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지난 9월 국내 정보기술(IT)산업 경쟁력 지수가 발표됐다.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이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 의뢰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종합 경쟁력 지수 60.8을 기록해 조사 대상 66개국 중 19위를 기록했다. 2007년 순위는 3위였다. 보고서대로라면 IT 경쟁력이 6년 만에  곤두박질친 것이다.

# 장면 2
지난 11월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방한했다. 언론들은 슈미트 회장이 한국 IT 산업에 큰 ‘선물보따리’를 풀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정작 슈미트 회장의 입에서 인터넷 규제와 관련한 뼈아픈 조언을 들어야만 했다. 슈미트 회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국의 인터넷 규제는 최첨단이 아니고, 뒤처지는 부분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인터넷과 관련해 더 개방된 규정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한국의 규제가 더 개방적이고 현대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장면 3
지난 12월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2011년 정부업무평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정부 부처는 어디였을까? 업무평가 보고서에서 낙제점을 받아 꼴찌의 명예(?)를 차지한 정부 부처는 방송통신위원회였다.

2011년 올 한해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평가를 놓고 한숨과 분노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종합편성채널 특혜에만 앞장선 방통위’이라는 혹독한 평가와 함께 방통위의 존폐가 거론될 정도로 정책이 실종됐다는 지적이다. 결국 방송 통신 정책의 수혜자인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도 뒤를 이었다.

방통위 정책=종편 특혜 정책

종편 특혜 의혹은 입이 아플 정도다. 신문 시장의 70%를 조중동이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신문사의 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그 순간부터 여론의 획일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견이 많았는데 방통위는 무려 4개의 종편 채널을 선정했다. 현재 미디어렙법은 연내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인데 방통위는 종편이 직접 방송 영업을 하도록 눈을 감아줬다. 방송의 주무기관으로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종편의 속을 들여다보면 특혜는 더욱 심하다. 전국단일 권역 방송을 허용하고 케이블 의무 전송을 강제하면서 국내 제작 프로그램 비율을 40%까지 낮췄다. 프로그램 시간의 10%까지 광고시간을 허용한 지상파와 달리 종편은 1시간에 최대 12분까지 광고방송을 허용시켜줬다.

12월 1일 종편 개국 직전까지도 방통위는 종편에 특혜를 베풀었다. 케이블방송사업자와 채널사업자의 협의 사안인 채널 배정을 두고 방통위는 케이블방송사업자를 압박하면서 종편이 황금 채널을 배정받게 한 일등공신이 됐다. 개국 이후 종편의 프로그램 상당수가 시청율 1%를 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시중 위원장은 대기업 광고 책임자를 만나 종편 광고를 압박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종편 특혜 논란이 가열되기도 했다.

지난 5일 종합유선방송사업자가 채널변경을 할 때 지상파 방송과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한 절차를 폐지하기로 한 것도 "저조한 시청률에 허덕이는 종편에게 방통위가 '최후의 선물'로 지상파 채널 번호를 부여받을 수 있게 사전 정지 작업을 한 것"(언론노조)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언론노조는 이번 방통위의 결정에 대해 "방송 정책 주무기관 방통위의 의중을 거스를 수 있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는 없을 것"이라며 "한마디로 시청자의 보편적 채널 접근권을 볼모로 종편에서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종결 특혜를 마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은 "방통위의 정책 기조는 종편만을 위한 정책으로 경도돼 있다"며 "각종 지상파 관련 정책이나 유료방송 정책 너나 할 것 없이 방송의 영역에서는 종편의 생존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에 따라 결론 지어진다"고 비판했다.

강 정책위원은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무료 방송 서비스, 공공 서비스, 보편적 서비스 영역 제반의 공적 장치가 있었는데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실질적인 한해”라고 평가했다.

방송·통신 정책 실종…논란 일으키고 갈등 키워

종편에 무한정 특혜를 베픈 방통위는 방송, 통신 분야에서 이해관계의 갈등 해결사로서 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tv 방송사업자 간의 재송신 분쟁은 방통위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재송신료 문제로 협상이 결렬되고 급기야 케이블 방송사업자는 법원 판결에 따른다며 디지털 신호를 끊어버리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방통위는 협상 테이블은 마련했지만 중재자로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양측의 갈등으로 인해 770만 명이 지상파 HD 방송을 볼 수 없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무능력한 방통위가 시청자들의 보편적 방송 접근권을 박탈한 결과를 낳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재송신 분쟁과 관련해 "방통위는 법원이 설마 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에 하루 5000만원의 간접강제금 집행 결정과 종합유선방송의 방송 중단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재송신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작업을 미뤄왔다"며 "국민만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정책 원칙으로 생각하지 않고 방송사의 힘겨루기에만 의존해 시간을 낭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2년 12월 31일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방송 전환 사업도 현재 방통위의 준비대로라면 대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정부 부처 업무 성적표에서 꼴찌라는 수모를 당한 이유도 디지털 방송 전환 정책 때문이다. 업무평가 보고서는 디지털 방송 전환을 앞두고 취약계층에게 지급하는 보조금 지원 실적이 전체 34만 대상 가구 중 3만 230가구(9%)에 불과한 것을 지적했다.

