구도 이승복군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을 했다는 사실을 들어 본적도 없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군인, 경찰, 주민들도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이 나온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일한 증언자가 될 수 있는 학관씨가 이 말을 전했을까.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학관씨는 공비들에게 머리를 돌로 맞아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으며 병원으로 후송된 다음에도 며칠후에야 깨어날 수 있었다. 그가 기자를 만난 것은 사건발생 한달후였고 그전에는 어느 기자도 만난 적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도과정은 명확해진다. 조선일보 기자가 작문한 것이다. 기자들이 현장취재를 같이 했는데도 유독 조선일보에만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생생한 증언이 실렸던 까닭은 작문이 아니라면 도저히 해석이 불가능하다.

이에대해 당시 이 기사를 썼던 조선일보 기자(현재 공직에 몸담고 있음)는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이 보도는 이후 안보관련 보도는 확인 없이도 무조건 키우고 보자는 안보상업주의를 탄생시켰다. 어린 학생들에게 반공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는 소재로 활용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보는 단지 보도대상자만이 피해를 입는데 그치지 않는다. 수십년간 국민들에게 거짓을 가르치고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확대재생산 한다. 그래서 오보는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의 안보상업주의로 인한 오보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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