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페이스북에 한미 FTA 날치기 처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판사를 문제 삼으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여론을 위축시키고 사실상 ‘사상 검증’까지 나선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겨레는 26일 사설에서 “조선일보가 우리법연구회 간부라는 것을 부각한 것은 판사의 성향을 문제삼겠다는 저의로 보인다”며 “이런 태도야말로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조선은 지난 25일자 1면 기사<“FTA추진 대통령, 뼛속까지 친미” 현직 부장판사 페이스북 글 논란>에서 “‘진보성향’ 법관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간부인 A부장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22일 한미 FTA 날치기 처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것을 문제 삼은 바 있다.  

한겨레는 “촛불시위 재판에 노골적으로 간섭한 신영철 대법관은 못 본 척하고, 무죄를 선고한 판사는 사상검증 하듯 잡도리했던 게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수구언론들”이라며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이번 보도도 판사 길들이기의 혐의가 짙다”고 밝혔다. 이어 한겨레는 “보수라면 무슨 짓을 해도 보호해주고 진보는 입만 뻥긋해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이런 행태는 사법부의 독립을 심각하게 해칠 뿐 아니라 사실상 판사들에 대한 협박”이라고 지적했다.

   
▲ 26일자 한겨레 1면.
 
특히, 한겨레는 대법원이 조선의 보도 이후 법관들의 ‘SNS 가이드라인’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것을 두고 “판사도 사적 공간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헌법적 권리”라며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사랑방에게 도란도란 얘기하는 수준’으로 했다는 얘기를 끄집어내 공개하고 문제삼기 시작하면 에스엔에스 자체가 존립할 공간이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한겨레의 비판에서 검토해 볼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판사가 정부 정책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 정치적 중립의 위반인지, 페이스북 등 SNS 공간도 공적 영역으로 볼 수 있는지다.

한겨레와 달리 조선은 25일자 사설에서 “판사도 사적 모임에서 FTA 통과를 ‘나라 팔아먹은 일’에 비유하며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과 감정을 드러낼 수는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판사라면 그런 경솔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며 “판사가 개인 의견을 밖으로 표현하면 특정 사안에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재판에서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선은 “페이스북이 사적 공간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올린 글은 언제든지 ‘친구’들을 통해 밖으로 퍼져 나가기 쉽고, 실제 이 부장판사의 글도 그렇게 외부에 유출됐다”며 SNS의 개방성을 지적했다.

   
▲ 25일자 조선일보 1면.
 
하지만 공무원의 ‘중립성’ 기준이 모호하고 SNS에 게재한 글이 본인의 의도와 달리 외부로 알려진 것까지 게시자가 책임지는 것이 온당하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은 26일자 3면 기사<공무원 ‘중립성’ 기준 논평…법조계 “징계는 부적절”>에서 “실제 법관윤리강령 7조에는 ‘법관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돼 있다”며 “한미 FTA는 최 부장판사의 직무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익명의 법원 관계자는 “페이스북 친구 100명, 친구의 친구 500명, 트위터 팔로어 1000명 등을 분류한다고 할 때 어디까지가 사적이고 어디서부터 공적인지는 구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헌법학자인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적인 공간에 올린 것이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확산됐는데 결과적으로 확산됐다고 해서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번 사건은 정치현안에 대한 단순 의견 표명을 우리법연구회 활동 등과 엮어 보수언론이 마녀사냥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 판사의 페이스북 글을 확산되게 한 주체는 바로 조선일보였다. 이 부장판사의 페이스북은 ‘친구 맺기’ 또는 ‘친구의 친구 맺기’가 된 일부 누리꾼만 볼 수 있고, 프로필만 보면 판사 신분을 알 수 없으며, 해당 글에 ‘좋아요’ 반응을 보인 친구가 13명에 불과했는데 조선은 이 판사의 게시글을 특정해 부각시켰다.

주목되는 점은 조선이 최근 부쩍 SNS에 대한 기사를 집중 보도하는 점이다. 특징은 최근 한미FTA 반대 움직임을 다루면서 SNS에서 인기가 있는 인사들을 특정해 ‘반FTA 세력’이나 ‘정당의 힘을 뛰어넘는 정치 세력’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이다. 
 

   
▲ 26일자 조선일보 1면.
 
조선은 25일 3면 기사 <정치풍자 넘어…직접 정치에 뛰어든 나꼼수>에서 <나꼼수> 진행자들이 ‘반FTA 집회’에 참가자를 늘리는데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나꼼수> 방송에 등장한 음모론’을 소개했다. 이어 26일 1면 기사 <폴리테이너 전성시대>에서 “공지영 김미화 나꼼수 김여진씨와 같은 폴리테이너(정치연예인)들이 요즘 우리 정치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며 “한미 FTA 반대 운동과 신당 창당설, 이명박 정부 비판 등은 민주당 같은 야당이 아니라 이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이 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판사가 SNS에서 특정 사회적 현안에 대해 ‘자기들이 볼 때 거북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본 보수층이 한번은 언급해서 위축 효과를 줘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 시민으로서 공무원 역시 특정 정치적 편향에 따른 직무수행이 나타나지 않는, 개인적 견해를 밝히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며 “(공공기관 또는 정부) 조직이 공동체가 나아갈 정당한 가치와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는 이를 공론화하고, 토론과 의견 표명을 통해 그 조직과 사회 안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게끔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이 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표현과 내용이 법관윤리 규범상 허용되는 범위인지 오는 29일 열리는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검토하기로 해, 향후에도 SNS에서의 표현의 자유 논란과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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