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시작은 하나의 기사 때문이었다. 한국일보는 지난 3일 1면 톱기사 <최시중 방통위원장측 억대 수뢰>를 실었다.

같은 날 다른 신문들도 김학인 EBS 이사(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가 2009년 이사 선임 당시 방송통신위원회 쪽에 로비를 한 의혹을 보도했지만, 한국일보 기사가 이들 보도와 달랐던 이유는 한 가지다. 한국일보는 김 이사의 지인과의 통화에서 “김씨가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힘을 써 줘 EBS 이사로 선임됐다고 자랑했으며 그 과정에서 최 위원장 측에 수억 원을 건넸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고 보도했다.

최시중 위원장과 이번 비리의 연루 가능성을 정면으로 제기한 이 보도의 파장은 컸다. 연일 검찰발 의혹 보도가 이어졌고, 방통위는 ‘사실무근’이라는 취지를 담은 해명 자료를 내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나 최초 의혹이 제기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최 위원장의 사퇴론은 더 이상 불거지지 않은 형국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문이 잇따라 터지고 각 미디어에서 다양한 형태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당혹스런 일”이라며 되레 언론의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계속되고 있고, ‘MB 멘토’이자 정권의 ‘실세’로 불리는 최 위원장 관련 의혹은 현재 진행형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방송·통신 업계에 미칠 파문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을 90일 남긴 현 시점에서 외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장고에 돌입한 최 위원장의 행보는 어떻게 펼쳐질까.

핵심 관심사는 최 위원장의 사퇴 여부다. 최 위원장은 지난 5일 국회에서 “방통위가 선임한 EBS의 한 이사가 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과 관련해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로 현재까지 정치권, 방통위쪽에서 최 위원의 사퇴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체적으로 방통위 안팎에선 최 위원장의 사퇴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한 방통위 관계자는 “최 위원장은 방통위의 전권을 행사했던 사람이고, 카리스마를 대체할 인물도 사실상 없다”며 “4월이 총선인데, 만약 최 위원장이 지금 사퇴하면 곧바로 청문회나 국정조사 얘기가 나올 것이고, 만에 하나 청문회가 열린다면 최 위원장의 개인 의혹뿐 아니라 방통위 전반의 문제를 거론될 것”이라며 사퇴론을 일축했다.

국회 문방위 민주당 관계자는 “여야쪽에서 사퇴를 촉구하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문방위 전체회의에서도 최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한 의원은 없었다. 한 케이블업계 관계자도 “아무리 정권 말기더라도 최시중은 살아 있는 권력”이라며 “내부 제보자가 나오지 않는 한 총선까지는 비리 의혹만 제기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격적인 사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작년 국정감사 당시 최 위원장과 친박계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과의 질의 응답을 주목했다. 당시 홍 의원은 “광고시장 생태계, 언론 생태계를 극도로 위협하게 돼 있는 종편을 우리 안에 몰아넣거나 자제시킬 어떤 수단도 (최 위원장이)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며 “이 문제를 풀어가자면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고, 새 접근, 새 철학, 새 발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최 위원장의 사퇴 요구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최 위원장은 “홍 의원의 지적에 공감하고, ‘새로운 장을 열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하고 있다”며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말할 처지가 못 돼 말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지상파 관계자는 “최시중은 이미 할 일을 다 했고 대선까지 남은 1년간 방통위에 비중 있는 인물이 굳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며 “돈봉투에 디도스 특검까지 얽힌 한나라당에 최시중은 부담스런 존재이고 문제들을 한꺼번에 빨리 정리하려고 할 것”이라며 전격적인 사퇴 가능성을 전망했다.

사퇴론의 관건은 향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관계자들이 입을 열 것인지다. 9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김학인 이사가 최시중 위원장에게 “1억8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건넸다”는 내용의 진정서가 최근 검찰에 접수됐다.

서울신문은 지난 7일자 10면 기사<“김 이사장, 입막음 값으로 수십억 줬다”>에서 “김 이사장이 수십억 원을 들여 이들의 폭로를 입막음 하려 한 것은 그의 로비가 최시중 방통위원장 ‘양아들’로 불린 정용욱 전 정책보좌관을 넘어선 ‘윗선’까지 확대됐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구속된 김학인 EBS 이사의 비리 의혹과 관련된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재무 담당 여직원 최아무개씨, 학사·교무 담당 전 직원 박아무개씨다.  

그러나 EBS 이사 비리 의혹은 개인 비리건으로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용욱씨의 귀국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이 총선 이후까지 이 사건을 끌기에는 부담이 있어 총선 전에 핵심 관계자인 정씨의 귀국을 종용해 사건을 매듭지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뒷북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로, 검찰의 ‘칼날’이 매섭지 않은 상황이다.

주승용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청와대와 검찰이 미리 내사해서 알고 있는 상황에서 미리 태국으로 도피한 뒤 압수수색 등의 수사가 시작된 것은 봐주기 수사의 일환이 아니냐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태국에 나가 있는 정용욱이 국내와 계속 통화하면서 ‘자기는 영원히 귀국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발언한 점을 봐도 검찰이 수사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점은 ‘칼날’이 매섭지 않은 것은 검찰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론 역시도 방송 주무 기관인 방통위와 관련한 이권에서 자유롭지 않아 ‘칼날’이 매섭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그동안 친정부 성향으로 인식된 조선·중앙·동아일보나 종합편성채널이 최 위원장 관련 보도를 어떻게 할지가 이번 사건의 추이를 가늠할 수 있는 ‘관전 포인트’라는 지적이다. 현재까지는 이들 언론에서 ‘결정타’가 나오지는 않은 상황이다.

방통위 한 출입기자는 “방통위는 이권과 많이 관련돼 있고 시정명령 같은 행정 집행 권한도 갖고 있다”며 “종편은 개국 초기에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찔끔찔끔 의혹을 제기하더라도 결국은 방통위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현재 종편은 시청률이 바닥 수준이고 광고도 예상보다 적어 이렇게 가다가는 자본금은 몇 년 만에 다 탕진하게 될 것”이라며 “시청률을 높이려면 선정적인 콘텐츠로 가야할 텐데 결국은 현 정권을 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현 정부, 여당의 특혜로 탄생한 종편의 행보는 결국 한나라당의 행보와 궤를 같이 할 것”이라며 “당이 깨질 상황까지 처한 한나라당이 어떤 스탠스를 잡고 갈지가 관건이다. 한나라당의 보폭을 보면서 종편이 최시중 위원장에 등을 돌릴지 가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현재까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공식회의에서는 최시중 위원장 관련 발언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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