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베르디와 푸치니가 있었다면 20세기에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있어.”

음악동호회의 오페라 광들 앞에서 이렇게 얘기했다가 코웃음거리가 된 기억이 나네. 응식이, 제성이... 너희들은 굳이 반박할 생각도 안 하고 그냥 픽픽 웃기만 했지. 정말 오랫동안 못 보고 지냈구나. 돈키호테같은 내 주장에 웃음으로 답해준 너희들이 고맙고, 그 시절이 그립구나. 잘 지내는지? 우린 별처럼 찬란했고, 또 별처럼 멀었지. 함께 음악 나누고 대화 나눈 그 시간들은 아득하지만, 기억은 또렷하네. 

응식이와 제성이는 전통 오페라와 20세기 뮤지컬은 음악 수준이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였어. 일리가 없진 않지. 정제된 오케스트라의 음악,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성악가들이 기량을 맘껏 뽐내는 유명 아리아들 생각하면 뮤지컬은 값싼 여흥으로 보일 수밖에. 하지만 내 고집도 만만치 않아. 듣는 사람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삶을 고양시키는 힘이 있다면 뮤지컬이 전통 오페라만 못할 게 뭐가 있을까?

오페라라는 게 뭔지 한번 생각해 보자. 줄거리가 있는 문학작품을 음악으로 옮긴 것, 오케스트라와 독창자와 합창이 어우러지는 음악을 중심으로 세트, 의상, 소품을 활용해서 볼거리를 제공하는 종합 예술. 이론서적 뒤져봐도 대충 이 정도를 뛰어넘는 뾰족한 정의는 안 나와.

그럼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는? 결정적인 기준은 없는 것 같아. 뮤지컬도 오페라처럼 오케스트라가 라이브로 연주해. 오페라는 성악을 전공한 분들만을 위한 작품이지만, 그게 결정적인 차이일까? 출연자의 성량이 크다, 이 테너는 최고음인 하이-C 음을 쉽게 낸다, 이런 게 종종 화제가 되는 것 같은데,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뮤지컬이 상업성을 앞세운 대중음악이라면, 오페라도 흥행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야.

클로드 미셸 숀버그 작곡의 뮤지컬 <미스 사이공>과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한 장면을 비교해 볼까?    

<미스사이공> 첫 장면 ‘사이공의 열기’
http://www.youtube.com/watch?v=WyURt9Kp6JM&feature=related

<아이다> 2막 중 ‘개선행진곡’
http://www.youtube.com/watch?v=1_NRazjCiG4&feature=related

흠... 클래식인 <아이다>의 ‘개선 행진곡’은 아는데, 뮤지컬 <미스 사이공> 음악은 처음 듣지? “클래식 모른다” 소리 이제 그만!

<미스사이공>은 월남전이 한창일 때 주인공 베트남 처녀 킴이 팔려온 사이공의 술집 장면에서 시작해. 만취한 미군들이 난잡하게 놀고 베트남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몸을 팔지. 화면이 상당히 선정적이지? 뮤지컬 다큐 촬영하러 런던 가서 ‘로열 드루리 레인’(Royal Drury Lane) 극장에서 첨 봤는데, 꽤 야하더라.

<아이다>는 에티오피아 원정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이집트 병사들의 행진에 이어 승전을 축하하는 춤판이 벌어지지. 음악의 격조나 무용의 품위는 <아이다> 쪽이 단연 뛰어나. 하지만 일정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은 마찬가지 아닌가? <아이다> 한국 공연 때는 이 장면에서 코끼리를 무대에 올려 화제가 된 일도 있어. 기획사에서도 코끼리를 홍보 포인트로 써먹었지. 뮤지컬이나 오페라나 ‘쇼 비즈니스’인 건 마찬가지란 얘기야. 오페라 매니아들의 취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야. ‘오페라는 고상하고 뮤지컬은 저속하다’는 도식적인 편견을 넘어서자는 얘기일 뿐이야.

“닥치고 감상!”

