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신임 대통령실장에 하금열 전 SBS홀딩스 대표이사(사장)을 내정함에 따라 청와대 대통령실의 고위간부(수석이상급)에 SBS 출신이 3명이나 차지하게 됐다. SBS 내부에서는 물론 언론계에서는 당혹감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강부자·고소영 인사 및 오기 인사의 결정판이라는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하 실장이 30년 기자·언론인 인생을 대통령 비서 노릇(대통령실장)으로 마감한 것은 본인이나 청와대 뿐 아니라 후배 SBS 기자들에게도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선택이라는 지적이다.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도 저버린 선택’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 11일 브리핑에서 하 신임 실장 내정자에 대해 “SBS 전신인 서울방송 정치부장 시절 당시 국회의원이던 이 대통령과 교류를 시작해 줄곧 (대통령과) 인간적 관계를 맺어왔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인사자료에서 하 내정자에 대해 “동아방송, KBS·MBC 기자를 거쳐 서울방송 정치부장, SBS 보도본부장·사장 등을 역임한 정통 언론인으로서 넓은 안목과 균형된 시각, 합리적으로 온화한 성품으로 대내외 신망이 두터울 뿐 아니라, SBS 사장 재직시 통합과 추진력 및 경영능력을 골고루 갖춘 덕장형 리더로 호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이어 하 사장이 “35년 동안의 언론인 생활 동안 체득한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민 여론을 적극 반영해 대통령을 충실히 보좌하고 원활한 당정 및 국회관계도 정립해 나감은 물론, 대통령실의 역량을 극대화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후반기 주요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적임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하 사장의 대통령실장 기용에 따라 현재 청와대엔 SBS 보도국장 출신의 최금락 홍보수석, SBS 미래부장 출신의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수석급)에 이어 모두 3명의 SBS 출신이 주요 포스트를 차지하게 됐다.

이번 인사를 두고 SBS 내부에서는 폭탄맞은 분위기다. 이윤민 SBS 노조위원장(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은 12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당황스러운 일”이라며 “이런 식의 인사를 하는 것은 청와대에도 SBS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의 하 내정자 대통령실장 발탁에 대해 SBS 안에서 사전에 이를 거의 알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 내정자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SBS의 대주주인 SBS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이자 SBS 이사회의 의장을 맡고 있었고, 이달 초 홀딩스 대표이사에서 상임고문으로 내려왔다. 이윤민 위원장은 “사전에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며칠 전 인사가 나서 하금열 홀딩스 사장이 상임고문으로 일선 후퇴를 했었다. SBS 이사회 의장을 하다가 곧바로 대통령실장으로 간 것은 모양새도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SBS 뉴스 공정성과 독립성에 타격을 줄 뿐 아니라 향후 보도와 프로그램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반영되는 것은 아닌지 적극적으로 따져볼 것”이라며 “편성위원회의 활동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 사회에서도 하금열씨의 대통령실장 내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우장균 한국기자협회장은 12일 “SBS 출신 3명이 청와대 수석급을 차지한 것 자체도 온당치 않지만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 강부자 인사의 결정판이자 상식과 균형을 상실한 전형적인 불통인사”라고 비판했다.

우 회장은 “마치 이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가 아닌 현대건설 사장 또는 회장 때처럼 고대, 영남 출신 가운데 한 명을 임기 막판에까지 기용한 어처구니 없는 인사”라며 “특히 이번 인사는 현 정부와 SBS 모두에 부담될 것이라는 점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음에도 강행한 것은 국민을 상대로 또 한 번 몽니를 부린 것”이라고 혹평했다.

하 실장 내정자가 서울방송 정치부장 시절부터 이명박 대통령(당시 국회의원)과 인간적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청와대 설명과 관련해 우 회장은 “과거 구본홍씨의 YTN 사장 입성 때와 같은 데자뷰가 떠오르는 일”이라며 “언론인, MBC 기자, 고대, 영남출신, MB와의 정치부장 시절부터 막역한 관계라는 점 등이 공통적”이라고 평가했다.

우 회장은 “대통령실장이 자신이 대통령실장으로 갈 경우 ‘SBS가 조중동보다 MB정권과 훨씬 친하다’는 놀림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자신의 30년 언론인, 기자 생활에서 최소한의 양식과 명예조차 저버린 것이라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라며 “더구나 끝나가는 식물정권, 식물대통령 밑에 들어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저 부총리급(대통령실장)이라는 자리만을 생각한 것은 아닌지 너무나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특히 이번 인사는 최근 KBS와 MBC가 5공때처럼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하면서 상대적으로 SBS 뉴스가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는 평가도 나왔다. 우장균 회장은 “KBS와 MBC 보도국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SBS 기자들이 올해들어 이달의 기자상도 많이 받았고, 정부 비판을 포함해 적극적인 보도에 나서는 분위기였다”며 “이 와중에 이런 인사가 나온 것은 찬물을 끼얹고 젊은 SBS 기자들에게 치명타를 안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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