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새해, 변화의 조짐들이 꿈틀대고 있다.

우선 정치참여에 무관심했던 20대가 돌아오고 있다. 한국일보가 20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89.3%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10명 중 7명(70.5%)는 '20대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한겨레 여론조사에서는 트위터 사용자의 73.4%가 2012년 총선 때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비사용자의 적극 투표층 65.3% 보다 높은 수치다. 이들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은 변화이고 세부적으로는 양극화 해소, 복지, 일자리 문제의 해결이다.

표심이 방향을 드러내면서 정치권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들의 주도로 박근혜 전 대표가 반대한 부자증세안, 이른바 '버핏세'가 여야 합의로 통과된 것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서울의 초선의원은 "이제 특정인이 대세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1월2일자 전국단위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안철수 46.1% 박근혜 43.9%>
국민일보 <경찰 '학교 폭력과 전쟁' 벌인다>
동아일보 <나라 잘사는데 국민은 불행? '공존 자본주의'에 길이 있다>
서울신문 <"나는 하층민" 63% / 선거의 해, 민생이 먼저다>
세계일보 <한반도 요동…예측불허 동북아>
조선일보 <고소득층 증세 여도 방향 전환>
중앙일보 <내일 없이 내일 없다>
한겨레 <'트위플 혁명' 선거를 점령한다>
한국일보 <"세상을 바꾸자" 20대가 꿈틀대다>

박근혜 반대에도 한국형 '버핏세' 처리…"MB노믹스, 사실상 사망선고"

국회가 고소득층에 대한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는 '한국형 버핏세'를 통과시켰다. 2011년을 불과 10분 남겨둔 시점이었다. 해당 상임위원회 의결로 현행 세율 체계를 유지키로 했던 방침이 불과 며칠 만에 여야 의원들의 합의하에 뒤집어진 것도 이례적이지만 한나라당의 비대위 체제를 이끌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반대했던 법안이라는 점에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신문들은 부자증세 기조의 '버핏세' 신설로 MB노믹스의 핵심인 감세정책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고, 도입 신중론을 펴던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근혜노믹스' 마저 타격을 입게 됐다"고 평가했다.

본회의에서 처리된 소득세법 수정개정안은 소득세 과표 구간과 관련, 3억원 초과라는 최고구간을 신설해 대상자들에게 현재 35%보다 3%포인트 높은 38% 세율을 적용하도록 했다. 이 수정안은 민주통합당이 표결에 참석한 가운데 재석 244명중 찬성 157명, 반대 82명, 기권 5명으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국회는 7000억여원의 세수가 더 걷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애초 '2억원 초과'를 기준으로 제시했지만 한나라당이 '3억원 초과'로 고집하면서 과세대상이 줄어들었다. 부자증세라는 입법취지가 무색하게 0.17%만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일각에서 '무늬만 버핏세'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이유다.

하지만 언론들은 효과보다도 이 법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반대한 것이라는 점에 의미를 뒀다. 한겨레는 '버핏세 반란'이라는 말까지 썼다. 한겨레는 9면 <'버핏세 반란'에 밀린 박근혜> 기사에서 "한나라당 안에서 '박근혜의 뜻'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며 "서울의 한 의원은 '부자증세도 의미가 있지만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위원장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알려준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 초선 의원은 "자신이 거부한 안이 다시 튀어나와 통과된 셈이다. 이젠 특정인이 대세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증명된 것"이라며 "박 위원장으로서는 아픈 대목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1일 의총에서 "왜 다수 의원이 바라는데 박 비대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안 된다고 하느냐. 이렇게 밀어붙이면 탈당하겠다"고 박 위원장을 압박했던 정두언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박근혜 체제에서 부정적으로 바뀐 기류를 되살리느라 혼신의 힘을 다했다. 민심을 업으면 어떤 벽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는 글을 올렸다.

법안이 후퇴하긴 했지만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박근혜 위원장의 뜻을 거슬러 야당과 공동으로 소득세법 개정안 수정안을 제출한 것 자체가 박 위원장의 변화된 당내 위상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일보(쇄신파 목청 반영된 '부자증세'…박근혜 구상 제동), 동아일보 (박근혜 반대에도 '한국판 버핏세' 통과), 중앙일보 (말발 안 먹힌 박근혜…'버핏세' 밀어붙인 쇄신파)도 이와 같은 맥락의 평가를 내렸다.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임진년 새해를 10분 앞둔 지난해 12월31일 밤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자증세안'(소득세 최고구간 신실)을 전격 통과시킨 것은 일종의 '반란'에 가깝다"고 보도했다.

여당 부자증세로 방향전환 이유는 "유권자의 표심"…총선·대선이 '변화' 만든다

중앙일보마저 '반란'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이번 부자증세안 통과는 이례적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당내 주도권 싸움이라는 이유도 작용했겠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흔들리고 있는 한나라당의 위상에서 근본 원인을 찾는 분석들이 많다. 올해 총선에서 수도권에서의 참패가 예상되고 대선의 향배도 안갯속에 있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여야 의원 할 것 없이 민심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모두가 공정하게 1표씩을 행사하는 '투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다.