<레 미제라블> 중 1막 피날레 ‘하루가 지나면’ (One Day More)
http://www.youtube.com/watch?v=BpGA_VRc1Ro&feature=fvst

<레 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발표한 소설로, ‘비참한 사람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거야. 19세기 전반, 파리가 무대야.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장발장, 배고파 우는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행 - 탈옥과 재수감을 되풀이한 끝에 19년 만에 출옥 - 가는 곳마다 박대를 당하던 그는 밀리에르 주교 집에서 신세를 진 뒤 은촛대를 훔쳐서 달아나다가 잡히고, 주교는 그 촛대를 자기가 선물했다고 증언해서 장발장을 구함 - 이에 감화된 장발장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해 주는 사랑의 삶을 실천 - 그의 유죄를 확신하는 자베르 경감은 세상 끝까지라도 따라가 그를 잡으려 함 – 장발장은 코제트의 어머니 팡틴을 만남, 팡틴은 코제트를 부탁하고 사망, 장발장은 테나르디에로부터 코제트를 구해서 10년간 키움 – 장발장은 코제트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코제트는 마리우스와 사랑에 빠짐 – 장발장, 학생 무장봉기 때 바리케이드에서 위기에 빠진 마리우스를 구함 – 포로가 된 자베르 경감을 장발장이 풀어 주고, 자베르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살 -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결혼하고, 장발장은 두 사람을 떠나려고 함 – 모든 사연을 알게 된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장발장을 찾아냄 – 장발장, 두 젊은이 앞에서 임종.

워낙 대작이라 ‘간단히’ 요약이 잘 안 되네. 이 소설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비참한 삶을 이어나가야 하던 프랑스 민중들의 실상을 그린 대 파노라마야. 실패로 끝난 1832년 학생 봉기가 나오지.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인간이 소중하다는 신념을 꿋꿋이 실천하는 장발장의 모습이 깊은 감동을 주지. 1985년 카메론 매킨토시가 뮤지컬로 만들어 런던 바비컨 센터에서 초연한 뒤 지금까지 ‘팰리스’ 극장 (Palace Theater)에서 27년째 공연 중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라이센스 공연이 예정돼 있어. <캐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과 함께 4대 뮤지컬의 하나로 꼽히는 걸작이야.

<하루가 지나면>(One Day More)의 내용을 살펴볼까. 학생 무장봉기 전야, 주요 등장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내일이 오면 일어날 일을 각각 노래하지.

(링크 처음) 장발장은 날이 밝으면 새 운명을 찾아 떠날 거라고, 자기 범죄를 아는 자베르가 자기를 잡으러 올 거라고 노래해. (28초 지점) 이제 막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와 코제트도 가슴 아픈 이별을 예감하고 있어. “내일이면 당신은 머나먼 세계에 있겠죠. 나의 세계는 당신과 함께 방금 시작했는데...” 헤어지는 게 얼마나 아쉬우면 ‘머나먼 세계’(worlds away)란 표현을 썼을까! (55초 지점) 마리우스를 홀로 사랑하는 가엾은 에포닌은 ‘나 홀로 맞게 될 하루, 그가 날 생각하지 않을 하루’를 탄식하고, 코제트와 마리우스는 변치 말고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지.

(1분 22초) 학생 대표 앙졸라스가 내일이면 총을 들고 자유의 바리케이드에 모이자고 선언하고, 마리우스는 코제트와 함께 있을지, 봉기에 동참할지 갈등하는 마음을 노래해. (1분 48초) 장발장이 “하루가 지나면”(One Day More)을 선창하면 자베르 경감이 다짐하지. “혁명이 하루 앞이라고? 그 싹을 잘라 주겠어, 코흘리개 학생 녀석들, 피에 흠뻑 젖게 해 주마!”

(2분 1초) 탐욕스런 테나르디에 부부가 등장, 시체 더미에서 돈과 귀금속을 주워 모을 거라고 노래하고, (2분 11초) 모든 사람이 함께 “새로운 날의 시작, 모든 사람은 왕이 되리라!” 노래하지. (2분 27초) 합창의 가사가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로 이어지면 이에 화답하듯 마리우스가 등장, “내가 설 곳은 여기야, 너와 함께 싸우겠어!”라고 외치지. (2분 36초)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을 동시에 노래하며 대단원을 이뤄.  

앞의 글에서 클래식 음악의 경계가 애매하다고 했는데, 20세기에 등장한 뮤지컬과 정통 클래식 오페라 사이의 경계도 딱 부러지게 얘기하기 어려운 것 같아. 그런데, 분명한 건 이 뮤지컬 장면이 어느 오페라 못지않게 감동적이고 훌륭하다는 점이야. 그렇다면 이 뮤지컬을 클래식에 포함시키면 왜 안 되는 거지?

