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국방부’를 포함한 행정부를 모두 거느려 다스리는 김황식 국무총리의 공통점은? 잘 모르겠다면 힌트 하나 더. 국가안보의 수장인 원세훈 국가정보원장과 이명박 대통령, 김황식 국무총리의 공통점은? 정답은 ‘군 면제자’라는 점이다.

‘군 면제’ 자체가 죄는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군 면제자’들이 대통령, 국무총리, 여당 대표, 국가정보원장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핵심부를 꿰차고 있는 현실은 분명 논란의 대상이다. ‘군 면제 정부’라는 비판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김황식 국무총리가 ‘군 면제자’라고는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 국민, 군대를 가야하는 국민의 고충을 헤아리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 책임은 있다. 때로는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 속에서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청춘을 바친 젊은이들의 땀과 노력에 대해 정부 책임자들이 취해야 할 당연한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는 ‘불통 정부’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얻었다. 민심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권력 입맛에 따라 국정을 운영한다는 지적이 담긴 표현이다. “제발 소통을 하라”는 얘기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시작부터 집권 4년차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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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소통 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청춘을 바쳤던 20대 예비역들이 당장 내년 1월부터 황당한 상황을 경험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군복을 입고 2년의 청춘을 보냈던 그곳에서, 제대하는 그날 “이제는 떠나게 됐구나” 생각했던 그곳에서, 제대한 이후에도 가끔 꿈에 나오는 바로 그곳에서, 다시 군사훈련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쉽게 말해 분명히 군에서 제대를 했는데, 자대와는 영영 이별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자대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국방부는 내년 1월부터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강원도에 거주하는 남성 가운데 군대를 제대한 이들을 대상으로 ‘현역 복무부대 동원 지정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현역 복무부대 동원 지정제도’는 예비군들을 현역 시 복무했던 부대로 다시 동원 지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거주지 주변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았는데 앞으로는 군 시절을 보냈던 자대로 돌아와야 한다는 얘기다.

국방부는 “예비군의 전투력을 현역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동원지정제도를 ‘현역 복무부대 동원지정제도’로 전환하게 됐다”면서 “고속철도, 고속도로 등 잘 정비된 도로망과 탁월한 성능의 교통수단 등 오늘날의 선진화된 교통여건과, 첨단 IT기술을 활용해 구축한 동원자원관리정보체계 등 변화된 동원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교통수단이 잘 발달돼 있기 때문에 거주지를 떠나 자대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국방부 설명만 듣고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로 돌아가면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예비역 직장인 A씨가 강원도 양구에 있는 ‘자대’에 가서 예비군 훈련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A씨처럼 거주지와 자대가 먼 이들은 어떻게 될까. 국방부는 “소집부대에서 20km 이내에 주소를 둔 예비군은 개별적으로 입소하여야 하나, 그 외의 예비군은 지역별로 집결하여 국방부 책임 하에 통합 수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전방부대에서 근무한 사람이 예비군 훈련도 전방에서 받는 것은 부당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유사시 국가 안전보장을 위해 동원된 예비군이 동원 즉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는데 의미가 있는 제도임을 이해하고 적극 동참해 주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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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군에서 복무했던 이들이 다시 자대에서 예비군 훈련을 함께 받을 가능성이 있다. 국방부는 ‘전우애’를 되살리라고 이러한 판단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문제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군대에서는 계급에 따라 입대시기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군대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다. 사회에 나가면 나이에 따라 또는 다른 기준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기 마련이다. 군대에서 고참이라고 영원한 고참이 아니고 졸병이라고 영원한 졸병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군대에서 껄끄러운 관계를 맺었던 이들을 제대하고 나서도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은 양쪽 모두 불편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냥 불편한 정도를 넘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군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선임병을 자대 예비군 훈련장에서 만났을 때, 예비군 훈련이 끝난 이후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방부는 23일 공개한 <현역 복무부대 동원지정제도에 대한 궁금증 풀이>에서 ‘현역 시 복무했던 부대에서의 안 좋은 추억으로, 가기 싫은 인원은 본인의 원에 의해 다른 부대로 지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현재는 본인의 원에 의해 현역부대를 조정하는 제도는 검토된 바 없다”면서 “개인사정으로 부대를 변경하는 것은 여러 가지 부작용이 예상되며 2012년 실시를 통해 도출되는 문제점을 개선 검토할 때 함께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일단은 시행하고 보겠다는 얘기다.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 등에 거주하는 20대 예비역들은 군에서 제대한 이후에도 다시 자대로 돌아가 예비군 훈련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다. 지금 군대에 있는 20대 젊은이들 역시 군 제대가 끝이 아니라 몇 년 간은 다시 자대로 돌아와서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번 결정에 20대 젊은이들의 의사가 과연 반영된 것인지, 누군가의 탁상행정 결과는 아닌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청년실업 때문에 고민이 클 20대 남성들에게 이번 소식은 ‘악몽’으로 다가올 수 있다.

20대 젊은이들에게는 이래저래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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