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서울시장 선거 때 서대문구 연희동 성원아파트에 사는 유권자 A씨는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연희초등학교까지 가서 투표를 해야 했다. A씨는 황당했다. 지난해 6·2지방선거 때 투표소였던 서대문 보건소보다 거리가 두배 이상 멀어서이기도 하지만, 두달 전 8·24주민투표 때는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투표소였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여권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안절부절 하던 8·24주민투표 때는 투표소를 유권자 코 앞에 대령하고, 투표율이 높으면 여권이 불리하다던 10·26선거 때는 투표소와 유권자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놨다. 엄중한 중립 의무를 지는 선관위가 그리했다.

이런 식으로 바뀐 투표소가 서울 전역에서 332곳, 전체의 15%에 달한다. 특히 야권 지지가 높은 지역에서 변경이 심해 서대문구는 무려 48%, 금천구는 43%가 바뀌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투표일이 휴일도, 방학도 아니어서 학교 등의 투표소는 바뀔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으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초등학교로 바뀐 위 사례를 설명하지 못한다. 특별한 예외일까? 천만에, 오히려 빙산의 일각이다.

연희동은 모두 11개의 투표소로 나뉘던 곳이다. 이번엔 9개로 줄었다. 투표소에 포함되는 관할 구역(통)을 이리저리 휘저어 단 한 곳도 투표소가 그대로 유지되지 않았다. 53통과 54통은 8·24주민투표 때는 제1투표소로 분류됐지만 10·26선거 때는 제7투표소로 빠지고 대신 40통, 41통, 50통이 포함됐다. 이러니 투표소가 바뀌지 않아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물론 투표소도 상당수가 바뀌었다. 연희동의 기존 11개 투표소 중에서 4개가 빠지고 2개가 추가되어 9개 투표소로 조정되었다. 내용은 더욱 고약하다. 아파트 거주 유권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파트 내 투표소 2곳을 없앴다. 과거 평일 선거 때도 활용했던 공영주차장 2곳마저 빼버렸다. 대신 교회와 성당을 투표소로 포함시켰다.

연희동만 그럴까? 홍은1동과 남가좌2동 역시 투표소 수가 줄어들면서 거의 모든 투표소의 관할구역이 바뀌었다. 단순히 투표하는 장소만 바꾼 게 아니라 투표소 관할 구역을 이리저리 섞어서 총체적인 혼란을 야기시킨 게다.

선관위 투표소 변경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더 보자. 서대문구 천연동에 있는 금화초등학교 구관 보건교육실은 10·26선거 때 천연동 제3투표소로 쓰였다. 이곳은 8·24주민투표 때는 제2투표소였던 곳이다. 투표소 관할이 혹시 맞바뀌었을까 봤지만 그대로였다.

투표소 바꾼다고 정말 투표율이 떨어질까? 투표거부 운동이 펼쳐졌던 8·24주민투표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어 지난해 6·2지방선거와 대조해 봤더니 일정한 성과(?)가 있었음이 드러난다. 서대문구의 경우 6.2선거 때 서울 25개구 가운데 투표율이 8위였지만 1026선거 때는 10위로, 전체 투표율 대비 102%에서 100.8%로 떨어졌다. 투표소의 43%가 바뀐 금천구의 투표율 하락은 더 컸다. 순위로는 21위에서 25위, 전체 투표율 대비로는 97.5%였던 것이 91.1%로 추락했다.

선관위가 투표율 하락을 노렸다는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충분한 사전 홍보가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방송 홍보도, 신문 광고도 찾아 볼 수 없다. 투표소 변경 사실이 미리 부각돼 변경의 효과가 줄어들까봐, 역풍을 맞을까봐 쉬쉬했다는 추측이 자연스럽다. 현명한 유권자들이 투표율 하락을 막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SNS를 통해 스스로 여론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선거 결과까지 뒤집히는 심각한 사태가 빚어졌을 지도 모른다. 선관위가 노렸든 아니든 투표소 변경은 10·26선거 당일 선관위 홈페이지 먹통 사태와 뗄 수 없는 부정선거 의혹 사건이다. 그래서 지금 선관위에 내년 총선, 대선을 맡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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