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11월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날치기 처리를 강행했다. 언론까지 통제한 상태에서 국회 비준안을 처리하는 초강수를 뒀다. 국회는 다시 아수라장이 됐다. 정국은 파국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었다. 국회를 ‘폭력의 현장’으로 몰아간 주체는 한나라당이지만 뒤에는 이를 부추긴 ‘앞잡이 언론’이 있다. / 편집자 주

“국회에선 여야 간 최악의 난투극이 벌어졌다. 국회의원과 여야 당직자는 물론 이익단체 간부들까지 가세했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토론과 표결이라는 국회의 룰은 휴짓조각이 됐고 완력으로 승부가 갈렸다.”

조선일보 2009년 7월 23일자 5면 <“끌어내” “못비켜”…여야 의원 등 500여명 뒤엉켜 난투극>이라는 기사의 일부이다. 7월 22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국회는 폭력의 전쟁터로 변했다. 국회 역사상 최악의 하루로 기록될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언론은 입을 모아 비판했다. ‘폭력 국회’ ‘조폭 국회’…. 욕설과 고함, 울부짖음이 뒤섞인 그 공간은 실제로 아수라장이었다. 국회의원들의 이성적인 대화와 토론보다는 누가 더 완력이 센지, 누가 더 효과적인 육박전을 준비했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경쟁이었다.

언론은 ‘조폭 국회’라며 싸잡아 비판했지만 그런 난장판을 만든 배후에는 ‘앞잡이 언론’들이 있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을 향해 ‘돌격 앞으로’를 유도했던 주체가 바로 언론이다. 국회사에 길이 남을 부끄러운 장면이 2년 만에 재연됐다. 2011년 11월 22일 한미FTA 국회 비준안 ‘날치기 처리’ 이면에도 언론이 있다.

한나라당의 최근 행보는 극과 극이었다. 내부 분란이 이어지면서 여당이 강행처리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10·26 서울시장 선거 참패 이후만 해도 쇄신과 변화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서울시장 선거 다음 날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그동안 펼쳐왔던 국정운영에 대해서, 특히 젊은 층과 40대까지 포함해서 불만과 반감을 표시했다는 민심의 표출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홍준표 대표는 “20·30대 계층에 다가가는 그런 정책과 소통의 장을 만들어서 그분들의 마음을 얻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20~40대는 한미FTA 강행처리를 걱정하는 대표적인 세대다. 그런 점에서 “20·30대 계층에 다가가는 그런 정책과 소통의 장을 만들겠다”는 한나라당 대표의 다짐과 한미FTA 강행처리는 모순된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11월 21일 14번째 생일을 맞이했지만, 언론은 ‘우울한 풍경’이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11월 22일자 5면에 내보낸 <한나라 창당 14주년 내년에도 축하 떡 자를까>라는 제목의 ‘기자수첩’에서 “최근 한나라당을 보면 ‘서서히 죽는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이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는 점은 보수언론도 공감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불씨를 살렸던 쇄신 흐름을 스스로 꺼뜨렸다. 한나라당이 한미FTA 날치기 처리를 강행하며 ‘청와대 거수기’를 자처하게 된 배경에는 초강경 대응을 압박해온 언론이 있다.

민주당이 11월 16일 의원총회를 통해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우선 폐기’ 당론을 유지하자 보수언론들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11월 17일자 <아흔아홉 고비 넘어온 FTA, 마지막 언덕 넘을 때 됐다>라는 사설에서 “전체 국민의 삶을 좌우할 FTA는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 가능성을 기대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면 차선의 방법으로라도 마지막 언덕을 넘어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11월17일자 사설.

‘마지막 언덕’을 넘으라는 얘기는 야당 반발에 아랑곳하지 말고 힘으로 밀어붙이라는 얘기다. 동아일보는 11월 17일자 <야권통합 ‘정략’을 위한 FTA 반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설에서 “민주당이 말 바꾸기로 발목을 잡는 행태에 한미 FTA의 성공을 바라는 국민이 지쳐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언론은 연일 강행처리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문화일보는 11월 18일자 <박희태 의장, 국익·의회민주주의 위한 결단 화급하다>라는 사설에서 “민심도 민주당의 끊임없는 생떼쓰기 시리즈에 염증을 느껴 인내력이 고갈돼가고 있다”면서 “굳이 24일 본회의까지 기다릴 이유도, 여유도 없다. 박 의장의 결단이 화급하다”고 주장했다.
 

   
문화일보 11월18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11월 18일자 1면 <한나라 ‘굴욕’ 끝에 칼을 뽑다>라는 기사에서 “‘햄릿 한나라당’이 국회법에 따른 표결 처리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보도했다.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강경론이 우세해지자 <‘굴욕’ 끝에 칼을 뽑다>라는 제목을 뽑으면서 힘 싣기에 나섰다.
 

   
동아일보 11월18일자 2면.

보수언론들이 ‘난장판 국회’의 등을 떠민 셈이다. 보수언론의 부추김 속에 한나라당은 초유의 날치기 처리를 감행했다. 야당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 터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일방적인 국회의석의 우위를 앞세워 강행처리했다.

한나라당은 야당 반발을 힘으로 누르면서 한미 FTA 날치기 처리에 성공했지만, 5개월 앞으로 다가온 19대 총선을 고려할 때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적 부담을 떠안게 됐다. 게다가 물리력을 동원한 국회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여당 의원 22명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황우여 원내대표,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까지 동참했던 당시 성명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19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 담겨 있었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한나라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수적 우위만을 앞세워 한-미 FTA 법안을 직권상정 날치기를 강행한다면 이번 국회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야당의 이러한 경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일부 보수언론의 압박 속에 날치기 처리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민심의 흐름은 심상치 않다. SNS와 인터넷 게시판 등은 한나라당의 행동에 대한 비판과 성토의 글로 봇물을 이뤘다.

이번 표결에 참여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대대적인 낙선 운동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헌정 사상 최악의 날치기, 의회쿠데타로 일으킨 한나라당은 국익을 팔아먹은 매국노당이며, FTA 날치기에 찬성한 151명은 매국노 의원들”이라며 “우리 국민 역시 매국노당의 매국노 의원들 151명을 단 한 사람도 잊지 않고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은 “국민의 미래와 국가의 주권에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일방적으로 날치기 폭력 통과시킨 한나라당은 국민의 힘으로 해체시켜야 한다. 더불어 이번 국회든, 다음 국회에서든 한나라당을 해체시키고, 전원 낙선시켜 한미FTA를 반드시 무효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회정치가 무너지고 정국이 파행되더라도 한미FTA는 강행처리해야만 했던 시급한 현안이었을까. 한나라당의 이번 행동은 지금까지의 국회 강행처리, 날치기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시민사회 인식이다. 참여연대는 11월 22일 이러한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이 날치기 처리한 한미FTA비준 동의안은 지금까지 처리됐던 숱한 날치기 법안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중차대한 사안이다. 국가의 입법주권을 제약하는 건국 이후 최대의 ‘망국적 조약’이며 곳곳에 숨어있는 독소조항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조차 힘든 상황이다. 오늘 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동의안에 대한 날치기 처리는 의회주의를 거부한 폭거이며,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