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즌1 마지막회(21일)를 앞두고 있는 <새터데이나잇라이브 코리아>(이하 는 현재 미국 NBC 방송에서 방송되는 동명의 포맷을 사온 프로그램이다. 거침없는 풍자와 독설로 1975년 이후 37년째 방송되고 있으며 미국 내에서만 천만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꾸준히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다. SNL의 장점은 매주 등장하는 ‘호스트’들의 거침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과 금기와 성역이 없는 조롱이다.

는 가장 ‘독한’ 수위의 정치풍자를 보여주고 있다. “연초부터 그분(대통령) 나오게 해서 재 뿌릴 일 있어? 쉬시라고 그래”라는 SNL 제작회의 패러디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진이 직접 진행하는 ‘위크엔드 업데이트’ 코너의 독설은 풍자가 희소한 현실 때문에라도 돋보인다.

하지만 원전 SNL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칼은 스타의 자기조롱과 그에 곁들여지는 정치·세태 풍자다. 가 ‘핫한’ 정치풍자쇼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나, ‘스타의 새로운 모습’이라 불리는 스스로의 권위에 대한 해체, 자기조롱의 재미는 덜한 것이 사실이다.

정치풍자와 비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집중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또 재밌을 수도 있으나, 정치풍자만 남았을 때 ‘그 이외의 것’을 기대한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제외한 감정을 느끼기는 힘들어진다. SNL의 재미는 단순한 풍자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는 풍자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너무 직접적이다.

현재 에서 부족한 것은 ‘원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거침없는 자기조롱이다. 예전에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Dick in the Box’를 들고 나왔을때나 ‘마돈나와 레이디가가의 난투극’과 같은 수위까지는 아니더라도, 호스트 자신이 갖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에 대한 파괴 혹은 조롱이 현재 에서는 ‘부족’하다. 성대모사를 하거나(김인권 편) 남성적인 이미지를 벗고 게이로 등장하는 것(김상경 편) 등을 자기조롱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부끄러운 데뷔작에 대한 기억(‘벡터맨’ 김성수 편) 등은 다른 프로그램에서 너무나도 많이 써먹었던 소재이다.

SNL이 자기조롱을 통한 ‘망가짐’과 거침없는 정치·현실 풍자의 양날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때의 효과는 자명하다. 호스트나 쇼 자체가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SNL이라는 ‘난장’에 몸을 던짐으로써  생기는 ‘망가뜨리는 것에 대한 정당성’이 이후 등장하는 풍자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금기를 해체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자기 바깥의 금기에 도전하는 것, SNL에 환호한 대중들은 그런 ‘똘끼’에 환호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는 장진 감독이 ‘위크엔드 업데이트’ 코너에 입고 있는 수트처럼 깔끔하기는 하지만 호스트나 쇼가 형식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올 만큼 전복적인 스토리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조롱이 없는 타인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는 SNL 특유의 빈정거림과 만나 엘리트나 지식인들의 ‘평가’처럼 느껴질 우려가 있다.

<개그콘서트> 사마귀 유치원의 풍자가 환호를 받는 이유는 최효종이 말하는 디테일이 최효종 자신과 관객들에게도 적용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 비평에서는 그런 동일시와 페이소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SNL코리아가 기대만큼의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데는 이런 ‘불편함’이 작용한다. 원작 SNL에서는 그런 이질감을 상상을 초월하는 ‘망가짐’으로 희석시켰다.

그것은 연출진이나 호스트의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에서도 SNL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이 뿌리내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SNL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선술집(펍, Pub)’의 스탠딩쇼 코미디가 한국에서는 생경한 풍경이라는 문화적 차이도 존재한다. 원작 SNL은 홍보카피에서 말하듯 전혀 ‘고품격 쇼’가 아니다. 뒷골목 선술집에서 성적코드가 섞인 걸죽한 농담과 정치, 인종 등 금기 없는 표현과 풍자가 있던 막간 쇼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것이 ‘문화의 중심지’ 뉴욕에서 진행되던 ‘신상’처럼 포장되어 들어온 것뿐이다.

스스로를 패러디하고 조롱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쌓아왔던 이미지를 비롯하여 그것을 패러디할 본인만의 ‘원전’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패러디할 정도로 원전을 쌓은 스타들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원전이랄 게 별로 없는 ‘김동욱편’이 별다른 커리어가 없다는 자기비하와 조롱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기파괴가 주는 폭발적 쾌감이라는 SNL 고유의 재미를 시즌1이 보여주었는가 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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