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그날 이후, 매년 1월 무렵이 되면 후유증과 우울증이 깊어지고 애써 묻어둔 상처가 다시금 터져 나온다. 기약 없는 싸움과 고립의 시간이 벌써 3년 째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에서 희생된 철거민들의 유가족 얘기다. ‘용산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이 나온 지도 2년이 훌쩍 넘어간다.

용산참사 3주기를 앞두고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18일 민주통합당 정동영 의원,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가들과 함께 국회를 찾았다. 이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강제퇴거금지에 관한 법률제정안’ 발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제2의 용산참사를 막아야 한다는 뜻에서 일명 ‘용산참사방지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국회 본청 의안과를 방문해 여야 33명 국회의원이 서명한 법안을 직접 제출했다.

법안 제출 후 고 이상림씨 부인이자 강제퇴거 항의 과정에서 구속된 이충연씨의 모친인 전재숙씨, 고 양회성씨의 부인 김영덕씨,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는 의원회관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전재숙씨는 “3주기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며 “지금도 용산참사 현장에 가보면 알겠지만 아무 것도 건설된 것 없이 허허벌판이고 용역들이 주차장으로 배를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철거민들과 얼마든지 대화해서 풀어나갈 수 있는 일인데 그렇게 강압적인 조처를 해야만 했는지 분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덕씨 역시 “3년 동안 용산은 아무 것도 개발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며 “뭐가 그리 급해서 무리한 진압으로 희생자를 만들었는지 답답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용산참사방지법 발의와 함께 유가족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일까. 전씨는 “아무 죄 없이 복역 중인 철거민 7명을 꼭 석방해야 한다”며 “정작 복역해야 할 사람은 김석기인데 지금 금배지를 달겠다며 돌아다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석기씨는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내정자 신분으로 현장에 경찰 특공대 투입을 지시한 인물이다. 이후 ‘보은인사’ 논란 속에 오사카 총영사로 부임했고, 다가오는 총선에서 의회입성을 노리고 있다.

유가족들은 언론에 대한 답답함과 아쉬움도 털어놨다. 전씨는 “답답해서 전에 한 기자에게 ‘평상시에 관심 좀 가져라, 왜 무슨 주기에만 주목하냐’고 물어봤더니 기자가 ‘평소에는 관련 일들을 얘기해봤자 아무도 관심이 없고 소용이 없으니 참사 2주기, 3주기 같은 좀 이슈가 될 만한 시기에만 얘기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김씨는 “KBS 취재진도 (용산 참사에) 관심이 있어서 다 취재를 하는데 위(데스크)에서 통과가 안 된다고 했다. 작년에 KBS <추적60분>에서 우리를 1주일을 찍었는데 위에서 통과가 안 돼서 방송에 못 나갔다”고 전했다. 그는 그 후에 다른 KBS 취재진이 취재하려고 했을때 “(우리가) KBS 취재 안 받는다니까 KBS 기자(취재진)가 (그런) 속내를 다 얘기하더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전씨는 또 “언론 보도에서 우리가 떼쟁이라고 쓴 걸 볼 때마다 억울하다”며 “우리는 많은 걸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삶의 터전을 대신할 임대주택과 가수용상가(재개발지역 부근 공원 부지 자투리 땅)에서 잠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건데 정부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며 “용산 재개발구역에서 23년, 27년 산 사람들도 ‘해당지역에서 집을 샀다가 판 기간이 5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에 2,3개월이 미달한다며 강제퇴거로 생활터전을 잃는 것에 대한 배상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용산참사는 이제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유가족들의 고통은 해가 거듭될수록 더해가고 있다.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우울증과 (농성 강제진압 과정에서 생긴) 신체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고 매일을 약으로 살고 있다”고 밝혔다.

권명숙씨는 “집에 아무도 없고 허해서 항상 집에 들어가는 게 싫고 매일 찜질방을 찾아다닌다”며 “집에 들어가면 또 밖에 나가기가 싫다”고 말했다. 권씨는 “그 시기 1월만 되면 우울증과 몸 아픈 게 심해진다”며 “지금 3년째인데 요새 후유증이 최고로 힘든 것 같다. 작년보다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삶에 치여서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계속 마음을 먹으면서도 그렇게 안 된다”고 눈가를 붉혔다. 김씨는 “요즘 그때 다쳤던 손발이 바늘로 쑤시는 것처럼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울증으로 매일 잠이 안 와서 엊그제도 이틀 동안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래군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매년 5월이 되면 본인의 의식과는 무관하게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이 도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유가족들은 총선과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도 조심스레 내비쳤다. 김영덕씨는 “이번 기회에 총선에서 좀 뒤집어져서 5년, 10년 걸릴 것이 빨리 바로잡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권씨는 “한명숙이 (당대표가) 됐으니 좀 해결해 주려나”라며 “정동영 의원이 지금 용산 참사에 집중하는데, 지금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중에 우리 일에 의지를 갖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권씨는 “문성근이 국민의 명령 대표 때 한명숙이랑 우리 가게에 힘내라고 왔었다”면서도 “최고위원 자리에 가면 다들 또 (해결 의지를) 굽히는 것 같다. 대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유가족들이 갈 데가 어딨겠나. 그냥 집에 있어야지”

다가오는 설 연휴도 유가족들은 편하게 지낼 형편이 못된다. 전씨는 “사람들 만나기가 싫더라”며 “일 끝내고 밤에 돌아오면 집에서 손자가 기다리고 있는 게 유일한 위로”라고 말했다. 권씨 역시 “사람들 만나기 싫은 게 갈수록 심해진다”며 “사람 쳐다보기가 싫더라”는 심정을 밝혔다. 김씨는 “(남편)산소에도 그냥 안 갈 것”이라며 “바로 며칠 뒤(기일)에 갈 텐데”라고 말했다. 김씨는 “명절이 오면 더 서글퍼진다”며 “형제간에 만나도 나에게 마음 쓰는 게 미안하고 불편해서 형제 집에도 안 가게 된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이따금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말문을 열면 이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들은 “앞으로 다시는 우리처럼 강제로 쫓겨나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며 “유가족들이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다. 없는 서민을 위해 꼭 ‘용산참사방지법’이 발의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3년이 지났지만, 용산참사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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