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장입니다. 오늘 오전 백원우 (민주당)의원님과의 통화중에 물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한 사실은 있으나 서울청장의 범위를 넘어선 윗선지시라고 한 사실이 없으며 서울치안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한테 있습니다.”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은 24일 서울경찰청 공식 트위터를 통해 ‘엄동설한 물대포’ 배후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날치기 처리한 이후 서울 시청광장과 명동 등 도심에서는 항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3일 밤 기온이 급강하하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체감기온이 영하의 날씨로 뚝 떨어진 상황에서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의 이러한 행동은 상식을 벗어나는 것으로서 한나라당 쪽에서도 ‘과잉 충성’을 우려하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CBS노컷뉴스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체감온도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가 발사되고 물대포를 맞은 시위참여자들의 얼굴에 고드름이 얼고 옷이 찢겨지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체감온도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를 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경찰당국은 이 점을 유념해서 자제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여당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당시 상황이 주요 방송사 보도 등을 통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트위터와 인터넷신문, 인터넷방송 등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면서 민심이 더욱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무모한 행동을 지시했는지 ‘배후’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강덕 서울경찰청장 주장은 논란이 되고 있는 ‘윗선’은 따로 없으며 자신의 책임 하에 이뤄진 행동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윗선 논란이 증폭된 까닭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경북 포항에 정착해 어린 시절과 고교까지 학창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은 경찰 내부에서 대표적인 ‘영포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경북 포항 출신인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포항 후배’로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차기 경찰청장 0순위 후보로 거론됐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 부산경찰청장, 경기경찰청장에 이어 서울경찰청장까지 승진 가도를 달렸던 인물이다. 경찰청장 부임은 시간문제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포항 후배’를 서울경찰청장에 앉힐 때부터 ‘과잉 충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조선일보 11월 11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11월 11일자 <'믿을 건 고향뿐', 그건 정권 끝났다는 말>이라는 사설에서 “경찰 내부에선 초고속 승진과 요직 역임 기록을 동시에 경신한 그의 진짜 힘은 '대통령과 한 고향 사람'이라는 걸 다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언론은 물론 한나라당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이강덕 중용’에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과잉 충성’은 결국 정권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도 한미FTA 날치기 처리 이후 여론의 눈을 의식하면서 몸을 낮추고 있는데 서울경찰청은 ‘엄동설한 물대포’라는 살인적인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경찰이 사용하는 물대포는 그 수압도 무시무시하지만, 한파가 몰아친 어제 같은 날씨에서는 거의 살인병기나 다름없는 무기가 된다. 맞은 즉시 물이 얼음이 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살점이 찢겨져 나갔다는 피해사례가 부지기수이며 민원이 속출하고 있다. 경찰이 해산목적을 뛰어넘어 아예 시민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경찰 장비관리규칙 제69조는 경찰장비의 사용은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과 국민의 생명·신체 등에 위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각종 안전수칙을 준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면서 “매섭게 추운 날 밤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었는지, 국민의 신체와 생명 등에 위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는지 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동설한 물대포’는 이명박 대통령의 포항 후배인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의 책임 하에 벌어진 사건일까. 그렇다면 대통령 후배의 ‘과잉 충성’이 원인일까. 결국 보수언론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일까.

조선일보는 11월 11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정권 말 치안 누수를 막으려면 측근을 경찰청장에 임명해야 한다고 믿었을지 모르지만 '믿을 건 고향 사람뿐'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점령하면 그건 정권이 끝났다는 신호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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