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비상대책위원장은 당권 장악은 물론 대선 출마도 가능하다.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한나라당이 명실상부한 박근혜당이 된 것이다. 한나라당 분위기는 한껏 고조된 상황이다. 재창당을 둘러싼 당내 갈등을 봉합하면서 이제 살 길을 찾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한나라당이 박근혜 당으로 변신한 것은 권력 중심의 이동으로 설명 가능하다. 청와대에서 박 전 대표에게 칼자루가 넘어온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이후 박 대표와의 원만한 관계를 불허했던 상황이 종지부를 찍고 박 대표가 청와대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 되었다. 물론 박대표가 내년 대선 승리를 고려한다면 청와대와의 관계를 험악하게 몰고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청와대를 밟고 가야 할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교두보를 박 대표는 확보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권력 구조 변화를 놓고 당내에서는 쇄신 운운하면서 박수 받을 큰 일이나 한 것처럼 스스로 대견해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적 공감을 사기 어렵다. 당이 최고 권력자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당이 그에 예속된 상태를 여전히 계속하는 모습은 민주 정당의 그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체질이 ‘강력한 리더십’을 항상 섬기면서 바지저고리 역할에 충실했고 앞으로 그럴 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지를 보인 것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실제 한나라당 밖의 분위기는 ‘그들만의 축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한나라당이 직면한 최대 악재인 선관위 테러 사건이 한나라당내의 조직 범죄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 사이버 테러 사건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면서 ‘단독 범행’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수상한 일들이 자꾸 드러나고 있다. 경찰의 은폐의혹까지 드러나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이 희희낙락할 상황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분위기는 이제 살았다는 그런 모습이다.

당이 처한 이런 저런 점을 고려한다면 한나라당은 ‘박근혜를 중심으로 살길을 모색하자’는 결정을 내린 꼴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한나라당이 어떤 상화에 처할지 아직 속단키 어려운 긴박한 상황이다. 한나라당이 박근혜 한 사람만으로 공중분해의 위기에서 소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예정대로 오는 19일 공식 출범한다.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의 책임이 청와대의 소통부재 및 정책실패에 있다는 주장이 당내의 큰 흐름이다. 한나라당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거리를 둘 수 밖에 없고 당청갈등이 야기될 수 있는 잠재력이 적지 않다. 특히 당이 선관위 사이버 테러 사건의 파장을 줄이면서 국민적 호감을 얻기 위해 당청 갈등을 더 심화시킬 가능성도 크다.

한나라당 비대위가 넘어야 할 산은 한 둘이 아니다. 박 전 대표와 쇄신파는 `재창당을 뛰어넘는 당 쇄신'에 합의했다. 정책 변화는 물론이고 당명 개정 가능성까지 열어둔다는 의미로 읽히지만 현실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면서 당이 거듭난다는 것인지 아직 불투명하다. 예를 들어 고강도 인적 쇄신 속에 기존 당내 인사들을 `물갈이'할 때 조용하게 넘어갈지도 관심거리다.

한나라당이 처한 최근의 위기는 한나라당이 자초한 것이다. 청와대가 민심 이반의 중심에 있다고 하나 청와대의 바지저고리 역할에 만족하면서 공당의 처신을 외면한 것은 한나라당이다. 해마다 계속된 국회 날치기 통과 사례도 한나라당이 앞장섰다. 선관위 테러 사건도 경우에 따라서는 한나라당이 최악의 상황에 놓일 만큼 심각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간판을 내세워 당이 엎드리고 파도를 피해가려는 시도가 얼마나 성공할지 모르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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