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은 북극, 아마존, 아프리카에 이은 ‘지구의 눈물’ 시리즈 4번째 편으로 지구환경 극단에 처한 지역들을 보여주고 경각심 내지는 감동을 선사해왔다. 지난주 금요일(6일) 방송된 <남극의 눈물> ‘황제펭귄’ 편은 여러 장소와 공간을 오가며 해당 지역의 사람, 생명 들을 살펴본 것과는 다르게 오로지 ‘황제펭귄’ 한 종(種)에만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황제펭귄의 종족보존을 위한 놀라운 광경들이 펼쳐진다.

짝짓기철이 되면 황제펭귄들은 외곽에 비해 더 추운 남극대륙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알을 품고 부화하는 집단 전체가 제일 약한 시기, 천적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이다.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으면 수컷은 자신의 발과 배 사이에 알을 품고, 암컷은 먼바다로 먹이를 구하러 나간다. 암컷이 먹이를 구하러 간 그 시간 동안 수컷들을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고, 안쪽과 바깥쪽 펭귄이 시간에 따라 자리를 바꾸는 ‘허들링’을 통해 체온을 유지, 자신들을 보호한다.

만약, 황제펭귄의 ‘허들링’에 계급이 있어 안쪽과 바깥쪽이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가정해보자. 바깥쪽의 펭귄들이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안쪽의 펭귄들도 교대로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영하 50도 넘나드는 칼바람에 바깥쪽 펭귄들은 며칠 못 버티고 동사할 것이다. 그렇게 펭귄 무리 안쪽으로 남극의 추위는 계속 밀려들 것이며, 결국 황제펭귄 무리는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죽을 것이 뻔하다.

펭귄들이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이런 노하우와 생존형태는 그들의 종족을 보호하고 다음해 짝짓기철, 효과적으로 집단을 보호할 것이다. 천적으로부터 새끼들을 공동으로 지키고 양보와 희생으로 전체가 생존하는 방식을 터득한 황제펭귄의 모습은 경쟁지상주의 교육을 통해 학력으로 아이들을 편가르기 하고, 사교육을 통해 우월적 위치를 계속적으로 점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집하는, 우리의 현재 모습과 너무나도 대비된다.

   
 
 

요즘 우리에게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감동의 경험’일 것이다. 지능이 없어도, 말을 하지 못해도, 몸에게 기억을 심어주는 ‘경험’은 학습에 의한 것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며, 그 강도에 따라서 평생 지속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떤 것이었냐에 따라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되기도, 결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경쟁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거나 도태시키지 않으면 내가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라는 아주 사소한 감동이 어린 시절 아주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옷을 통해 계급을 나누지 않고, 학력을 통해 서열을 정하지 않고, 부모의 재력과 학력이 비례하는 현실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그를 통해 벗어날 수 없는 좌절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꼭 승리의 경험이 아니어도 괜찮다. 패배의 경험도 감동적일 수 있으니 말이다. 단지 공평한 룰과 보편적 상식이 지배하고 있다는 ‘경험’만 있으면 가능할 것이다. 이제 누가봐도, 정치와 문화가 별개의 것이며 박근혜와 문재인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단순한 TV프로그램일 뿐이라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노스페이스를 입(어야만하)는 ‘학원문화’에 ‘계급’이 등장하고, <남극의 눈물>을 보며 ‘허들링’과 같은 양보와 희생으로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2012년이 정치의 해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며, 인류멸망의 해이기 때문도 더더욱 아닐 것이다. 단지 각 분야의 경계가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사회문화적 변화로 모호해지고 있으며 SNS를 통해 구조적 문맹상태를 벗어난 대중들에 의해 정치가 신전과 금기의 영역에서 내려온 것 뿐이다.

칼바람을 극복한 육아가 끝나면 부모 펭귄들은 자식들을 두고 제 갈길을 간다. 하지만 남극대륙 한복판 자연의 고난을 ‘함께’ 극복한 기억은 모든 구성원들의 몸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진정한 교육과 육아는 그런 것이 아닐까. 부의 세습보다, 권력 승계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가는데서 오는 ‘감동’의 기억을 내 자식에게 구성원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한 기회는 멀리 있지 않다.

황정현·대중문화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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