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1월 30일은 중앙일보 동양방송(TBC)이 신군부세력에 의해 문을 닫게 된 날이다. 동아일보 동아방송(DBS)도 그날 같은 운명을 맞았다. 당시 미취학 상태였던 나조차 TBC를 창의적이고 재기 있는 방송으로 기억한다. DBS는 당시 동아일보가 가졌던 저널리즘 원리에 충실했던 방송으로 평가받았다.

직설적 권력 비판 프로그램으로 인식됐던 ‘앵무새’의 명성은 지금도 언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러다 보니 멀쩡하던 방송을 권력에 의해 종식해야 했던 당사자들의 울분은 극에 달한다. TBC 출신 성우 배한성 씨는 저서에서 “이런 처사가 마음에 안 들어 소극적 저항이나마 5공 시절에도 ‘전두환 대통령’을 방송 중에 명시하지 않았다”는 회고를 담기도 했다.

TBC와 KBS에서 보도국장을 지낸 뒤 민주정의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강용식 전 의원의 저서 중 TBC 내부인사 증언 또한 기억 속에 새롭다. “신군부가 ‘새 시대를 여는 결단’으로 미화할 것을 주문했다”며 “‘방송 통폐합’을 지지하는 대중의 목소리를 보도하도록 강요했다”는 내용이다. 과연 그 ‘목소리’를 찾았을까. 아니다. 그러나 ‘안 낼 수는 없는 터’여서 결국 자사 총무국 직원에게서 연출된 증언을 얻어냈다고 한다. 이 직원은 ‘자기 회사 문 닫는 걸 잘 됐다고 말하는 넋 나간 사람’이라며, 자신을 알아본 주변에서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꼼수다>

11월 30일의 다음 날인 ‘12월 1일’을 개국일로 잡은 중앙의 JTBC와 동아 채널A의 의중은, 이런 맥락에서 짐작하고 남음이다. 권력에 의해 강탈당한 방송을 되찾았다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실제 수사(修辭)도 아끼지 않는다. 두 신문은 종합편성채널 신청 시점을 전후해 “(강제 종방됐던) TBC의 부활이 한국 방송 정상화의 첫걸음이 돼야 한다”, “종편을 통해 DBS 부활의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고 각각 강조했다.

관심은 JTBC와 채널A가 자기들 표현대로 ‘옛 DNA’를 이어받아 폐방 당시의 명성과 성과를 동일하게 누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1980년 당시 TV는 4개, 라디오는 10개에 그쳤다. 그러나 지금은 지상파, 케이블, 위성, DMB 그리고 인터넷 팟캐스트 등 무수한 양태와 장르의 방송사업자가 188개 활동하고 있다. 이중 케이블TV의 경우 시청률 0.1%를 놓고 약 100여 개가 넘는 방송 사업자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라디오는 수도권에서만 29개 AM, FM방송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시장 포화상태다. 이러다 보니 한 해 8조에 이르는 방송광고시장에서 JTBC와 채널A 또한 TV조선이라는 실질적 신생 매체에게 떨어질 몫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그보다 더 큰 위기는 과거와 같은 상상력과 창의성이 생성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당시만 해도 군부 권력의 위계 앞에 모든 매체가 굴종하던 터라 특별히 보수, 진보 분류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앙, 동아의 색채는 너무나 뚜렷한 보수색이다. 요즘 보수 가지고 장사가 되겠나. 게다가 종편은 법인 설립증 외에 전혀 새롭지 않다. 편성표 또한 기존 지상파와 대동소이하다. 제작 출연진 역시 지상파 인력 그대로다. 대응 편성, 모방 기획, 타성적 구성. 아무리 봐도 새롭지 않다. (이러다 보니 종편들, 모태 신문이 ‘장외 방송’, ‘괴담 진원지’라고 질타하는 <나는 꼼수다>에 “진행자로 와 달라”, “고정 출연 해 달라”고 무수히 제안하는 이중 행보를 나타내고 있다. 개국 전부터 <나꼼수>의 ‘신선미’, ‘대중성’에 묻어가려는 뜻일까. 본의 아니게 ‘자뻑’하게 만든다.)

나는 종편 성패의 분수령을 이렇게 봤다. “지금 편성표보다 조금이라도 후진적으로 기획을 하는, 이를테면 유명 진행자가 빠지고, 의욕을 갖고 있던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낮아 문 닫는다든지, 행여 (거액을 들이는) 드라마 자리에 딴 게 들어가면 망조라고 봐야 한다”고. 개국 전인데도 종편 CEO 한 사람이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나”라며 탄식했다는 설이 방송가 주변에 파다하니 암울하다.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방송이 권력에 의해 문 닫았다면, 그 국민의 사랑을 토대로 다시 문을 열어야 순리다. 그러나 종편은 절차적 정당성을 모두 망실한 우호적 권력의 정략적 지원으로 ‘방송권’을 얻었다. 이런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방법은 종편 구성원의 정체성과 역사적 당위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있을까 싶다. 이런 이유로 종편은 암담하다. 그래서 생일에 애도의 뜻을 표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