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비준안의 기습처리를 막기 위해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투하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적어도 한나라당 의원들이 희희낙락거리며 FTA를 통과하게 할 순 없었다”며 당시 자신의 심정을 드러냈다.

2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 의원은 “최루탄 연기를 맞고 억지로라도 울어라”는 심정으로 던졌다며 “농민과 서민은 피눈물을 흘리는 일을 하면서 적어도 울어는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과 한미FTA의 악연은 꽤 깊다. 한미FTA가 최종 타결된 2007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으로 있었던 그는 한미FTA 저지에 그야말로 ‘올인’했다. 200여명 가량 있었던 당직자들에게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한미FTA 저지 서명에 집중할 것을 독려했다. 그 결과 실제로 100만명이 참여해 그 양이 어마어마해진 서명종이를 들고 청와대 앞으로 갔다.

   
지난 22일 한미FTA비준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로텐더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선동 의원. 이치열 기자 truth710@
 

한미FTA 논쟁이 재점화된 올해는 4‧27 재보궐선거를 통해 당당히 국회의원으로 입성,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한미FTA 전면 폐기를 위한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의 간사를 맡으면서 여야가 함께 하는 ‘한미FTA 끝장토론회’ 개최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그대로 여당 의원 중에도 비준 반대를 던진 이들이 나온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한미FTA를 반대한다고 해도 정치인으로서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법하다. 한미FTA 처리에 대한 여야 합의가 결렬되면서 ‘박희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한나라당의 기습상정-야당의 결사저지’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는 거의 기정사실화돼 있었다.

또한 대다수 언론이 ‘폭력국회’ 프레임을 내세워 몸싸움을 벌이는 국회의원들, 그 중에서도 야당 의원들을 매도할 가능성이 거의 99.9%였다.

이런 사례는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강달프’로 대중적 인기와 함께 실천적인 정치인이라는 인정을 받은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도 ‘공중부양’ 사건을 피해갈 수 없었다. ‘미디어법 처리 반대’라는 대의명분으로 일어난 일이었지만 보수적 언론지형이 만든 인식의 프레임이 한 번 설정되면 그것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너무 준비된 멘트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살아온 삶을 보자면 자신이 입을 피해에 대해서만큼은 '개의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FTA가 표결처리된 후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일방적인 의사진행을 계속하자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진행을 중단하라고 소리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그는 1985년 서울의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벌이다 제적됐다. 보수언론은 이런 그의 경력을 적극 홍보했다. 최루탄에다 미문화원 점거했던 사실은 그에게 폭력적 이미를 씌우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과격해보이는 행동일지 모르지만 미문화원 점거사건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광주시민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과 주한미대사가 계엄군이 광주시민들에게 발포하도록 승인했다는 의혹이 강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간부였던 김 의원을 비롯한 대학생들은 이런 사실을 증언해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 미국 문화원을 점거했다. 김 의원은 “광주항쟁의 이면은 학살이었다”며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했던 일을 문제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김 의원은 또 “이미 정부 여당이 국민에게 폭력을 저질렀는데 나에게 ‘폭력’, ‘테러’ 운운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요즘 들어 헌법을 보게 된다는 그는 기자에게 FTA가 헌법과 어떻게 위배되는지를 짚어줬다. ISD조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헌법 101조에 반해 대한민국의 사법주권을 침해하고, 국가가 농‧어업인들과 중소상인들을 보호한다고 규정한 헌법 123와 대치된다는 점 등이었다. 
 
이전부터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겠다”고 했던 김 의원은 이날 “국민과 함께 한미FTA 무효화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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