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이 유명인들을 둘러싼 구설수가 갑자기 늘어났다. 이른바 ‘조중동 종편 방송’이 프로그램 송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종편행을 고사한 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악재가 겹친 강호동을 필두로 하여, 김연아, 인순이 등 유명인들이 종편의 등장과 더불어 연이은 수난을 겪고 있다. 출연진뿐만 아니라 공지영 같은 소설가 역시 자의반 타의반으로 구설수에 휘말리며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특이하게도 종편 방송은 프로그램 자체보다도 그를 둘러싼 유명인들의 구설 논란이 더욱 화제가 되는 양상이다.

종편의 등장과 유명인들의 구설수

이미 예상되었던 바이지만, 종편 관련 구설수가 특별히 골치 아프고 복잡하며 후끈한 화제가 되는 것은 그 논란의 구도가 가진 정치성 때문이다. 출발 자체가 지극히 정략적인 목적과 편파적인 권력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그렇다. 지금으로서도 위태롭기 짝이 없는 상황에 내몰린 미디어의 공공성과 다양성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대신 오로지 기존 보수 언론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키워주기 위한 목적 혹은 그를 통해 현 여권 세력의 정치적 생명력과 이해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방송이 허가되고 출범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과 연을 맺게 될 이들은 내면적 성찰의 깊이 여부와 상관없이 이래저래 정치적 구설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런데 정치성향을 매개로 한 구설수는 여타의 구설수에 비해 매우 강력한 낙인효과를 낳는다. 2, 3년 주기로 순환되는 전국적인 선거의 계절마다 이름이 함께 오르내리기 십상인데다가 실수와 허점을 좀처럼 용납하지 않는 온라인의 어마어마한 기억력 앞에서는 망각의 강 건너편에 슬쩍 안착하기도 쉽지 않다. 낙인 중에도 이런 낙인이 없다.

강호동의 수난과 연예인들의 진퇴양난

더욱 골치 아픈 것은 강호동의 사례에서 보듯 종편 방송에 출연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심지어는 거절을 해도 문제가 되는 구도까지 형성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늘 그래왔듯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에 맞게 사회면 뉴스를 편집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그렇다. 많은 이들이 몇 일 지나지도 않은 종편 방송을 향해 ‘야쿠자’, ‘삥’, ‘갈취’와 같은 격한 언어를 날리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미디어에 노출된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먹고 돈을 벌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종편을 둘러싼 당혹스런 논쟁은 정말이지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정치적 전선과 비교적 동떨어진 곳에 살아가면서 미디어를 홍보 창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생각해왔던 그들에게 이런 상황은 진퇴양난 그 자체이다. 계륵 같은 것, 젓가락질을 해봤자 그다지 영양가도 없어 보이지만 어쩌다 잘못된 젓가락을 놀렸다가는 팬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야광봉이 언제 불화살로 돌변해 버릴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모르긴 하지만 이러한 구도를 통해 행복을 찾은 이들보다는 예상치 못한 나름 억울한 상황에 직면하는 이들이 좀 더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종편의 계절이란 이토록 하수상한 것이니 만큼 출연한 대가로 얻게 될 구설수에 대해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자.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면 할수록 나를 향해 돌진하는 불화살은 더욱 사나워질 수도 있다. 난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자기들이 알아서 그렇게 무등을 태우고 난리를 죽이더니 느닷없이 절벽 아래로 내팽개치는 것은 도대체 뭐야, 싶지만 무등에 올라탈 때 별다른 자의식을 표출하지 않았다면 안타깝지만 내려올 때도 그것 역시 받아들이는 편이 차라리 낫다. 한편으로 진짜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끝까지 싸우면 될 일이고 말이다.

종편, 21세기 방송가의 계륵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논란들은 과거 안티조선운동이 오랜 동안 지속되었듯이 종편이 망하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한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고 종편 채널들 역시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더 많은 무리수를 남발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음악인을 비롯한 많은 연예인들에게 모양새 빠지는 일들을 자꾸 만들어낼 것이다. 짜증나겠지만 개인의 선량한 의지로 넘을 수 없는 매정하고 답답한 시절이 잠시 도래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결국 괴담과 잡음 말고는 생산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종편방송의 출범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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