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눈치보면서 언론독립 지킬 수 있나”
“재단 눈치보면서 언론독립 지킬 수 있나”
[인터뷰] 부산일보 이정호 편집국장… 사측 직무정지 가처분 소송 기각

“이번 법원의 가처분 결정은 징계를 비롯한 어떤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언론자유와 편집권 독립의 정신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판결이다.”

부산일보 이정호(사진) 편집국장은 지난 11일 법원이 회사가 제기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기각하고, 자신이 낸 ‘근로자 지위 보전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법원이 대기발령 상태의 이 국장이 직무를 계속 수행하는 것을 중지시켜 달라는 회사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 국장은 본안소송인 ‘대기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합법적으로 편집국장 업무를 계속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했고, 회사의 입지는 그만큼 더욱 좁아지게 됐다.

부산일보 경영진은 이 국장이 지난해 11월 18일 정수재단 비판기사 삭제 지시를 편집권 침해라며 따르지 않고 지면 게재를 강행하자 상사명령불복종, 정당한 업무지시 거부 및 불이행, 직무상 의무위배 등 사규와 포상징계규정 6개 항목 위반을 들어 징계(대기발령)를 강행해 노조의 반발을 샀다.

부산일보 안팎에서는 정수재단이 부산일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사장 선임권을 갖고 있는 대주주였기 때문에 경영진이 재단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비슷한 시기, 회사는 사장선임제도 개선을 요구한 노조위원장을 해고했다.

이 국장은 이번 사건이 “정수재단이 부산일보 편집권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부산일보 1면에 게재된 <부산일보 노조, 정수재단 사회 환원 촉구> 기사에 대해 사장과 이사가 노골적으로 기사 삭제를 요구하고, 국장이 불응하자 신문발행이 2시간이나 지연된 것이 대표적이다. 같은 달 30일에는 재단 관련 기사가 올라오자 아예 사장이 신문발행 중단을 지시해 창간 이후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신문이 배달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국장은 “올해 2월 전임 사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시기로, 한 번의 연임을 거쳐 6년을 재임한 전임 사장이 연임을 한 번 더 하기 위해 노조와 대립하는 끝에 노조위원장을 해고하고 정수재단 개혁 활동을 신문에 게재한 저를 징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연임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던 전임 경영진이 사장선임권을 갖고 있는 정수재단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리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는 과정에서 편집권 침해 등 파국이 빚어졌다는 얘기다.

부산일보 사태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그 끝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연결된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박 위원장은 최근 논란이 일자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은 정수재단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부산일보는 편집국장을 노조원들이 선출하기 때문에 편집권 독립이 보장돼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국장의 판단은 다르다. 현 최필립 정수재단 이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박 위원장을 보필해 온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다. 또, 정수재단의 4명의 이사 가운데 2명은 최 이사장이 데리고 들어온 인물이고, 나머지 2명은 박 위원장이 정수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임명했던 인사들이다. 박 위원장이 지난 2005년 정수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재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국장은 “최 이사장이 얼마 전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를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 그의 딸인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이 드러나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정수재단과 관련이 없다는 박 위원장의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부산일보 사장이 오죽하면 재단 비판 기사를 막기 위해 신문발행 중단을 지시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이어 “부산일보에서 벌어진 신문발행 중단, 편집국장과 노조위원장 징계 등 일련의 사태를 볼 때 박 위원장이 대선후보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올해, 재단에서 어떤 요구가 있을지는 자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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