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라는 ‘바보’ 정치인이 있다. 딸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하얀 드레스, 수줍은 미소의 그 걸음걸이에 동행하고자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몸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라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에게 빚을 졌다. 그는 한국사회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졌다. 삶을 바쳤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에 맞서다 물고문 전기고문에 시달렸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대표적인 먹잇감이 돼 버렸다. 그는 민주화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의 걸음걸이는 어색하다. 목을 자유자재로 돌리지도 못한다. 김근태를 모르는 이들은 흉을 볼지 모르지만, 고문 후유증 때문이다.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통 받으며 살아왔다. 딸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도 고문 후유증에 따른 병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뇌정맥혈전증’ 때문에 병원에 있다.

그는 정말 ‘바보’ 정치인이다. 자기 잇속을 챙기고자 수시로 말을 바꾸고 불의에 타협하는 이들이 수두룩한 정치권에서 그는 우직하게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이 때문에 손해도 많이 봤지만, 그는 그 길을 갔다.

그는 남들이 눈치를 보며 정치 유·불리를 따질 때, 원칙을 잃지 않으며 ‘옳은 소리’를 할 줄 아는 인물이다. 2009년 봄,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수사 광풍’을 이어갈 때 민주당 인사들도 숨을 죽였다. 혹시 자신에게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모두들 ‘검찰 칼날’의 눈치를 볼 때 그는 입을 열었다. 2009년 4월 28일 개인 성명을 발표했다. 이렇게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의 본질은 정치보복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권을 검찰에 돌려줬다. 그러나 현 검찰은 돌려받은 검찰권을 다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헌납했다. 검찰이 스스로 독립을 포기하고 권력에 굴종한다면 그 최후는 철저한 국민의 외면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힘겨웠을 때 그의 손을 잡아준 이가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이다. 둘 사이의 관계가 특별히 가깝기 때문으로 보기도 어렵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열린우리당 시절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관련해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서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을 까칠하게 보는 정치부 기자들도 그는 인정한다. ‘진정성 정치’를 펼치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둔 2001년 말 기자들이 뽑은 차기 대통령감 1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고, 2위는 김근태 상임고문이었다. 언론자유 신장과 발전을 가져올 대선후보를 묻자 기자들은 김근태 상임고문을 첫 손가락으로 꼽았다.

그는 대통령 후보군에 이름을 올릴만한 경력과 자질을 지녔지만, 중요한 고비 때마다 대선주자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평화민주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외쳤다. 메아리가 있건 없건 그것을 주장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았다.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서울에서 한나라당의 뉴타운 바람이 불 때 민주당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김근태 상임고문의 지역구인 서울 도봉갑 지역구만큼은 민주당 승리를 예견한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도봉구 주민들은 ‘민주화운동’의 대부격인 김근태 상임고문 대신 뉴라이트 출신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을 선택했다. 김근태는 낙선했다. 뒤늦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지못미)’ 열풍이 불기도 했지만,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는 그렇게 국회 의원회관을 떠났다. 그리고 거리로 나섰다. 시민들을 만났다. 4대강 사업 반대를 외치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조용히 촛불을 들었다. 집권 여당 의장과 장관 등 화려한 경력을 지녔지만, 보통의 시민들과 함께 ‘촛불’ 대열의 일원이 됐다.

하지만 더는 그가 촛불을 든 모습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마지막 불꽃이 꺼질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바보 정치인’ 김근태, 그가 위독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에 뇌정맥혈전증까지 앓고 있던 그는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

“오늘이 고비다.” 김근태 상임고문의 주변 인물이 전한 내용이다. 김근태 상임고문의 가족과 지인들이 병원으로 향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트위터에 “김근태 선배님이 위독하다십니다. 오늘이 고비일 듯하답니다. 슬프네요. 여러분도 같이 기도해주세요”라고 올렸다.

우리는 김근태를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뿌린 한국사회 민주화란 씨앗, 그것으로 인한 열매를 공유한 우리들은 그에게 빚을 졌는데, 그를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걸까.

너무도 시린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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