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로 창사 50주년을 맞은 MBC가 방송민주화 시절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극심해진 편파보도 탓이다. 최근 10여년 이내 이렇듯 정부 여권 등 권력에 편파적인 뉴스를 내보낸 전례가 없다는 개탄이 쏟아진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MBC를 지키자고 나섰던 시민과 시청자들은 극도의 배신감에 각종 취재현장에서 MBC 기자들을 내쫓고 있고, MBC 기자들은 괴로움을 감내하고 있다.

MBC 뉴스는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인가. MBC 노조 등은 낙하산 인사로 취임한 김재철 사장과 그가 임명한 보직 간부들에 의해 MBC가 정권에 완전히 장악됐기 때문으로 보고 주요간부의 전면 인사쇄신을 촉구하며 총력투쟁 불사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MBC 뉴스의 추락이 과연 낙하산 사장 김재철의 정교한 조직장악과 통제 기제에 의한 것이라고만 설명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MBC 내부와 시민사회에서는 과연 그 구성원들은 무얼하고 있었느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MBC 기자 저항 불가능한 조직으로?=MBC 뉴스가 1~2년 새 급격하게 친정권 편향성을 띄게 된 이유에 대해 MBC 구성원들은 우선 이명박 정부 방송장악의 결과물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MBC 출신이면서도 이 대통령과 고대 동문이며, 현 정부와 코드를 같이해온 김재철 사장이 입성한 이후 노조의 반발 등 크고 작은 충돌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조직 장악을 꾀해왔다.

그러다가 김 사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보도본부와 시사교양국, 라디오본부 등 주요 제작부서의 수장을 자신의 성향에 맞는 인물들로 교체하면서 인사를 통한 재편을 추진했다. 그 결과 보도본부의 경우 이동관 전 홍보수석의 신일고·서울대 동문인 전영배 국장이 본부장이 됐고, 이후 보도국장 이하 각 부장들이 대부분 친여성향 또는 무색무취한 인물로 채워졌다. 실제로 이들 보도국 간부들은 기자들의 아이템 발제부터, 제작, 출고, 방송에 이르는 중첩된 단계를 철저히 관리·통제해왔다는 것이 많은 기자들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제기나 이견을 표출한 기자들은 종종 인사상 전보 등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생겼고, 자연스레 분위기 전반이 보도국 수뇌부의 뉴스제작 방침에 순치됐다고 노조와 기자들은 보고 있다. 이용마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홍보국장은 “저항하다 칼맞은 기자가 많다. 계속 칼맞으면서 할 수는 없다”며 “중대장 소대장급까지 (사장) 입맛에 맞는 사람을 기용하고 입바른 소리하는 사람은 한직으로 쫓아내는 방식의 분할통치가 기자들의 저항 자체를 무디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잦은 파업의 후유증 때문인가=또한 이명박 정부에 맞서 MBC가 앞장서 여러 차례 파업 등을 주도했지만 성과 보다는 상처를 많이 남기면서 패배주의가 확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MBC의 한 중견 카메라기자는 “지난 2008년 말, 2009년 2월, 8월 언론노조의 미디어법 파업을 주도한 데 이어 지난해엔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39일 동안 파업을 벌이는 등 잦은 파업에 의한 피로감도 주요인”이라며 “특히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지 못하면서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충격은 젊은 세대에겐 처음으로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성공하지 못한 경험을, 윗세대에겐 과거와 달리 승리하지 못한 첫 경험을 안겨줬다”며 “반면, 김재철 사장은 더욱 일방독주에 나서면서 기자를 포함한 구성원들이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기자는 “하지만 기자들이 무기력해진 데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들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아…책임 못벗어나”=김재철 사장 체제하의 MBC 기자들은 이런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못했다고 말한다. MBC 보도국의 11년차 기자는 “보도국장, 정치부장 만이 아니라 적잖은 기자들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며 “모든 기자의 의견이 같을 수는 없지만 지난 한 두 해를 거치면서 평기자 가운데에도 보수화되거나 타성에 젖은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자들 간 분열현상도 일부 있다”고 전했다. 그는 “문제는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서 기자들이 뉴스 아이템 선정이나 리포트 내용을 두고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거나 저항하는 일이 사라졌다”면서 “기자들이 순치된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용마 MBC 노조 홍보국장은 “기자들이 수뇌부로부터 저항했다가 칼날을 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며 “또한 10년 이내로 민주화에 역행하거나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 일이 없었다. 그 폭압에 놀라 저항하지 못한 면도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해도 권력에 친화된 뉴스와 편파적인 보도를 한 것에 대해 기자 스스로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리포트 하나하나 기자의 이름과 얼굴이 남기 때문이다. 이 기자는 “낙하산 사장이 오기 전 그 폐해가 기자들 개개인에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 우려했었다”며 “그것이 현실이 되고,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뉴스 전체가 망가진다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는 이어 “시대의 분위기를 들어 변명할 수는 있지만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다 역사로, 또한 상처로 남는다”며 “전두환 정권이 아무리 엄혹했다해도 그 시절 언론보도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뭐 하나만 터지면 폭발할 분위기”=이 때문에 MBC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참담함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달 말 이후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반대 거리시위 현장에서 내쫓기는 일이 반복되면서 거의 막내급(3년차)인 이성재 카메라기자가 MBC 뉴스에 대한 자기비판을 가했다. 그 이후 MBC 기자들과 카메라기자들은 기수별로 잇달아 MBC 뉴스의 편향성을 성토하고,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하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한 MBC 중견 기자는 “누군가 언급하고 나서거나 뭔가 촉발되기만 하면 단체행동에 나설 분위기가 충만해져있는 상태”라며 “뉴스가 이 모양으로 반복되는 것을 더 이상 볼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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