오페라의 역사를 얘기하는 건 내 능력 밖이니 생략. 오페라를 알려면 나보다 훨씬 오페라를 잘 아는 이용숙 저 <오페라, 행복한 중독>(예담, 2003)이나 박준용 저 <오페라는 살아있다>(폴리포니, 1999)를 권하고 싶어. 둘 다 좋은 책이야.

근대 오페라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가 1607년에 세상에 나왔고, 그래서 지난 2007년에는 ‘오페라 400주년’ 행사도 여기저기서 열렸지. 초기 오페라는 궁중의 여흥이었어. 비발디, 헨델, 퍼셀, 라모, 글루크, 살리에리 등 우리가 이름을 아는 작곡가들의 작품이 거의 다 그랬지. 18세기 부르주아 계층이 대두하면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돈조반니>, <마술피리> 등이 일반 시민들의 갈채를 받게 되고 ‘오페라의 전성시대’를 누리지. 모차르트 오페라는 나중에 자세히 소개해 줄께.

여기까지는 모두 공감할 텐데, 지금부터 얘기를 더 하면 오페라 광들한테 돌 맞을 것 같군. 암튼 내친 김에 계속하자면, 모차르트 이후 그보다 더 좋은 오페라는 나오지 않았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리고, 마침내 20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뒤 비로소 모차르트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 나왔는데, 그게 바로 <레 미제라블>이라는 거지. 에휴, 돌 날아온다!

오페라 사상 최대의 걸작 <돈조반니>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는?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 등 비교적 가벼운 작품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었고, 19세기 후반 베르디, 푸치니에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았지.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등등 고만고만한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있는데, 그 다음은? 몰라.

<마술피리>가 독일 오페라의 정점이라면 그 이후는? 베토벤이 <피델리오> 하나를 썼지만 너무 엄숙해서 재미가 없고, 슈베르트가 오페라를 몇 편 썼지만 모두 실패했고, 베버의 <마탄의 사수> 정도가 명맥을 이었지. 오펜바흐, 요한 슈트라우스, 레하르 등 오페레타의 전성시대가 있었고, 그 뒤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대작을 남겼어. 근데, 이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치료 불능 중독자가 되기도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기엔 너무 거창한 음악이야. 선율이 끝도 없이 구불구불 흘러가고, 일단 너무 길어. 바그너의 ‘반지’(Ring) 사이클에 속하는 네 작품은 모두 들으려면 16시간은 잡아야 해. 음악 동호회에 가 보니 이걸 다 외우는 친구도 있더군. 지금 서울대 있는 문정훈 교수... 이 친구 덕분에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를 다 들은 경험이 있고 그 점 평생 감사하지만, 지금도 내겐 너무 길어. 바그너 음악은 일부 관현악 대목은 무척 좋아하지만, 솔직히 성악 부분이 좋은지는 모르겠어. 암튼 바그너 이후 독일 오페라는? 알반 베르크 <보체크>가 있다지만 도무지 좋은 줄 모르겠고, 브레히트 시에 음악을 붙인 쿠르트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가 좀 대중적이긴 하지만 영향력이 미미했고. 그 이후는? 몰라.

19세기 러시아의 글린카와 차이코프스키와 무소르그스키, 20세기 소련의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 프랑스의 드뷔시와 메시앙, 미국의 거슈인 등이 훌륭한 작품을 남겼지만 음악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 했어. 오늘날 공연되는 오페라 작품들은 딱 여기까지야. 따라서 내 결론은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오페라 작곡가는 역사상 없었다는 거고, 이른바 ‘정통 클래식’ 안에서 대중들을 사로잡을 오페라가 새로 나오길 기대하기도 어렵게 됐다는 거야. 암만 높은 품질을 유지해도 봐 주는 사람이 없다면 현대 오페라가 무슨 존재 의의가 있을까?