정두언 의원이 버핏세 통과를 주도하면서 '민심을 업었다'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는 경제상황은 최악이다. 경향신문이 새해를 맞아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 4년간 살림살이는 지역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나빠졌다는 평가가 좋아졌다는 의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양극화 체감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전체 응답자 중 4년간 살림살이가 나빠졌다고 답한 사람은 44.1%였지만, 좋아졌다는 사람은 5.8%에 불과했다. 경제 대통령을 표방했던 이 대통령의 성적을 두고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보다 7.6배나 많은 것이다. 한나라당 지지자들도 나빠졌다는 평가(23.7%)가 좋아졌다는 평가(11%)보다 2배나 높았다.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은 59.5%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올해 전망도 부정적이다. 서울신문이 한미FTA 이후 경제전망을 물은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9.8%가 무역불균형과 양극화로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고 답했다. FTA 발효로 인해 내년 경제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응답은 경제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응답자의 64.1%에 달했다.

서울신문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4.1%가 자신을 하위계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은 33%, 최하위층 9.5%, 상위계층 3.4%였다. 과거 중산층이라는 답변이 두터웠던 것과 비교해 서민경제가 얼마나 나빠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양극화가 올해 총선과 대선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보수신문들도 대안찾기에 나서고 있다. 표심이 요동치면서 보수신문들의 시선도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고 '민심달래기'에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지난해 성장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춘 '자본주의 4.0'을 제안한데 이어 동아일보는 2일자 신문에 그와 비슷한 '공존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동아일보는 1면 <나라 잘사는데 국민은 불행? '공존 자본주의'에 길이 있다> 등의 기사에서 무역규모 1조달러,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국민들은 행복하지 않다면서 "공존공영을 위해 자본주의의 과실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공존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고 밝혔다. 심층면접에 응한 조사자들은 취업난과 가계부채, 부의 양극화, 치솟는 교육비를 경제적 고통의 원인으로 꼽았다.

올해 총선과 대선, 20대·SNS에서 승부 갈릴 것…"정치참여가 자신의 삶 바꾼다는 사실 깨달아"

그렇다면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선거판세를 뒤흔들 세대는 어디일까. 언론들은 20~40대의 상대적으로 젊은 표심이 선거결과를 가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20대가 올해 총선과 대선의 주축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국일보는 총선과 대선이 잇달아 치러지는 선거의 해인 2012년, 20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한국일보는 <"세상을 바꾸자" 20대가 꿈틀대다"> 기사에서 "오랫동안 소극적인 정치무관심층으로 분류됐던 한국의 20대가 다시 적극적인 정치참여 세대로 돌아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등록금, 취업, 결혼과 출산 등 자신들이 봉착한 문제를 기성세대가 어느 것 하나 해결해주지 못하자 직접 나서려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들의 투표의지는 어느 때보다 높다. 한국일보가 20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9.3%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10명 중 7명(70.5%)는 '20대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2000년 이후 8차례 실시된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 2002년 대선(56.5%)를 제외하고는 20대 투표율은 28~46%에 머물러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낮았는데, 정치참여에 대해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그 이유에 대해 "20대가 정치참여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터넷라디오 '나는 꼼수다' 등 젊은 층이 쉽게 접하는 새로운 소통의 매체를 통해 현 정권, 현실정치에 비판적인 담론들이 거침없이 생산되고 표출되면서 20대의 현실 참여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가 1면에 특집으로 실은 <'트위플 혁명' 선거를 점령한다> 기사가 눈에 띈다. 트위플은 트위터와 피플의 합성어다. 트위터 사용자들이 가장 즐겨 다루는 이슈는 압도적으로 '정치'가 많았다. 트위터 민심이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을 시사한 것이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특히 선거참여 의지가 강한 것이 특징이었다. 트위터 사용자의 73.4%가 2012년 총선 때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비사용자의 적극 투표층 65.3% 보다 높은 수치다. 연령별로는 트위터를 사용하는 20대 66.7%, 30대는 66.1%가 적극 투표의사를 밝혔다. 비사용자 층에서는 20대는 49%, 30대는 61.8%로 떨어졌다.

경향, 대선 가상대결 조사 안철수 46.1%-박근혜 43.9% 

트위터 민심은 일단 야권으로 기울고 있다. 한겨레가 지난달 26~27일 벌인 여론조사에서 트위터 사용자의 58.2%는 안철수-박근혜 가상대결 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의원을 지지하겠다는 트위터 사용자는 36%였다. 트위터 민심 분석에서도 안 원장에겐 호감-지지 메시지가, 박 의원엔 반감-비판 메시지가 많았다.

하지만 한겨레 분석대로 트위터 민심에는 대세가 없다. 부동표가 어디로 쏠릴지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것이다. 민심은 여야 정당대결이 아니라 '양극화' '복지' '일자리' 문제를 책임있게 해결해 주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향신문 2일자 1면에 실린 대선후보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안 원장이 46.1%로 43.9%를 얻은 박근혜 의원보다 2.2%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복지(28.6%)를 선택했다. 이어 성장(24.7%), 소통(22.5%), 안보(13.6%)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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