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뿔테안경을 쓴 남자’의 신원이 드러났다.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서 관련자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엮어져 나오고 있다.

검찰은 11일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국회의장 측으로부터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전달받았다는 폭로와 관련해 박 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 씨를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또 이날 박 의장 캠프에서 일한 안병용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도 불러 조사했다. 안 씨는 전당대회 당시 서울지역 30개 당협 사무국장에게 50만원 씩 건네도록 서울지역 구의원들에게 현금 2000만원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끝이 아니다. 고 전 비서관에게 돈 봉투 전달을 지시한 건 선배 보좌관인 조모씨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조씨는 전당대회 당시 박 후보 캠프에서 재정과 조직을 담당한 인물로 현재 국회의장실 수석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친이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경향신문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이 ‘MB(이명박 대통령)의 남자들’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1월12일자 전국단위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2008 전대 주인공은 청와대” / MB 남자들이 돈・조직 주도>
국민일보 <검, 안모씨도 소환>
동아일보 <“돈 반환 뒤 전화한건 김효재 / 왜 돌려줬냐고 내게 물었다”>
서울신문 <친이계 전반으로 수사 확대>
세계일보 <저임금도 서글픈데 소득 뒷걸음>
조선일보 <육아 휴직은 근무 경력서 제외 시킨다>
중앙일보 <경선 때 박희태 캠프 안병용씨 소환 조사>
한겨레 <박희태 돕던 당협위원장 소환>
한국일보 <조모 보좌관이 돈 봉투 전달 지시>

고명진(국회의장 전 비서)→조모씨(수석비서관)→안병용(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김효재(청와대 정무수석)→이재오・이상득 의원?

돈 봉투를 고승덕 의원 측에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씨를 검찰이 소환 조사하면서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검찰은 고 씨를 상대로 박 의장 측 지시를 받고 돈 봉투를 돌렸는지, 몇 명에게 얼마씩 돈 봉투를 돌려받았는지, 되돌려 받은 돈 봉투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했다. 고 씨는 “돈을 돌려받은 것은 맞지만 전달한 사실은 없다”고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날 고 씨와 함께 박 의장 캠프에서 일했던 안병용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도 불러 조사를 벌였다. 안 씨는 서울 및 원외조직 관리를 책임졌던 인물로, 당원협의회 사무국장들에게 금품을 전달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언론들은 특히 안 씨에 주목했다. 한겨레는 3면 <이재오계로 ‘친이 마당발’…전대 때 박희태 캠프 조직책> 기사에서 “친이계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안아무개(53)씨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벌어지는 등 검찰 수사가 전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할 수 없는 형국”이라고 보도했다. (다른 신문들은 검찰 소환이 이뤄지면서 관계자들의 실명을 모두 밝혔지만 한겨레는 익명을 유지했다.)

안 씨는 당내에서 이재오 의원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에서 정치계에 입문해 당적을 한나라당으로 옮긴 그는 2008년 총선 당시 은평을 후보였던 이재오 의원과 함께 유세를 돌기도 했다. 한 한나라당 관계자는 “확실한 이재오 맨”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당협위원장을 지내며 서울시 농수산물공사 상임고문 자리를 얻기도 했고, 지난해 홍준표 전 대표 시절 당직 인선 때 원외 당협위원장을 관리하는 제2사무부총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2008년 박 의장을 밀었던 이재오, 이상득(이명박 대통령 친형) 의원을 비롯한 친이계 의원 전반으로까지 번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신문은 1면 머리기사 제목을 <친이계 전반으로 수사 확대>로 달았다. “검찰이 친이계 쪽을 직접 겨눈 형국”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도 “검찰은 일단 ‘현 정권 실세들에 대한 수사가 목적이 아니다’고 하지만 안 씨에 대한 수사가 현 정권 실세들의 정치자금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경향 "박희태는 MB 뜻, 정몽준 부상하자 돈 봉투 돌렸을 것"

경향신문은 보다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 <“2008 전대 주인공은 청와대” / MB 남자들이 돈・조직 주도>에서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이 ‘MB의 남자들’로 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8년 전대의 주인공은 청와대”라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당시 박 국회의장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의원이 한 말이라며 “박 후보 추대부터 자금 모금 등의 선거를 기획, 주도한 인물이 권력 핵심부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박 의장의 추대는 2008년 4월 총선 후 이 대통령과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결심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뜻은 5월 초쯤 당 지도급 인사와 박 후보에게 전달됐다. 당시 “박희태는 MB 뜻이다. 배지(국회의원)도 아닌데 세다”는 말이 청와대에서 돌았다.

문제는 또 다른 권력축인 이재오 의원이었다. 그는 측근인 ‘안상수 대표’론을 점화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5월16일 청와대 정무팀을 불러 “이재오 책동을 분쇄하라”며 격노한 것이 곧바로 여당에 알려지면서 분기점이 됐다.

청와대가 박희태 후보로 정리하면서 전대 선거 캠프는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실세 ‘MB맨’으로 구성됐다. 후보 추대에서 뜻이 좌절된 친이재오계는 6월 말쯤 실질적으로 캠프에 결합했다. 친이직계, 친이상득계, 친이재오계, 친이소장파까지 총결집한 것이다. 당시 친이 소장파 의원은 “박 후보가 질까봐 도와주는 것이다. 청와대를 위해서”라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효재 현 청와대 정무수석도 박 후보 캠프 상황실장으로 선거를 주물렀다. 친이 직계인 김 수석은 대선캠프 상황실에서 ‘형님’으로 불린 인물이다.

경향신문은 “돈 살포를 전후해서도 청와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밝혔다. 당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정몽준 후보가 무섭게 추격하면서 박 후보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자 청와대로서는 정권초반 친정체제 구축을 위해 박 후보의 당선이 절실해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경향신문은 “고 의원이 밝힌 대로 ‘전대 2~3일전’에 돈이 살포됐다면 박 후보의 당선 굳히기를 위한 권력 핵심부의 ‘오더’에 따른 것일 수 있다. 여권에선 돈 봉투 출처로 친이계 핵심부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고 보도했다.

현재 돈을 전달한 비서진을 겨누고 있는 검찰의 칼끝이 ‘자금과 몸통’을 겨눈다면 권력 핵심부와 청와대로 향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수언론도 칼날…동아 "친이직계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고승덕 의원에 전화" 

보수언론들도 등을 보이고 있다. 돈 봉투 파문이 덮어두고 가기에는 큰 사건이기도 하지만 역시 정권 말기라는 점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 같다. 현 정권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동아일보에는 돈 봉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고 전 비서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지면에서 사라졌던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 <“돈 반환 뒤 전화한 건 김효재 / 왜 돌려줬냐고 내게 물었다”>에서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당 대표 후보였던 박희태 국회의장 측에 돈 봉투를 돌려준 뒤 고 의원에게 전화한 캠프 측 인사는 당시 박 후보 캠프의 상황실장이었던 김효재 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김 수석이 돈 봉투 살포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김 수석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 수사 역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김 수석은 “이미 언론에 밝힌 대로 나는 그런 사람(고 의원을 지칭)과는 단 한마디도 말을 섞어 본 적이 없다”며 “그가 검찰에서 무슨 말을 했든 그건 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부인했다.

한편, 한국일보는 돈 봉투를 전달한 인물로 지목된 고 전 비서에게 돈 봉투 전달을 지시한 사람은 선배 보좌관인 조모씨라고 보도했다. 조씨는 현재 박희태 국회의장실 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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