이런 현상은,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이 점점 대중과 멀어지며 ‘그들만의 리그’로 흘러간 영향도 있을 거야. 20세기 후반 들어서 이러한 ‘음악과 대중의 괴리’는 거의 치유 불가능한 지경까지 온 것 같아. 비단 오페라 뿐 아니라 일반 기악에서도 마찬가지지. 그럼 20세기 대중들이 즐길 만 한 오페라는 뭘까? 혹시 뮤지컬 아닐까?   

‘세계 4대 뮤지컬’을 제작한 사람, ‘뮤지컬계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카메론 매킨토시도 그렇게 생각하더군. 1996년 다큐멘터리 <무대 위의 환상 뮤지컬> 촬영 때 만난 이 분 인터뷰 한 대목.

“뮤지컬의 음악은 극적이어야 합니다. <라 트라비아타>나 <나비 부인>처럼 인기 있는 오페라는 음악이 훌륭할 뿐 아니라 스토리가 아주 강렬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오페라는 일반 대중들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뮤지컬은 대다수 오페라가 갖지 못한 현실성이 있어서 더욱 재미있고 대중적이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19세기 오페라 작가가 했던 일과 같습니다.”

앞서 감상한 <하루가 지나면>(One Day More)처럼 여러 출연자가 제각기 다른 가사로 노래하는 기법은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에서 처음 선보였고, 이 뮤지컬에서 차용했어. 주인공 장발장의 비감한 심정,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 혁명 전야의 갈등, 그리고 테나르디에 등 탐욕스런 민중의 속내가 어우러져 극적인 효과를 높이지. 주요 등장인물에게 한 막에 한 번씩, 평균 두 번씩 독창을 하도록 배치한 것도 모차르트 오페라를 닮았어. 오페라다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노래, 하나 더 들어볼까. 

무장봉기를 계획하는 학생들의 모임을 묘사한 1막 (ABC Cafe).
http://www.youtube.com/watch?v=hsmoXmaID50&feature=related

(처음) 학생 대표 앙졸라스는 봉기의 때가 무르익었음을 확인하고, 정부군의 화력이 우월하므로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해. 민중들이 함께 일어나기 위해서는 ‘상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지. (1분 4초)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가 뒤늦게 도착하고, “유령을 본 표정이네, 웬일이야?”는 친구들의 물음에 마리우스가 “그래, 유령을 본 것 맞아. 그녀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어.” 대답하자 친구들은 “전투에 이겨야 한다더니 돈 주앙이 돼서 나타났네. 오페라보다 더 재미있군” 익살스레 화답해.

(1분 52초) 이 때 멀리서 민중의 행진 소리가 들려오지. 클라리넷이 차분하게 연주하는 이 대목이 일품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야. 어느 오페라에서 이만큼 섬세한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앙졸라스는 “세계의 색깔이 하루하루 변해 가는 지금, 우리가 누구인지 확실히 결정해야 할 때”라고 선언하고 ‘빨간 색과 검은 색’의 행진곡을 노래해. (2분 33초)

“빨간 색, 분노한 자의 핏빛 
 검은 색, 지나간 시대의 어둠
 빨간 색, 밝아오는 세계
 검은 색, 마침내 끝나는 밤”

마리우스는 사랑에 빠진 달콤한 느낌을 같은 멜로디에 담아서 노래하지. 그녀를 만난 뒤 한 순간에 변해 버린 세상. (3분 19초)

“빨간 색, 불타오르는 내 영혼
 검은 색, 그녀가 없는 세상
 빨간 색, 욕망의 색깔
 검은 색, 절망의 색깔”

마리우스의 노래에 합창이 가세하여, 혁명 전야인데도 친구들이 마리우스의 사랑을 축복해 주는 느낌이야. 얼마나 사랑스런 젊은이들인가! 앙졸라스는 “마리우스의 선의를 인정하지만 지금은 더 높은 목적을 위해 개인을 바쳐야 할 때”라고 강조해. (3분 56초) 금관과 드럼이 가세, 다시 한 번 우렁찬 합창이 이어지지. 오페라다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고, 음악도 여느 클래식 못지않게 훌륭해. 

