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원에 입원한 김아무개씨는 최근 밥이 갑자기 맛이 없고 부실하게 느껴졌다. 병원밥이라서 그럴까 싶어 좀 참았지만 그뿐이 아니었다. 식사가 제 시간에 오지 않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제야 항의를 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음식을 만들고 나르는 사람이 달라졌고, 병원 조리·배식노동자가 정규직이 아니고, 병원은 식당을 직접 운영하지 않고, 용역회사는 재용역을 줬다.

송영옥(56)씨는 “맛이 없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송씨는 한일병원 근처에 사는 주민이자 몸을 맡기는 손님이다. 그리고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이곳에서 밥을 짓고 음식을 나르던 노동자다. 그에 따르면 집단계약해지로 식당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환자들이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다.

한일병원 조리·배식 노동자 19명은 지난해 12월 31일자로 계약종료됐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송영옥씨는 12월부터 병원 근처에서 보이던 구인광고를 떠올렸다. 송씨는 인원을 보충해주는 거라 생각했지 ‘해고 예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 만든 노동조합, 임금 인상 요구가 그 이유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30년 일해도 매년 신입사원, 용역노동자

한전의료재단 한일병원은 1999년 식당 경영을 민간에 위탁했고, 원래 직원이었던 이들을 용역회사를 통해 간접고용하기 시작했다. 용역노동자 19명은 병원에서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 조리사 3명과 함께 환자 350여 명, 직원 400여 명 등 총 750여 명을 위해 밥을 짓고 날랐다. 노동자들은 한화, 신세계 계열 용역회사를 거쳐 LG 관련사인 아워홈에서 4년을 보냈다.

이들 용역노동자의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연장수당까지 포함해 월 140~150만 원을 받는다. 이들은 보통 새벽 5시에 나와 오후 3~4시에 퇴근하는 아침조, 오전 10시께 나와 오후 8시께 퇴근하는 저녁조, 그 사이 점심조로 나뉘어 일주일에 하루씩 쉬며 일했다.

임금은 4년 동안 오르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근속수당을 달라고, 임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12월 31일 전원 계약종료됐다. 새로운 용역업체 CJ 프레시웨이와 CJ로부터 재용역을 받은 M&M푸드는 이들을 고용승계하지 않았다. 한일병원은 자신이 고용하지 않았다며 ‘나 몰라라’하고 있고, 용역회사는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병원의 식사는 의료보험 재정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의료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상시필수업무인 조리·배식 일을 외주화했고, 재용역을 용인하며 저임금을 부추기는 용역회사를 방조한 점에서 한전의료재단과 한일병원의 책임이 분명해 보인다. 용역회사 또한 수년 동안 일해 온 노동자들을 고용승계 하지 않은 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는지 의문이다. 하청의 착취와 원청의 방조 속에서 결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사실상 해고’였다.


명절은 없다. 투쟁만 있다.

한일병원 식당 조리·배식노동자들은 짧게는 7~8년, 최대 28년 동안 병원 식당에서 일했지만 회사가 바뀔 때마다 신입사원이 됐다. 임금에서도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새로운 회사가 들어올 때 기분은 어떨까. 송영옥씨는 “내가 일하는 곳은 이곳(한일병원)이기 때문에 별 상관없다”고 말했다. 함께 잘린 15명의 노동자들은 모두 몇 년마다 교체되는 명찰에 관계없이 한일병원을 자신의 직장으로 생각했다.

지난 설은 병원 안에서 일하며 보냈지만 올해는 병원 정문, 텐트, 경찰서에서 보낼 계획이다. 평일 정오에 병원 정문에서 1인 시위와 집회를 하고, 24시간 돌아가며 텐트를 지킨다. 나머지는 삼성역 근처에 있는 한전의료재단 본사 앞에 가서 또 다시 집회를 한다. 하루 8시간 일 대신 투쟁을 한다.

다음 달에 할 집회를 신청하기 위해 경찰서에서 대기하는 것도 이들이 명절에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같은 장소에 집회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어 경쟁해야 한다. 처음엔 새벽 6시에 가면 됐지만 이제는 밤 11시부터 기다린다. 노동자들은 한일병원 정문에 집회신고를 하는 사람들이 병원이나 용역회사가 고용한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아닐까 의심했다. 집회를 사전에 막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거다. 노동자들은 26일에서 5일 동안은 집회를 못하게 됐다.

“눈물이 마른지 오래다”

21일은 18번 째 집회가 있는 날. 노동자 십여 명은 어김없이 정문 앞에 모였다. 명절 연휴 첫 날이지만 한 명도 빠지지 않았다. 이들은 인천공항 세관 용역노동자가 복직이 돼 현장으로 돌아간 소식을 알고 있었다. “우리도 설날 전에 복직됐으면…”하며 한숨을 쉬었지만 집회를 시작하자 곧 바로 구호를 외쳤다. 

여성 비정규직의 명절은 고달팠다. 딱 하루 쉬는 동안 집에서 음식을 장만해야 하고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송영옥 민주노총 서울본부 한일병원분회 분회장 또한 일과 가사를 함께 해왔다. 투쟁하는 노동자로서 맞는 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송 분회장은 “시간이 얼마 걸릴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끝까지 싸워서 남들에게 우리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일병원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처음으로 위로가 아닌 응원과 격려를 받는 설을 맞고 있다. 여성, 고령,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가 얽히고설켰지만 이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복직’이다.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들의 실업급여는 여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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