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박사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시청 토건족 그리고 박원순의 위기」라는 제목의 컬럼을 읽었다. 우석훈의 컬럼을 요약하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모피아, 토건족, 교육마피아에게 무너졌다. 특히 참여정부는 인수위 구성단계에서 김진표를 요직에 등용하면서 토건족이 발호하는 등 실패의 길을 걸었는데, 최근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도 노무현의 길을 가고 있다. 박원순이 토건족에게 포획됐다는 증거는 두 가지인데, 오염지역의 '친환경 스케이트장'과 가락 시영 '종상향'이다. 그리고 토건족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서울시장의 실질적인 인수위원장이었고 지금은 정책자문위원장인 김수현 교수다. 김 교수는 실패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을 총괄한 사람이고 너무 옛날 패러다임의 사람이다. 박 시장은 토건시장이 되지 않으려면 먼저 김수현 교수를 내쳐야 한다'정도가 될 것이다.

김수현이 토건족 바람막이라는 증거 있나

우석훈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관료들에게 포획당했고 그것이 민주정부들의 붕괴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평가한 것은 음미할 만 하다. 간난신고 끝에 당선된 박원순 시장이 토건족들에게 휘둘려 전임 시장들의 전철을 밟을까 염려하는 것도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친환경 스케이트장'(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스케이트장을 말하는 것 같다) 과 가락시영 아파트 '종상향'을 박 시장이 토건족들에게 먹힌(?)증거로 제시하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특히 가락시영 아파트 '종상향'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독립적 결정이라는 점, 재건축을 추진하는 모든 단지에 '종상향'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종상향으로 인해 도심에 대규모 임대아파트와 공공보육시설 등의 복지시설이 확충된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박 시장이 토건족에게 포섭(?)당한 증거라고 단정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백보를 양보해 가락 시영 아파트 '종상향'을 우석훈처럼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석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과감한 돌진을 감행한다. 우석훈은 서울시 정책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수현 교수를 "토건족의 바람막이"로 지칭하며, 그를 내치라고 박 시장에게 조언하고 있다. 우석훈이 쓴 컬럼을 보면 참여정부 인수위에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한 김진표를 참여정부 붕괴의 1등 공신으로 표현한 구절이 나오는데, 우석훈은 김수현 교수를 박원순 서울시의 김진표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박원순 서울시의 김수현을 노무현 정부의 김진표라고 평가하는 건 우석훈의 자유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우석훈이 김수현 교수를 "토건족의 바람막이"로 간주하는 구체적인 근거나 증거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석훈은 이에 관해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우석훈이 박원순 시장이 토건족에게 먹혔다는 증거로 제시하는 '친환경 스케이트장'이나 가락시영 '종상향'에 김 교수가 관여했다는 증거나 증언을  우석훈은 확보하고 있는가? 아니면 '친환경 스케이트장'이나 가락시영 '종상향'이외의 토건사업에 김 교수가 연루됐다는 첩보를 우석훈이 가지고 있는 것인가? 만약 우석훈이 그런 증거나 근거가 없이 김 교수를 "토건족의 바람막이"로 지칭한 것이라면 이건 김 교수에 대한 모욕을 넘어 인격살해에 가까운 행위이다.

우석훈의 넘겨짚기, 조선일보식와 뭐가 다른가

우리는 팩트에 기반하지 않고, 확보한 팩트도 비틀고 축소하고 확대하며, 팩트와 의견을 뒤섞고, 비약과 생략을 통해,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에 갖가지 낙인을 찍는 신문을 알고 있다. 그 신문의 이름은 조선일보이다. 졸지에 김수현 교수를 '토건족의 바람막이'로 만든 우석훈의 컬럼이 조선일보가 쏟아내는 보도들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혹시 우석훈이 조선일보와 싸우면서 은연중 조선일보와 닮게 된 것은 아닐런지. 

한편 우석훈은 컬럼에서 "그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 요인 중 결정적이었던 부동산 정책을 청와대에서 총괄하던 사람이었고, 그의 실패가 바로 노무현의 실패였다. 그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는 지금의 변화에 적합하지 않은, 너무 옛날 패러다임의 사람이다"라고 갈파한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으며 이 실패가 참여정부 실패요인 가운데 결정적이었다는 우석훈의 평가에 필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우석훈이 무슨 근거와 기준으로 그렇게 평가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역시 그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이니 시비걸 생각은 없다. 그런데 우 박사의 말처럼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치자.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는 동안 우석훈은 무얼하고 있었나? 혹시 참여정부에게 열심히 돌이나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가뜩이나 좌우의 협격에 신음하던 참여정부의 입지를 한층 곤궁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닌가?

끝으로 김수현 교수를 "지금의 변화에 적합하지 않은, 너무 옛날 패러다임의 사람이다"고 규정한 우석훈의 만용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진보개혁진영의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 가운데 김수현 교수처럼 스스로를 갱신해 기존의 패러다임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부동산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람인 우석훈은 인재를 알아보는 법, 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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