이 뮤지컬의 로고송이라 할 수 있는 노래는 꼬마 코제트가 부르는 <구름 위의 성>(Castle on a Cloud)이야. 1996년 뮤지컬 다큐를 만들 때도 이 노래를 제일 먼저 썼지. 가난한 어머니 팡틴의 품을 떠나 테나르디에 부부의 주막에서 하녀 노릇을 하는 꼬마 코제트의 환상. 구름 위의 성에는 장난감도 많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해 준다는 꿈. 매켄토시 프로덕션이 해외 순회 공연할 때면 해당 나라의 어린이를 오디션 해서 꼬마 코제트를 뽑지. 흥행 전략일 거야. <구름 위의 성> http://www.youtube.com/watch?v=ag7j-pCvvfU

가난 때문에 온갖 험한 일을 해야 했던 팡틴의 독창 <나는 꿈이 있었지> (I Dreamed a Dream)를 들어 볼까.

http://www.youtube.com/watch?v=pm59pPbqAMQ&feature=fvst

가난하지만 아름다웠던 지난 시절,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노래. 이 노래의 주제는 앞서 감상한 <하루가 지나면>(One Day more)에서도 변형돼 나오지. 작곡자 클로드 미셸 숀버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어. 2009년 영국의 TV 프로그램 ‘영국인은 재능이 있다’(Britains Got Talent)에서 우승한 수잔 보일이 부른 바로 그 노래.

수잔 보일 <나는 꿈이 있었지> (I Dreamed a Dream)

http://www.youtube.com/watch?v=PnNk4zpsqew&feature=related

이 뮤지컬에는 전세계 99%에 해당하는 민중이 함께 부름직한 노래가 나와. 99%를 위한 월가 점령 시위 때 사람들이 이 곡을 불렀는지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유럽과 미국 대중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노래야.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Do You Hear the People Sing?)

http://www.youtube.com/watch?v=9-GRyOqsi9M&feature=related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 분노한 사람들의 저 노래 소리 /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 사람들의 음악 소리 / 네 심장의 고동이 / 드럼 소리에 메아리 칠 때 / 내일이 밝아 오고 /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네” 

민중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가사지만 끝부분에서는 단조로 어둡게 물들어 버리지? 2막 바리케이드 봉기 장면에서 정부군에게 무자비하게 진압 당할 운명을 예고하는 듯 해. 이 노래가 피날레에서 다시 한 번 나올 때는 장조로 씩씩하게 끝나지.

링크 6분 37초 지점. http://www.youtube.com/watch?v=MCHQdAIYrLk

<레 미제라블> 초연 25주년 기념 행사 때, 장발장을 맡았던 세계 각국의 17명 주연배우가 이 노래를 차례로 이어 부르는 앵콜 이벤트가 있었어. 동영상을 볼까. 상업적 이벤트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암튼 대단한 무대였던 것 같아.

http://www.youtube.com/watch?v=hUCZywEwbvo&feature=endscreen&NR=1

온 세계 언어로 부르니 가히 ‘인터내셔널가’에 버금가는, ‘세계 99% 민중의 노래’란 게 실감나지? 집회, 시위 때만 부르는 게 아니라 EU 공식 행사에서도 불렀네. 1996년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린 EU 총회 폐회식. 표현의 자유가 군부독재 시절로 돌아간 우리나라 같으면 불온시 될 노래인데, EU에선 각국 정상들 모인 자리에서도 불렀다니 그쪽이 이상한 건가, 우리가 이상한 건가?

http://www.youtube.com/watch?v=3_V0NXFpSSA

시간 날 때 전곡을 다 찾아서 들어보기 바래. 그리고 기회 되면 라이브로 감상해도 좋겠지. 뮤지컬 티켓이 너무 비싸서 쉽진 않겠지, 쩝. 혹시 런던에 갈 일 있으면 시간 내서 웨스트엔드의 ‘팰리스’ 극장 (Palace Theater)에서 직접 봐도 좋아. 한국보다 티켓이 덜 비싸고, 극장이 생각보다 작아서 배우들의 호흡을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이탈리아어 오페라의 최고봉 <돈조반니>(1787), 독일어 오페라의 최고봉 <마술피리>(1791), 그 후 200년 가까이 지나서 비로소 누구나 즐길 만한 좋은 작품이 나왔어. 1985년에 초연된 <레 미제라블>, 영어로 된 ‘20세기의 오페라’라고 생각해도 좋아.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른 지 27년, 앞으로도 오래 공연될 것 같지? 이 뮤지컬을 ‘클래식 오페라’로 분류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이 언젠가는 증명될 거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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