KT 2G 서비스 종료를 승인한 것은 방통위의 치명적인 실책으로 꼽힌다. 방통위는 KT 2G 이용자의 지속적인 KT 불법 전환 사례를 민원으로 접수하고도 끝내 지난달 23일 서비스 종료를 승인해줬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KT 전체 서비스 이용자 중 2G 가입자가 0.96%에 불과하다는 점을 내세워 종료를 승인해줬지만 지난 7일 법원은 "절차적, 실체적 위법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방통위의 정책에 정면으로 제동을 걸었다. 주무기관으로서 자존심을 구긴 것은 물론 방통위가 내놓은 정책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든 셈이다. 일각에서는 방통위가 통신업체에 일방적인 편을 들고 소비자를 우롱하면서 결국엔 법의 철퇴를 맞았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주파수 할당 문제도 방통위는 통신 쪽 이해관계만을 적극 반영하고 있어 방송계의 반발로 언제든지 불씨가 당겨져 폭발할 수 있는 사안이다.

방통위는 디지털 방송 전환 이후 유휴 대역으로 남는 700MHz 대역 108MHz 폭의 주파수 전체를 통신 쪽에 할당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방통위의 통신 정책인 '모바일광개토플랜'과 맞물린 결과다. 하지만 방송계의 주파수 수요 요구에 대해서는 철저히 눈을 감으면서 갈등을 키운 측면이 크다. 현재 방통위 108MHz 폭 주파수 중 40MHz를 통신에 할당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이 역시 방송계는 주파수 알박기 '꼼수'라며 반발하는 형국이다. 방송계는 "40MHz를 반반씩 할당해 698~718MHz 하위대역과 786~806MHz 상위대역으로 나누어 통신에 할당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 40MHz를 반으로 나누어 20MHz씩 상․하위 대역으로 통신에 할당하게 되면, 나머지 68MHz를 2013년 DTV 전환 이후 난시청 해소를 위해 지상파가 활용하려고 해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방통위는 바로 이점을 노린 것이다. 즉, 108MHz 전체를 통째로 통신업자에 넘기려다 여의치 않자 상․하위 대역 40MHz를 알박기 함으로서 향후 108MHz 전체를 통신업자에게 할당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방송 통신의 주무기관으로 갈등 조정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이해관계가 첨예한 쟁점 문제에 대해서는 한쪽 편에 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방통위 인적 구성 변화해야

방통위의 인터넷 규제 정책도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될 정도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방한해 "한국의 인터넷 규제는 최첨단이 아니고 뒤처지는 부분이 있다"고 한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하루 방문자 10만 명이 접속하는 사이트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따라야 한다. 구글 유튜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지역 이용자들의 동영상 업로드와 덧글을 다는 기능을 제한하면서 인터넷 규제 정책을 피해갔다.

'나는꼼수다' 등 팟캐스트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심의하겠다는 발상 역시 방통위의 인터넷 규제 일변도 정책과 무관치 않다. 방통위 산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SNS 규제 전담팀을 신설해 논란이 커지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SNS의 위력을 막으려는 시도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반면, 방통위는 개인정보유출 사고에 대해서는 늑장 대응으로 비난을 받았다. 지난 7월 SK커뮤니케이션즈가 3500만 명의 개인정보유출 사고를 냈지만 적극적인 재발방지책을 내놓지 않았고 그 결과 4개월 후 넥슨의 1300만 명 정보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

조준상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올 한해 방통위의 평가에 대해 "여당 추천위원들이 종편 문제 등 정책에 있어 비밀주의와 억지논리를 통해 밀어붙인 문제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조 사무총장은 특히 통신 쪽 정책의 문제로 2G 서비스 종료를 들어 "여전히 다수가 이용하는 서비스를 어떤 프로세스를 가지고 종료할 것인지 타당성을 따져봐야 하는데 KT는 방통위에 읍소하고 방통위는 들어주는 식으로 해서 결과적으로 나이브한 판단이 불러낸 실책"이라면서 "전반적으로 무능력한 문제로 난맥상이 드러난 것이다. 방통위 인적구성이 IT의 발전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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