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과거사 바로 잡기가 지지부진하다. 저항 세력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식의 억지를 부리는 일이 적지 않다. 국내 일부 학자들까지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강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있다. 일본은 정신대 문제와 같은 역사적 범죄를 외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명백한 사실을 부인하는 행위를 형사 처벌할 법을 만들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도 심각한 역사 왜곡 날조 등을 피하는 방법으로 고려해 볼 만한 사례다.

프랑스 상원은 23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토만터키제국이 자행한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을 부인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서명하면 시행된다. 이에 대해 터키는 강력 반발하면서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양국 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고 BBC 등 외신이 24일 전했다.

프랑스 상원은 이날 터키 전신인 오토만제국이 1915년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대량학살’로 보는 역사 해석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면, 최고 1년의 징역과 58,000 달러의 벌금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127:86으로 통과시켰다.

터키 법무장관은 프랑스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자 이는 심각한 부정의이며 터키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하고 파리주재 터키 대사는 이 법안이 시행되면 두 나라 관계가 영구적으로 악화되면서 프랑스는 전략적 파트너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터키는 프랑스의 법 제정 시 대사 소환과 프랑스와의 경제 협력 단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공화국은 프랑스의 입법화를 환영했다. 아르메니아 외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 이 날은 아르메니아와 프랑스 국민의 우애와 세계적인 인권 보호의 역사에 기록될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는 아르메니아 사태에 대한 판단은 역사가에게 일임해야 한다면서 프랑스의 이번 입법조치는 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터키 수상에게 공한을 보내 이 법안이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며 아르메니아 인들의 과거 고통을 언급하는 취지라고 말했었다.

프랑스는 2001년 아르메니아 학살을 공식 인정했으며 현재 20 개 국가가 동일한 조치를 취했다. 터키 관리들은 아르메니아 사태를 인정하면서도 조직적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고한 무슬림 터키인들이 다수 사망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에 현재 거주하는 아르메니아 계 유권자가 50 만 명으로 이들이 올해 대통령 선거에 중대 변수가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프랑스와 터키는 리비아 사태에서 합동 작전을 펴고 시리아 반정부 세력을 공동 지원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프랑스의 이번 입법 조치처럼 정치적 행위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다. 정치는 선택과 집중의 예술이라는 특징이 있어 어떤 특별한 측면을 앞세워 부각시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의 이번 입법은 많은 논란과 시행에 따른 대가가 간단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또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나오면서 시시비비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언론의 자유가 사실관계 왜곡과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한다면 프랑스의 이번 조치가 긍정적으로 보인다. 일본의 군 위안부 인정과 배상을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군 위안부 범죄를 부정하는 것을 처벌하는 국내법을 프랑스처럼 만드는 것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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